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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우 Oct 31. 2023

죽음의 Death Game -1

메챠쿠챠 와타시노 일상


장래 희망 조사서에 양치기라고 적었던 친구와 겪은 일화를 하나 더 적자면 때는 고등학교 일 학년이었다. 양치기 친구의 이름은 편의상 문도라고 적겠다.


어느 학년 어느 학급을 불문하고 방귀 좀 뀐다는 녀석들은 맨 뒷자리에 앉기 마련일 터, 이제 막 고등학교에 진학한 우리들 역시 뒷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눈치 싸움이 치열했다.

아니, 거짓말이다. 사실 전혀 치열하지 않았다. 게임을 하다 보면 플레이어가 게임의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운영진들은 튜토리얼을 만들어 둔다. 그처럼 전교생이 백 명을 넘지 못하는 시골 중학교에서 학급 수가 무려 열세 개나 되는 도시의 고등학교로 진학한 내게 일 학년 팔 반은 신께서 내린 튜토리얼과 같았다. 학급의 모든 친구들이 선했다. 뭐, 개중에 문제라기보다는 거슬렸던 놈들을 굳이 기억까지 더듬어가며 적자면 눈치 없이 막말하는 놈. 가정교육을 똥꾸녘으로 받았는지 대상을 가리지 않고 오만불손한 놈 정도랄까. 가장 정도가 심한 녀석이라고 해 봐야 말다툼한 친구에게 커터 칼을 들이밀어 상해를 입힌 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이 친구의 어머니가 육성회장이신지라 사건 후에도 별다른 처벌은 없었다고 한다. (천안 백x중 출신 백x현 잘 사냐? 나중에 보면 그때 네 말대로 마짱 한 번 까자.)


결과적으로 교실의 맨 뒷자리는 문도와 내가 차지하게 되었다. 내가 앉은 책걸상은 오전 수업만 듣는 태권도 부 학생을 위한 것이었기에 점심시간이 지나고 그가 운동을 하러 강당으로 이동하면 오 교시부터 자리를 옮겨 앉았다. 문도가 앉은 책걸상은 반 배정 당시 인원 파악을 잘못해 하나 더 들여온 것이었기에 그는 등교와 동시에 그곳에 앉았다. 우리는 그곳에서 교과서로 담을 쌓아 두고 주로 부족한 수면을 채웠으며 깨어 있을 때는 친구들과 문자를 하거나 조용히 노닥거렸다. 그렇게 한 달 즈음이 흘렀고 문도와 내게는 오래된 연인처럼 권태기가 찾아왔다. 서로의 이야기도 동이 난지 오래요,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매번 생기는 것도 아녔으니 문도는 나를, 그리고 나도 문도를 지루한 녀석쯤으로 여기고 있었을 때다. 우리에게는 자극이 필요했다.



그날은 한국 지리 시간이었고 과목을 담당하신 선생님께서는 무려 해병대 출신으로 그 자부심이 대단하셨는데 나는 부러 그때를 골라 문도에게 가위바위보를 제안해 그를 도발했다. 영문도 모르면서 문도는 쌓아 둔 교과서 담 아래로 손을 내미는 것으로 도발에 응했다. 내가 이겼다.

“가서 교실 뒤에 걸레질하고 와.”

그게 뭐여, 병신아. 라고 투덜대면서도 그는 낄낄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에는 엔돌핀인지, 아들레날린인지, 아니면 사춘기의 질이 좋다 못해 정도가 과한 소크라테스토스테론인지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문도는 앉은 그대로 몇 초 정도 각을 재더니 대뜸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청소 도구함으로 향해 문을 열었다. 나는 보았다. 그리고 지금도 눈에 선하다. 수업 중이신 선생님은 아랑곳 않는 그의 당찬 모습을. 학급 내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이윽고 대걸레를 집어 든 문도는 교실 바닥을 닦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선생님께서는 떠들던 입을 다무시고 몇 초간 지켜보시더니 문도에게 너 뭐하니? 라고 물으셨다. 문도는 마치 자기가 군인이라도 된 양, 예! 교실 바닥이 너무 더러워서 닦았습니다! 라고 대답 아니, 외쳤다. 찾아온 정적. 얼마나 지났을까. 앞으로 얼마나 더 흐를까. 일동 긴장해 얼어붙은 순간을 나는 홀로 문도가 쌓아 둔 교과서 담 뒤에서 즐기고 있었다.

“음, 잘했어! 늬들 봐라. 공부를 못하면 저렇게라도 학우들을 도와야 돼!”

일동 선생님의 말씀에 웃음이 터졌다. 문도는 졸지에 공부는 못하지만(물론, 사실이지만.) 학우들을 위하는 착한 친구가 되었다. 나는 교과서 담 뒤에서 실망을 금치 못했다. 문도는 들고 있던 대걸레로 교실 뒤를 몇 번 더 휘적이더니 그것을 다시 청소 도구함에 넣어 두고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리고 이제는 그가 교과서 담 아래로 손을 내밀었다. 별수 있었겠나, 내가 먼저 건 싸움이니 받을 수밖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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