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천안 본가에 도착한 하경은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아직 제각기 길이가 다른 머리카락들이 옷이며 얼굴이며 붙어 있었고 샤워도 하지 못했다. 그런 채로 침대에 몸을 누였다. 엄마가 방문을 두드렸다. 아빠는 그러는 엄마에게, 아, 내버려둬, 한 끼 굶는다고 죽어? 라고 면박을 주었다.
다음날, 토요일에도 하경은 방문을 열지 않았다. 그것은 나름의 농성이었다.
먼저 문을 열고자 하는 쪽이 진다.
하경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 생각이 무색하게 정오쯤 하경은 조급했다. 어제 오후 분식집에서 먹은 라면과 만두가 마지막 식사였으니 거의 하루를 굶었다. 물 조절을 어떻게 했는지, 국물이 자작해 한 입 넣자마자 입안에 짠맛이 확 퍼지는 라면과 기성품 중에서도 가장 저렴한 것을 데워냈을 뿐인 만두였다. 그것들이 너무나 고팠다. 화장실은 모두가 잠든 새벽에 몰래 다녀온 것이 마지막이었다. 오줌보는 애초에 가득 찼다.
엄마가 아빠를 배웅하는 소리가 들렸다. 토요일이라서 출근은 안 할 텐데. 슬쩍 나가서 화장실만이라도 다녀올지 고민하던 그때, 엄마가 방문을 두드렸다. 꼭 그래 주기를 바랐다는 것이 티가 날까 봐 부러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문 앞에 섰다. 힘을 빼고 늘어지는 소리로 왜, 하고 물었다.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너무 작게 말했나 싶어 아, 왜! 하고 맘에도 없는 짜증을 내었다. 그럼에도 역시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문에 귀를 가까이하고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텔레비전 소리만 들렸다.
열까, 말까.
슬며시 문고리를 돌렸다. 열린 문 앞에는 아무도 없는 주방이 보였다. 바닥에는 일본 가정식처럼 밥 한 공기와 몇 가지 찬이 놓인 쟁반이, 쟁반 옆에는 어제 엄마가 자취방에서 싼 짐 가방들이 놓여있었다. 오른쪽 대각선으로 보이는 텔레비전에서는 토요일 예능이 재방송되고 있었다. 하느님에 비유되는 텔레비전 속 예능인은 남의 속도 모르고 신이 나서 떠들어 댔다. 고개를 내밀어 오른쪽에 있는 안방을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면 엄마는 텔레비전과 마주 보고 있는 소파에 앉아 있을 것이었다. 그곳은 벽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마음만큼은 문지방 너머 놓인 것들을 무시하고 방문을 닫아버리고 싶었지만, 허기와 요의를 더 참을 수 없었다. 하경은 문지방을 넘었다. 곧장 화장실로 가서 일을 해결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와 쟁반을 째로 안으로 들였다. 짐 가방도 함께. 엄마는 들리는 소리로 하경이 방에서 나온 것을 알 텐데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벽에 가려 보이지 않는 소파에서 한숨 소리가 들렸다. 하경은, 먼저 문을 열었을지언정 엄마 앞에 모습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직 진 건 아니다. 라고 생각하며 다시 방문을 잠갔다.
짐가방을 열었다. 가장 아래에는 노트북이 들어있었다. 가장 먼저 넣었다는 것이다. 그 난리통에도 또 화가 난 아빠의 재촉에도 휘둘리지 않고 비싼 것을 먼저 챙겨 넣은 엄마의 침착함에 감탄했다. 노트북은 켜지는 듯싶더니 꺼져버렸다. 충전기를 찾아보았지만, 가방 안에는 보이지 않았다. 제쳐두고 쟁반에 차려진 식사로 허기를 달랬다. 다시 침대에 누웠다.
저녁이 되자 간당간당한 배터리를 저전력 상태로 겨우 유지하던 휴대전화도 꺼지고 말았다. 할 것이 없었다. 예전에 읽었던 책들이라도 다시 펴볼까 하다가 흥미가 돋지 않아 그만두었다. 수능이 끝난 후로 왠지 종이 냄새가 역겨워져서 책만 펴면 욕지기가 솟았다. 태아처럼 누워있던 자세를 고쳐 관 속의 시체처럼 바로 누워 눈을 감았다.
