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학교가 아니었다면 감히 말 한 번 섞지도 못할 수준의 것들에게 뒤통수를 맞았다고 하경은 생각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뿐이었다. 그들을 찾아가 따지고 들 배짱은 없었다. 오히려 밖을 나돌다 학교 사람을 마주칠까 봐 겁이 나서 자취방 안에 틀어박혔다.
“어차피 자퇴할 거니까 전화하지 마세요.”
학교로부터 전화를 받은 건 출석하지 않은 지 한 달 정도 됐을 즘이었다. 일축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후로도 여러 차례 걸려 오는 전화를 무시했다.
며칠 뒤 주말, 부모님이 연락 없이 자취방을 찾아왔다. 엄마는 신발도 벗지 않고 방으로 뛰어 들어와 하경의 등을 때리며 울었고 아빠는 현관에 서서 그 장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숨 쉬면서. 설마 보호자에게 연락이 갈 줄이야.
“너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하려고 그래?”
아직 울음기가 다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엄마가 물었다.
“뭘 물어봐! 짐 싸!”
아빠가 윽박질렀다.
서울에 남아야 했다. 본가가 있는 천안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동기들과 선배들의 따돌림을 견디며 학교에 다니는 것 또한 싫었다.
“자퇴하고 취직할 거야.”
대답을 듣고 엄마가 다시 운다. 현관에 선 아빠는 보기도 싫은지, 아예 등을 진다. 하경은 잠자코 있었다.
새벽에 부모님은 천안으로 돌아갔다. 일단은 자퇴가 아니라 휴학을 하기로 했다. 취업 준비를 하다가 취직이 되지 않으면 군말 없이 복학한다는 조건이었다. 언제까지 결과를 내야 하는 지, 기한은 정하지 않았다. 하경은 서울에 남았다.
돌아온 월요일에 학교를 찾았다. 모자를 챙이 코에 닿을 정도로 눌러쓰고 마스크도 사서 착용했다. 강의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쉬는 시간인 오십 분에서 정각 사이는 피했다. 그렇게 고른 시간이 오전 열 시 십오 분이었다. 학과사무실에 도착해 휴학원을 제출했다. 직원이 일을 처리하는 동안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하던지. 다행히 자취방에 돌아올 때까지 한 명도 마주치지 않았다.
서울에 남기 위해서 나오는 대로 뱉은 말이었지만, 지켜야 했다. 하경은 홀로 남은 자취방에서 이력서를 작성했다. 구직 사이트에 작성한 이력서를 전체 공개 해두었다. 그 덕에 몇 차례 연락을 받았으나 모두 카페나 가맹 음식점의 아르바이트 제안이었다. 그런 곳에 취직하는 것으론 부모님을 납득 시킬 수 없었다. 사실 알고는 있었다. 스펙은커녕, 이렇다 할 경력도 없이, 심지어 휴학생의 신분으로 그럴듯한 사무직을 구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만, 명성만 보고 진학을 결정했었던 만큼, 적을 둔 학교의 이름에 거는 기대가 있었다. 혹시라도 학교의 이름을 보고 나를 찾는 회사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아무 연락도 없었다.
시간은 성실히 흘렀다. 눈이 녹았고 벚꽃은 피고 졌다. 가로수에는 새순이 돋았다. 외로웠다. 그렇다고 자취방 밖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아는 사람을 마주칠까 봐. 전화를 걸어 떠들 사람도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식이 끝나고 잠시나마 어울렸던 천안 친구들은 1학기 초에 이미 연락이 끊겼다. 그 당시, 더 이상 사람이 아쉽지 않게 된 하경은 천안에 두고 친구들을 기회주의자라고 여겼다. 고등학교 삼 년 내내 무시하다가, 학력이든 외모든 자신의 신분이 상승하니, 그제야 다가와 휴대전화 번호를 묻던 기회주의자. 무엇보다 그들에겐, 서울에서 새로 만난 사람들과 같은 자신을 향한 간절함이 없었다. 그래서 연락이 와도 받지 않거나 받더라도 쌀쌀맞게 대했다. 저지른 행동이 후회됐지만, 되돌릴 수는 없었다.
