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을 기다리는 줄이 입구 밖까지 길게 늘어섰다. 하경은 맨 끝에 섰다. 가방에서 구형 휴대전화를 꺼낸다. 공공 와이파이를 연결하고 J의 메시지를 확인한다.
-만약 못 오실 것 같으면 미리 연락주세요. 웬만하면 와 주시고요. 원하시면 선입금이라도 드릴게요.
애가 타는구나.
‘출발했어요.’라고 답장하고 구형 휴대전화를 다시 가방에 넣는다. 파카 주머니에서 신형 휴대전화를 꺼내 음악 앱을 열어 ‘빠른 재생’ 버튼을 누른다. 무선 이어폰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흐른다. 역시 기계는 사람 손을 타야 한다고 생각하며 재생 목록을 열어 손수 가요를 찾아 재생한다.
선입금.
성(性)을 사고파는 행위인 조건 만남은 SNS에서 시작된다. 구매자가 예약하면, 판매자가 구매자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체계를 따른다. 간혹, 구매자들이 판매자를 불러놓고 잠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판매자들이 교통비라도 건지기 위해, 계약금 명목으로 미리 받아 두는 소정의 금액을 선입금이라고 칭한다.
그런 이유로 선입금을 받는 거라면, 타당하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했었다. 한때는.
화장실에 들어와 문짝에 달린 옷걸이에 가방을 건다. 파카도 벗어서 걸까 하다가 그만둔다. 일을 보던 중에 옷걸이에서 떨어지는 파카를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가방을 열어 편의점에서 사 온 손톱깎이와 스타킹, 그리고 항상 챙겨 다니는 물티슈를 꺼내 스타킹만 양변기 물탱크 위에 둔다. 양변기 뚜껑을 내리고 그 위에 휴지를 몇 칸 뜯어서 깐다. 운동화와 양말을 벗고 맨발을 뚜껑 위에, 깔아둔 휴지를 벗어나지 않게 올린다. 엄지발가락에 붙은 반창고의 중앙은 피가 배어 빨갛게 물들었다. 반창고를 조심히 뗀다. 물티슈로 떡이 진 피를 닦는다. 다행히 피는 멈추었다. 손톱깎이로 발톱의 갈라진 부분을 살살 들어 올려 잘라낸다. 검지 손가락으로 발톱이 잘려 나간 부분을 문질러 매끈한지 확인한다. 매끈하다. 내친김에 아예 모든 발톱을 정리한다.
판매자가 선입금을 받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던 당시, 조건 만남 예약이 있던 날에 하필 야근을 했다. 구매자는 자꾸 약속 시간을 변경하는 하경을 선입금만 받고 잠적하는 선입금 사기범으로 몰았다. 하경은 받은 선입금을 환불했다. 그럼에도 구매자는 화가 삭지 않는지, 하경의 이름과 계좌번호를 온라인에 퍼뜨리겠다고 협박했다. 하경은 한 며칠 몸이 달았으나, 다행히 구매자는 협박만으로 멈추었다. 일이 있고 난 뒤로 하경은 선입금을 요구하지도, 받지도 않는다.
양변기에 앉아 물탱크 위에 둔 스타킹을 들어 포장을 뜯는다. 반대쪽 운동화와 양말을 마저 벗고 바지도 벗는다. 스타킹을 신기 좋게 말아, 다친 발부터 조심히 집어넣는다. 반대쪽도. 허벅지까지 당겨 신고 엉거주춤 일어나 끝까지 올려 신는다. 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는다.
양변기 물탱크 위는 피가 묻은 물티슈와 반창고, 스타킹 포장지로 너저분하다. 휴지통을 찾는 하경의 시선이 자그마한 포스터에 이른다. 포스터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휴지통 없는 화장실.
한숨을 쉰다. 스타킹 포장지를 챙겨서 가방 안에 넣는다. 피 묻은 물티슈와 밴드는 가방에 넣기가 영 찝찝하다.
에이, 설마 막힐까.
양변기 뚜껑을 열어 안에 던져 넣고 다시 뚜껑을 닫는다. 물을 내리고 밖으로 나와 잽싸게 개찰구로 향한다.
역사에 비하면 승강장은 한가한 편이다. 승강장 저 끝까지, 사람들이 두 줄로 서서 지하철을 기다린다. 사람이 적은 곳을 찾다가 마침 비어있는 곳이 있어 선다. 뒤늦게 도착한 사람들이 뒤를 잇는다. 새까만 스크린 도어에 자신의 모습이 비친다. 거울로 삼아 머리를 쓸어내리며 정리한다. 승강장 내에 지하철이 들어온다는 안내방송이 울린다. 이내 지하철이 밀어냈을, 터널 속 고여있던 바람이 승강장에 분다. 열심히 정리한 머리가 바람에 휘날린다. 고개를 숙이고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짚어 얼굴을 때리는 머리카락을 손등으로 막는다.
‘3-4’
승강장 번호가 눈에 든다. 상경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그날도 3-4 승강장에서 지하철을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날짜와 승강장 번호가 같으니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기대했었다. 그랬던 일이 떠올라 피식 웃는다. 스크린 도어 너머로 지하철의 대가리가 지나간다. 서서히 줄어드는 속도. 이내 멈춘다. 전자음과 동시에 스크린 도어가 열리고 그보다 조금 늦게 지하철 문이 열린다. 내부의 훈기가 훅. 덮친다. 내리는 사람들을 피해 비스듬히 섰다가 마지막 사람이 나올 때쯤, 그가 채 내리기도 전에 안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 오르자마자 문 옆에 선다. 사람들은 하경을 지나쳐 빈자리를 찾아 앉거나, 손잡이를 잡고 선다. 전자음과 안내방송이 울리며 문이 닫힌다. 문에 난 조그만 창문에 자신을 비추어 보며 또 연신 머리를 쓸어내린다. 지하철 몸체가 기우뚱 뒤로 한 번 밀렸다가 다시 앞으로 나간다. 하경은 얼른 의자 양 끝에 달린 손잡이에 엉덩이를 기댄다. 휴대전화를 꺼낸다. 지하철이 굉음을 내며 속도를 높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