일요일, 하경은 언제 들었는지도 모르는 잠에서 깼다.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에 귀를 갔다 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심스레 문을 열자 문 앞에는 어제와 같이 식사가 놓인 쟁반과 짐 가방 몇 개가 더 있었다. 부모님은 모두 나간 것 같았다. 화장실을 들렀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와 쟁반과 짐 가방을 안으로 들였다. 가방 안에는 자취방에 남은 짐이 들어있었다. 각 충전기도 함께 들어있어서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연결해 두고 식사를 했다.
부모님은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현관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바로 보이는 하경의 방문 앞에서 아빠의 발소리가 잠시 멈췄으나.
“일단은 그냥 둬요.”
이번에는 엄마가 아빠를 달랬다. 어떤 결심이라도 한 듯 엄마의 말투는 단호했다. 아빠는 방 안에 있는 하경이 들으라는 듯 한숨을 한 번 크게 쉬고 걸음을 옮겼다. 이땐 엄마가 말한 ‘일단’이 다섯 달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경은 행위에 소질이 있었다. 정오를 전후로 일어나 방 밖에 귀를 기울여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화장실로 향했다. 일을 해결하고 다시 방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 SNS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때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도 했다. 1월부터 한국에서도 개시된 미국의 한 웹 사이트는 한 달에 만 원 정도만 지불하면 수백 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무제한으로 제공했다. 시간이 남아도는 하경조차 영상을 배속으로 재생해야 할 만큼 볼거리가 많았다. 식사는 엄마가 챙겨주는 대로 하루에 한 끼에서 두 끼를 먹었고 세면은 모두가 잠든 새벽에 했다. 그 틈에 엄마의 생리대를 가져와 쟁여 두기도 했다. 그런 행위가 여름까지 계속됐다.
하계 올림픽이 막 끝난 무렵이었다. 스무날이 넘도록 끈질기게 기승이던 열대야가 비로소 잠잠해졌고 제각기 길이가 다르게 잘려 나간 하경의 머리카락 중 가장 짧은 가닥은 이제 턱에 닿았다.
정오를 지나 눈을 떴다. 화장실에 다녀와서 방문 앞에 놓인 쟁반을 안으로 들여 식사를 마치고 침대에 태아처럼 누웠다. SNS를 열어 첫 게시물부터 하나씩 보던 중에 문제의 게시물에 이르렀다. 일상에서는 보기 드문 화려한 화장을 한 일본 여자의 반나체가 보였다. 여자의 직업이 무엇인지 곧바로 알았다. 그 아래로도 여자의 몸이 드러난 사진이 몇 장이나 이어졌다. 마지막에는 여자의 이름과 웹사이트 주소가 적혀있었다. SNS 사용자들은 게시물의 여자를 두고 얼굴이, 몸매가, 연기가 어떻다는 둥 댓글을 달며 자기들이 G20 정상회담의 각국 정상들이라도 된 양 진지한 태도로 치열하게 토론했다.
대학교 인근 자취방에서 머물 당시, 하경은 포르노를 처음 접했다. 눈앞에서 재생되는 영상 속 남녀의 행위는 하경이 경험한 것과는 판이했다. 여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예쁘게 보이고 싶다는 여자의 본능이 소명 의식보다 앞서는지 화장이 지워지지 않도록 소극적으로 섹스에 임했고 꾸민 신음을 내었다. 주연인 여자가 그렇다 보니 남자 또한 덩달아 소극적이었다. 남자의 사정을 끝으로 화면은 어두워졌다가 밝아졌다. 화면 안에는 같은 여자가 다른 장소에서, 다른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소극적인 섹스가 이어졌다. 꾸민 신음도 함께. 하경은 영상이 삼십 분쯤 재생되었을 때 참지 못하고 껐다. 삼십 분 내내 하경은 조금도 흥분하지 못했다. 하경에게 영상은 그저 남자들의 환상을 충족해 주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조작된 작위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SNS 게시물의 일본 여자를 두고 이어지는 정상들의 토론은 긍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이었다.