외로움이 극에 달해 도저히 버티지 못할 것 같을 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매 통화는 서로의 근황을 묻는 것으로 시작해서 엄마의 복학 권유로 이어졌고 하경의 짜증으로 끝났다. 심지어 엄마는 반찬을 가져왔다는 핑계로 자취방을 찾아와서도 복학을 권유했다. 그 권유는 곧 언제까지 자취방 월세를 감당해야 하냐는 독촉으로 변했다. 급기야 아빠는 더 이상 월세를 지원할 수 없으니 자취방을 정리하고 천안으로 내려오라고 통보했다. 버틸 시에는 직접 찾아와서 끌고 가겠다는 협박도 함께.
그 후로 하루하루가 우울했다. 자책했고 후회했다. 그러나 우울한 이유가 비단 자책과 후회 때문만은 아니었다. 혹시 부모님은 내가 아니라, 대학교 합격증을 사랑했던 게 아닐까. 그런 의구심이 생겨 우울했다. 의구심은 곧 하경을 비극적인 청춘의 주인공이 되게 했다. 하경의 휴대전화에는 고통 없이 죽는 법, 고통 없는 자살 방법, 안락사 비용 따위의 검색 기록이 쌓여갔다.
자취방 퇴실까지 열흘도 남지 않았을 때, 서울 외곽에 위치한 중소기업으로부터 서류 전형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물류 회사였고 직무는 경리 보조였다. 하경의 전공인 사회 복지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취방 퇴실 전에는 합격 통보를 받아야 했다. 마음이 급했던 하경은 인사 담당자와 면접 날짜를 협의할 때 최대한 빠른 날로 잡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인사 담당자는 이틀 뒤로 면접을 잡아 버렸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하경이 최종 합격 통보를 받은 건 자취방에서 퇴실하기까지 딱 사흘이 남았던 날이었다. 인사담당자와 첫 출근 날을 정한 후 곧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했다.
"너,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
질타를 받았다. 아빠는 아무 연락 없었다. 누구에게도 축하받지 못했다.
첫 출근 며칠 전, 엄마가 천안에서 올라왔다. 하경은 엄마와 함께 취직한 회사 주변, 자취방을 돌아보았다. 마침 마음에 드는 방이 있어 계약도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엄마는 틈만 나면 복학을 권했다. 하경은 진저리가 나, 엄마를 떠밀 듯 천안으로 돌려보냈다.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지 얘기해. 괜찮으니까."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 버스 터미널 역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이사는 간단히 끝났다. 얼마 되지 않는 살림을 캐리어 가방에 모조리 싣고 지하철로 이동했다. 새 자취방에 짐을 두고 홀가분한 몸으로 밖으로 나왔다. 머리카락을 태울 기세로, 그도 모자라 두피를 지질 기세로 쏟아지는 뙤약볕 아래 서자 금세 땀이 맺혔다. 땀이 흐르는 걸 싫어하지만, 흐르게 두고 걸었다. 그러고 싶었다. 누군가를 마주칠 까봐 맘 졸일 필요 없이 걷는 게 근 일 년만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해가 다 지고 나서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장기간 은둔하며 바뀌어 버린 낮과 밤을 바로잡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결국 첫 출근 전날에도 잠을 고이 이루지 못했다.
