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우 Oct 26. 2023

저항은 곧 진지하게 적은 장래 희망 조사서.

메챠쿠챠 와타시노 일상


고등학교 일 학년. 학급의 반장이었던 내가 조용보다 더 조용한. 고요에 가까운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리코더를 삐리릭하고 불어 댄 사건은 적지 않겠다. 그에 대한 체벌로 내 엉덩이에 매질을 하시던 선생님께서도 차마 웃음을 참지 못하셨다고는 그분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절대로 적을 수 없다. 그런 연유로 조금 덜 부끄러운 이야기를 적자면.


그 시절 나는 영향을 쉽게 받았다. 내 가치관 형성에 가장 깊게 관여한 매체는 단연 책이요, 그 이유는 어떤 매체보다도 여운이 가장 길어서라고 서술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매체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영화나 인물로부터도 쉽게 영향을 받고는 했는데 사건이 일어나기 하루 전 고등학교 이 학년이었던 나는 캐리비안의 해적을 보고 등교했다.


이 교시가 끝나고 나서 였을까. 잠에서 깨니 학급 번호 일 번부터 순서대로 종이 한 장을 돌려가며 무언가 적고 있었다. 마침내 차례가 되어 받아 든 종이의 정체는 장래 희망 조사서였고 제목의 아래로는 반 전체의 학급 번호와 이름이 인쇄되어 있었다. 친구들은 그 옆의 공란에 각자의 장래 희망을 적어 두었다.

나도 고민 없이 품어온 장래 희망을 적었다. 고작 하루 동안이지만. 반장은 종이에 공란이 없음을 확인하고 교무실로 향했다. 이윽고 교무실에서 돌아온 반장은 내게 쌍욕을 퍼부으며 다가오다가 갑자기 교탁을 붙잡고 웃음을 터뜨리… 도대체 그런 감정을 무어라 적어야 적절할까. 인간의 감정은 글로 묘사하기 가장 어려운 소재라더니 역시나 이제 갓 이 년 남짓 글을 쓴 나의 미천한 문장력으로는 당시 반장의 감정을 묘사하기가 벅차다.

아무튼 그는 웃느라 몸을 가누지 못하다가 웃음이 조금 잦아들면 내게 욕지기를 뱉고 또다시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하다가 잦아들면 욕을 하고. 그의 기행은 친구들의 이목을 집중 시켰고 친구들은 하나 둘 그 종이를 돌려보더니 반장과 같은 증상을 보였다.


원인은 내가 종이에 적은 장래 희망이었다. 나는 해적이라고 적었다. 일동 진정이 된 후에 반장은 새 종이를 학급 번호 일 번에게 건네고 내게 말했다. 친구들이 다 적으면 직접 제출하라고.


삼 교시가 끝나고 나는 두 장의 종이를 챙겨 교무실로 향했다. 한 장은 내가 해적이라고 적은 첫 번째 장래 희망 조사서. 나머지 한 장은 반장이 직접 제출하라던 두 번째 장래 희망 조사서였다. 만약을 대비해 두 번째 장래 희망 조사서에 나는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담임 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께 나는 첫 번째 장래 희망 조사서를 건넸다. 선생님께서는 곧장 내 장래 희망을 확인하셨다. 그의 표정이 굳어가는 것을 보고 나는 선수를 쳤다.

“설명 드릴께요.”

읊어 봐. 라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말투가 한없이 딱딱했다. 나는 설명을 시작했다. 영화나 만화 따위를 보고 장난스러운 마음에 해적이라 적은 것이 아니다. 성인이 되어 돈을 벌면 보트를 살 것이고 그것을 타고 세계를 돌 것인데 다만 일주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범인은 쉽게 접할 수 없는 곳들을 다녀보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버뮤다 삼각지대를 탐험하는 것으로 여정을 마치려 한다. 고.

그에 선생님께서는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엎드려.”

그러시고는 내 엉덩이를 한도를 정하지 않으시고 기력 닿으시는 대로 내려치시더니 교무실 한편에서 마저 엎드려 있으라고 명하셨다.


선생님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사 교시 시작을 알리는 방송이 나오자 선생님들께서는 수업을 위해 교무실을 떠나셨고 그제야 따가운 시선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 오 분 즈음 지났을까. 일 학년 때 같은 반이었으나 지금은 각자 문, 이과로 갈라진 그러나 여전히 제일 친한 친구가 교무실로 들어왔다. 그는 그의 담임 선생님 옆에 서서 무어라 말하더니 나와 같이 선생님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나와 같이 매타작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역시나 나와 같이 내 옆에 와 엎드렸다. 팔과 몸 사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터지려는 웃음을 참아 내느라 여간 애를 먹었다. 사 교시 수업이 끝날 때까지 우리는 서로를 애써 외면하며 그렇게 있었다.


체벌이 끝나고 우리는 급식실로 향했다. 가는 길에 그에게 물었다. 왜 옴? 이라고. 그가 답했다.

“우리 조사한 거에 양치기라고 적음.”

우리는 마저 걷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끅끅대며 웃었다. 나도 지고 싶지 않아 친구가 묻지도 않았는데 웃음을 참아가며 꾸역꾸역 해적. 이라고 답했고 우리는 또 끅끅대며 웃었다. 그날 급식실까지 가는 데 참 오래도 걸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항은 곧 마리아 오자와의 신음소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