같은 여자의 시선으로 보건대 도저히 예쁘다고 할 수 없는 이 여자가 어떤 매력을, 기술을 가졌길래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호기심이 일었다. 게시물로 돌아가 웹사이트 주소를 누르자 해외 웹사이트로 접속됐다. 여자가 보였다. 이제는 완전한 나체가 되어 오른손에는 남자의 성기를 쥐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 사진을 누르자 영상이 재생되었다. 영상의 첫 부분은 하경이 자취방에서 봤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경은 영상의 중간 부분을 재생했다. 화면과 소리가 멈추었다. 그리고 몇 초 뒤, 다시 재생됐다. 그새 여자는 남자의 아래에 깔려 있었다. 일정한 속도로 허리를 흔드는 남자. 그의 아래에서 남자와 눈을 맞추고 그를 받아내는 여자. 행위에 조금 더 적극적일 뿐, 역시 남자들의 환상을 충족해 주기 위해 만들어진 영상일 뿐이었다. 꾸민 신음은 절정을 연기할 때가 되면 크기만 커질 테다. 하경이 흥미를 일어갈 즘 영상 속 남자의 허리 움직임이 빨라졌다. 여자는 그녀의 양옆으로 뻗은 남자의 팔을 잡고 침대에 누워있던 상체를 일으켰다. 여자의 배가 말리며 숨었던 뱃살이 접혔다. 꾸민 신음은 어린 짐승이 그르렁대는 소리로 바뀌었다. 남자는 더 빠르게, 그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다. 여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다만 그녀는 눈만큼은 남자에게 고정한 채로 감지 않았다. 몇 초 뒤, 남자의 아랫배가 여자의 다리 사이에 자석처럼 척 달라붙었다. 여자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둘을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가 침대 머리 쪽으로 이동했다. 턱이 화면 위를 향하고 있는, 뒤집힌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여자는 정수리를 침대에 처박고 부르르 떨고 있었다. 윗눈꺼풀에 반 정도 가려진 초점 잃은 눈동자는 카메라 너머의 초월적인 무언가를 보고 있는 듯했다. 벌어진 입, 입꼬리에서 새는 침은 아래 놓인 코를 향해 흘렀다. 여자의 얼굴 너머로 땡땡하게 발기한 유두가 보였다. 유두가 파르르 떨었다.
진짜다. 이 여자는 진짜로 느끼고 있다.
하경은 스무 살 한여름 밤이 떠올랐다.
클럽에서 언제, 어떻게 나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당시엔 종종 술에 절어 고주가 되고는 했으니.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거벗은 채로 낯모를 남자의 아래에 깔려 있었다. 그리고 어찌하기도 전에 절정에 달했다. 아니, 이미 달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지가 경련했다. 경련에 이기지 못하고 뒤틀렸다. 허리가 들리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뭐에 젖었는지 엉덩이에 침대가 닿을 때마다 수분을 머금은 찬 기운이 느껴졌다. 이내 살이 닿으면 찰박 하고 소리가 날 정도로 침대에는 물이 고였다. 커어억, 커어억 하는 소리가 목에서 났다. 입에 고인 침이 목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끓었다.
그때의 내 얼굴도 영상 속 일본 여자와 같았을까? 정수리를 침대에 박고 거꾸로 침을 흘렸을까?
아직 재생되고 있는 영상 속 여자는 진이 빠진 듯 침대에 아무렇게나 누워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회상을 방해하는 여자의 숨소리가 거슬려 하경은 영상을 껐다. 아랫배에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경은 몸을 일으켜 침대에 정좌했다.
쾌감의 밤을 보낸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남자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두통과 메스꺼움이 일어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에 얼굴을 박고 속을 게웠다. 나체인 채로. 게우면서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고작 하루짜리 다짐이었지만.
원 나이트를 처음 경험한 또래들은 외간 남자와 몸을 섞었다는 배덕감과 죄책감, 소위 따먹히고 버려졌다는 비참함, 도망치듯 떠난 남자를 향한 배신감, 성병에 대한 두려움 따위의 감정들을 호소하고는 했다. 그들과는 다르게 하경은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가 선사한 쾌감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와 그날을 떠올리면 옷과 화장품과 술과 사람과 칭찬과 관심 따위가 다 뭔가, 싶었다. 끝내 하경은 쾌감을 재현하기 위한 시도를 하기에 이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 무언가에 홀린 듯 공부에 매달렸던 것처럼 이번에는 마귀가 씐 듯 쾌감을 찾아 헤맸다. 하경이 포르노를 처음 접한 것도 자기 위로를 처음 행한 것도 유희가 아닌 쾌감을 재현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러나 어떤 남자도, 어떤 기구와 영상도 한여름 밤 낯모를 남자가 선사했던 기형적인 쾌감을 재현해 내진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하경의 아랫도리에 물 한 방울 맺히게 하지 못했다.