회사에 도착해서 사옥을 올려다보았다. 회사는 대로변 상가 건물의 층 하나를 통으로 임대해서 쓰고 있었다. 그 때문에 상가 건물 외벽에는 층별로 각기 다른 간판이 붙어 있었다. 하경이 합격한 회사는 사 층에 있었다. 사 층과 오 층 사이 외벽에 '태성 인터네쇼널'이라고 적힌 간판이 보였다. 면접 날에 봤을 때와는 소감이 달랐다. ‘네' 자와 '쇼' 자가 영 거슬렸다.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계단을 올라서 사 층에 이르자 유리 여닫이문을 비집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 문을 열고 들어섰다. 문에서 가장 가까이 앉아 있는 여자에게 경리팀 신입이라고 신분을 밝혔다. 면접 날에도 하경을 안내했던 여자는 이제 구면인데도 알은체 하나 없었다. 여자는 '잠시만요.'라고, 꼭 기계음 같은 억양으로 말하곤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안쪽으로 사라졌다. 하경은 문 앞에 서서 여자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사무실이 묘하게 조용했다. 분명 문을 열기 전에 이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혹시, 나 때문인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때가 탄 칸막이 사이사이로 사람들의 정수리가 보였다. 그러다 칸막이 너머로 자신을 훔쳐보고 있는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재빠르게 숨었다. 이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다른 쪽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불편했다. 그때 여자가 골프 웨어를 입고 있는 중년 남자와 돌아왔다. 남자는 하경을 반기며 자기를 경리팀장이라고 소개했다. 경리팀장은 하경을 안으로 들였다.
처음에는 사장실로 향했다. 사장실은 회사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독립된 공간이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정수리가 벗겨진 사장이 반겼다. 인사를 나눈 다음에는 재무팀으로 향했고 사업팀, 영업팀 순으로 순회했다. 처음에는 직급이 높은 사람들 몇 명에게만 하는 줄 알았으나, 경리팀장은 사원들 자리까지 일일이 하경을 끌고 다니며 인사를 시켰다. 하경에게 합격 통보를 전한 인사 담당자도 만났다. 면접 때도 만나지 못했던 그는, 통화할 때 사근사근한 목소리를 듣고 상상했던 모습과 다르게 무표정한 얼굴로 하경을 맞았다. 시간은 어느새 아홉 시 이십오 분이었다. 하경은 칸막이 너머로 자신을 훔쳐보던 남자와 마주 보고 섰다. 남자는 구매팀의 막내였다. 훔쳐봤던 것이 민망했는지 하경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때 구매팀 막내의 어깨 너머로 유리 여닫이문을 밀고 들어오는 육중한 그가 보였다. 이십오 분이나 지각을 했음에도 그는 숨기려는 기색도 없이 가방을 책상에 던지고, 사과는커녕 인사 한마디 없이 의자에 몸을 누이듯 앉았다. 경리팀장은 무어라 말하는 구매팀 막내를 두고 하경을 그에게로 이끌었다.
경리팀장은 육중한 그를 경리팀의 에이스 김 대리라고 소개했다. 김 대리는 어떻게 보아도 호감이 갈 수 없는 외모였다. 짐승의 가죽 같은 거무튀튀한 피부, 제품을 잔뜩 발라 한쪽으로 넘긴 머리칼은 성글었다. 숱 많은 눈썹은 제멋대로 자라 한일 자로 이어질 듯했고 쌍꺼풀이 없는 눈은 끝이 처져 음흉해 보였다. 콧방울이 비정상적으로 뭉툭해서 감자를 갖다 붙여 놓은 것 같은 코와 두툼한 입술은 담뱃진에 절어 검었다. 턱에는 면도가 덜 되어 남은 음모같이 억센 수염이 제각각 길이를 달리했다. 이 모든 요소를 담은 머리통을 두껍고 짧은 목이 맷돌을 고인 것처럼 받치고 있었다. 경리팀장은 김 대리의 나이가 삼십 대 초반이라고 말했다. 나이도 직급도 믿기지 않았다. 경리팀장은 또 김 대리가 결혼한 지 막 일 년이 지난 새신랑이지만 슬하에는 벌써 돌 지난 아들이 있다는,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될 신상에 대해서도 떠들었다. 김 대리는 인사하러 온 하경을 앞에 두고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경리팀장의 푼수 같은 언동에 화가 났는가 싶어 하경은 애써 밝게 인사를 건넸다. 그에 김 대리는 하경을 슬쩍 올려다보더니, 귀찮다는 듯 '네.'라고 답하고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