막무가내로 시도한 대가는 매서웠다. 대학 입학 전 OT 때부터 하경을 시기, 질투했던 무리에게 하경의 음란한 소문은 좋은 수단이 되었다. 무리는 이미 돌고 있는 소문에 과장을 더하여 하경을 학교에서 쫓아냈다. 주변의 시선을 무시하고 오롯이 목표만 보고 달려든 자의 말로는 처량했다. 연이은 실패로 쾌감의 실재는 의심스러웠다. 그럼에도 하경은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태성 인터내셔널에 취직했고 남자를 물색했다. 그들 중 김 대리와 몸을 섞었다. 그 결과 천안 본가에 고립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토록 서울에 집착했던 이유가 다시 상기되었다. 그런 이상 하경은 행동하지 않고 견딜 수 없었다. 침대를 박차고 일어났다.
평소와 다른 시간에 방문이 열리자 주방에 있던 엄마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하경은 주저앉은 엄마가 보는 앞에서 문지방을 넘었다. 그리고 말했다.
“복학할게.”
하경의 말을 듣고 엄마는 눈물을 흘렸다. 한동안 울었다.
샤워부터 하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정리했다. 길이가 제각각인 하경의 머리에서 그녀의 과거가 엿보였기 때문일까, 미용사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나 이내 추스르고 실력을 발휘했다. 가장 짧은 가닥에 전체 기장을 맞추어 단발머리를 했다.
그날 저녁 퇴근한 아빠는 소파에 엄마와 나란히 앉아 있는 멀끔한 하경을 보고 방 안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아빠는 자취방에서 그랬던 것처럼 신발장에 선 채로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이 전과 다르게 ‘안도’를 뜻한다는 것을 하경은 알았다.
복학 시기는 당장 다음 달로 정했다. 단, 어떤 상황에서도 자취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었다. 외박도. 서울 자취방에서 끌려온 그날 일에 대해서는 가족 중 누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찾아온 화목을 필사적으로 지키려는 듯 보였다. 하경도 입을 다물었다. 따라서 하경은 부모님이 김 대리와의 사건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딱히 알고 싶은 것도 아녔다.
복학을 앞두고 하경이 가장 불안했던 요소는 이제 3학년을 다니고 있을 대학 입학 동기들이었다. 부디 그들이 자신이 학교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모르길 바랐다. 다행히 딱 한 번, 동기 중 한 명을 먼발치에서 본 일을 제외하고 졸업까지 그들을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학교생활은 단조로웠다.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섰다. 수수한 복장을 하고 모자를 눌러썼다. 화장도 하지 않았다. 강의가 끝나면 조건 없이 천안으로 돌아왔다. 축제, MT 등 행사도 소극적으로 참여했으며 될 수 있으면 참여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조별 과제 또한 자료 조사를 담당하는 방향으로, 조원들과는 온라인으로 자료를 건네고 의견을 나누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게 철저했음에도 하경에게 다가오는 남학생들이 간혹 있었다. 그들의 은근한, 때로는 당당한 유혹이 뻗칠 때면 하경의 속에서는 성적 호기심이 일었다. 매 순간을 참고 견뎠다. 빠른 취업을 위해서. 전과 같이 떼를 써서 얻어낸 반쪽짜리 독립이 아닌, 합법적으로 얻어낼 완전한 독립을 위해서. 서울에 소재를 둔 번듯한 회사에 취직하면 부모님도 무조건 자취를 반대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했었으니 앞으로 삼 년 반이었다. 그날은 오지 않을 것처럼 아득했다. 그래봐야 시간. 흐르지 않고 별수 있었을까. 2019년. 하경의 나이 스물다섯, 4학년이 되었다. 2월, 각 기업의 상반기 신입 사원 공개 채용이 시작되었다. 하경은 같은 학년들보다는 이른 그러나 또래들보다는 늦은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 취업 후 부모님에게 독립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들의 입에서 잡음이 나지 않게 하려면 태성 인터내셔널과는 달라야 했다. 기업의 규모가 적어도 중견 이상은 되어야 했다. 하경은 서울 소재 기업 중 규모가 중견 이상인 곳이라면 일단 지원했다. 아무 연락도 받지 못했다. 패배가 확정된 단 하루 슬펐으나 이내 추슬렀다. 하반기 공채가 남았으니까. 그러나 하반기에도 하경은 참패했다.
2020년 2월 초. 차라리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사진을 찍었다면 어땠을까. 웃으라는 사진 기사의 주문과 부모님의 닦달에 못 이겨 입꼬리를 올렸으나 졸업 사진 속 티끌 없이 기쁜 부모님 사이 하경의 얼굴은 개구기를 착용한 것처럼 입만 웃는 모습으로 기괴하게 남았다.
뜻대로 되지 않는 취업 탓에 예민했다. 그런 상태로 집에만 있다 보니 부모님과의 마찰이 잦아졌다. 물론, 사 년 전 서울에서 아빠에게 머리채를 잡혀 끌려 내려왔을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의 것들은 그저 투덕거림일 뿐이지만, 그마저도 하경은 지긋지긋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아르바이트라도 구해볼까 싶었으나 멀어진 천안 친구들을 만날까 봐 겁이 나서 그만두었다. 보란 듯이 연을 끊어놓고 다시 천안으로 돌아와 잔류하고 있는 지금 모습을 그들에게 비치고 싶지 않았다.
벗어날 곳이라곤 인근의 도서관밖에 없었다. 눈을 뜨면 요기를 하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상반기 신입 사원 공개 채용이 시작되기까지 두어 달 정도 남았다. 하경은 이르게 준비를 시작했다. 전년도 지원 경험을 토대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작성했다.
그러던 중 유일한 대피처였던 도서관마저도 문을 닫았다. 작년 말 중국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확산하면서 모든 편의 시설 운영을 중단하라는 정부의 지침에 따른 것이었다. 하경은 또다시 고립되었다. 하루하루가 고달팠다. 사소한 이유로 부모님과의 다툼은 시작되었고 다툼이 끝나면 또 다른 사소한 이유로 다툼이 계속되었다.
3월 말. 한기가 누그러질 즘이었다. 기업 중 몇몇이 이르게 상반기 신입 사원 공개 채용을 시작했던 터라 하경은 몇 군데에 지원했다. 그녀가 눈여겨 둔 기업들은 곧 채용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더없이 중요한 이때, 중국발 바이러스에 확진되었다. 확진자들을 격리한다는 정부 지침에 따라 하경 또한 병원을 찾은 그 길로 병동에 격리되었다. 의사가 내린 확진이라는 선고는 하경에겐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패배가 확정되었음을 뜻했다. 동시에 또 여섯 달 이상의 시간을 부모님과 되지도 않는 이유로 투덕거리며 보내야 한다는 뜻과도 같았다. 격리된 병동 안에서 하경은 눈물을 흘렸다. 자기에게만 모질게 구는 세상이 야속해서, 타고난 팔자가 저주스러워서, 처한 신세가 서러워서. 가 아니라 생에 겪어보지 못한 고통 때문에. 그간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바이러스의 위력은 대단했다. 하경은 취직이고 독립이고 나발이고 다만 살기를 바라며 사경을 헤맸다.
병동 안에서 일주일째 아침이 밝았다. 장기까지 쏟아낼 듯한 기침이 멎었다. 기침 때문에 아프던 가슴 통증도 가셨다. 두개골을 정으로 쪼개는 듯한 두통은 아직 남아있었지만, 강도는 줄었다. 들이마시지도 못하게 꽉 막힌 채로 콧물을 쏟아내는 코만큼은 여전했다. 외부인이 들여다보지 못하게 닫힌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아침 볕이 병실 바닥을 비췄다. 콧물이 흐르지 않도록 휴지로 코를 틀어막은 하경은 아침밥을 기다리는 참이었다. 그때 하경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메일이었다. 미리 보기에서 얼핏 축하라는 단어를 보았다. 메일을 열었다. 메일은 격리 전에 지원해 둔 기업에서 왔다. 서류 전형에 합격했다는 소식이었다. 바이러스가 물러가고 합격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날 저녁까지 하경은 두 건의 메일을 더 받았고 메일은 모두 서류 전형 합격을 축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합법적 독립. 하경의 눈에 서울의 풍경이 어른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