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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우 Oct 25. 2024

12. Bella


후미진 굽은 산길을 올랐다. 앞서고 뒤를 잇는 차들이 없었다면 적잖이 무서웠을 테다. 길 끝에 이르자 호텔이 보였다. 애써 진정시킨 마음이 다시 들뜨려는 것을 침착하자고 되뇌어 다스린다.

이동하는 동안 마스크를 벗어볼 수 있냐고 보채는 J를 말리느라 애를 먹었다. 하경은 이 만남을 한 번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따라서 마스크에 쓸려 화장이 번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마스크를 사수했다.

화장에 공 좀 들일걸, 하고 뒤늦게 후회했다. 

차는 호텔 정문 앞에 멈췄다. J가 거치대에서 휴대전화를 빼내자 차 안에 흐르던 음악도 멈춘다. 호텔 직원 두 명이 다가온다. 한 명은 하경이 탄 조수석 문을 열고 다른 한 명은 운전석 문을 연다. 차에서 내린 J가 다가와 어깨를 감싼다. 연인처럼. 평소 같은 조건 만남이었다면 정색하고 뿌리쳤을 테지만, 오늘은 아니다. 호텔 직원이 운전하는 J의 차가 움직인다. 뒤로하고 호텔 안으로 들어선다. 키보다 두 배는 높은 크리스마스트리가 보인다. 그 뒤로는 고급스러운 카페가 있다. 

“잠깐 둘러보고 있어요.”

J는 말하고 프런트로 향한다. 크리스마스트리에서 시선을 떼고 주변을 둘러본다. 로비를 거니는 많은 사람들. 하경은 대한민국에 돈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들 가운데 선 자신의 모습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마치 지위와 신분을 타고난 것처럼. 기분 좋은 기시감에 취한다. 어깨를 감싼다. 그 바람에 망상에서 깬다. 고개를 돌려 본다. J다. 이마가 조금 넓은. 그가 이끈다. 


객실은 호텔 최고층에 있었다. 앞서 걸어가 객실 문을 연 J는 문이 닫히지 않도록 잡고 서양 신사들이 인사할 때처럼 과장된 몸짓으로 객실 내부를 가리키며 하경을 바라본다. 그를 지나쳐 객실로 들어선다. 통창으로 된 벽으로 서울의 야경이 내려다보인다. 하경은 홀린 듯 창으로 다가간다.

“이제 마스크 벗어도 되지 않아요?”

뒤돌아 그를 마주한다. 이미 마스크를 벗은 J의 얼굴. 뾰족한 콧방울, 턱 끝을 꼭짓점으로 수렴하는 날카로운 턱선. 잡티 없는 흰 피부는 수염 자국조차 보이지 않는다. 병원에서 시술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받고 있을 것이다. 얇은 입술 끝에는 위로 빙긋 솟은 입꼬리가 뵌다. J의 외모를 되짚는다면 그 입꼬리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화장실 좀 다녀와서 벗을게요.”

그렇게 답하고 화장실로 향한다.

“설마 스타킹 갈아 신고 그러는 건 아니죠?”

J가 묻는다. 하경은 침대로 돌아와 보란 듯이 가방을 두고 화장품 파우치를 꺼내 든다.

“이제 됐죠?”

되물으며 엄지와 집게손가락만으로 파우치를 집어 들고 살살 흔든다. 다분히 도발적으로. 원래도 위를 향하고 있는 J의 입꼬리가 한껏 더 위로 솟는다.

“씻고 나오지 마요!”

J가 하경의 뒤로 소리친다. 그의 변태적인 취향에 넌더리가 난다. 화장실 문을 닫고 소리 죽여 탄식한다. 옷을 벗고 호텔 가운을 두른다. 양치를 하고 화장을 고친다. 벗은 옷은 그대로 두고 파우치만 들고 화장실에서 나온다. 

J는 탁자에 앉아 다리가 긴 잔을 들고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 탁자 위에는 보란 듯이 화려한 라벨이 붙은 술병과 술이 반쯤 찬 잔이 놓여 있다. J가 휴대전화에서 눈을 떼고 하경을 바라본다. 비로소 마스크를 벗은 하경을 마주한 그가 흡족한 듯 웃는다. 입꼬리.

“빨리 와요, 비싼 향 다 날아가겠네.”

하경은 J와 마주 보고 앉는다. 잔에 담긴 술의 영롱한 황금빛과 피어오르는 구슬 같은 기포가 너무나 귀하다. 하경은 잔의 긴 다리를 잡아든다. J가 잔을 내민다. 하경도 잔을 내밀어 J의 잔에 살짝 갖다 댄다. 짱 하고 맑은소리가 난다. J가 하경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잔을 입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한 모금 머금는다. 하경 역시 잔을 입에 가져다 대고 기울인다. 차가운 술이 입술에 닿는다. 그 찬 기운에 문득 얼마 전 본 마약을 다룬 드라마가 떠오른다. 드라마에서는 마약이 경구 투여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시사했다. 연이어 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읽은 마약 사건 기사도 하경의 머릿속을 스친다. 하경은 입술을 벌리지 않는다. 대신 코로 비싼 술의 향만을 한껏 들이킨다. 하경이 잔을 내려놓자 J가 까르르 웃는다.

“마신 거 맞아요?”

J의 물음에 하경은 멋쩍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한다.

“하… 이거 비싼 거예요. 술 못해요?”

J가 다시 다그치듯 묻는다.

“안 씻으세요?”

하경은 답하지 않고 되묻는다.

웃음기를 거두지 않고 말없이 하경을 바라보는 J. 그러다 잔을 들어 그 안에 남아있는 술을 한 번에 들이키고 화장실로 향한다. 하경은 창밖 야경을 바라본다. 혹시라도 J의 심기를 건든 것은 아닌가 싶어 후회한다. 하지만 잔에 손을 대지는 않는다.


화장실에서 나온 J는 하경과 똑같은 가운을 두르고 있다. 반듯했던 가르마는 없고 앞머리가 이마를 덮었다. 훨씬 앳되어 보인다. J는 하경에게 다가와 뒤에 선다. 뒤에 선 그는 하경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 한데 모아 등 뒤로 넘긴다. 다시 위로 올라온 손이 하경의 귀를 쓰다듬다가 목을 지나 가슴으로 향한다. 하경은 눈을 감고 턱을 살짝 든다. 그러면서 옆통수를 J의 팔뚝에 비비며 가쁘지도 않은 숨을 억지로 몰아쉰다. 일을 빨리 끝내기 위해 거듭해 온 연기가 이제는 퍽 자연스러워졌다. 하경의 가슴을 유린하던 J는 그녀의 손을 잡고 침대로 이끈다. 하경은 그 힘에 반하지 않고 순순히 침대에 눕는다. J가 하경의 가운을 연다. 스타킹만 신고 있는 하경의 맨몸이 활짝 드러난다. 스타킹 속 팬티는 벗고 없다.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칠 때 미리 벗어 두었다. 만족한 듯한 J의 표정이 뵌다. J는 무릎을 꿇고 앉아 하경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비비다가 천천히 아래로 향한다. 그의 얼굴이 하경의 발끝에 이른다. 그는 두 손으로 하경의 두 발을 고이 모아들고 코를 파묻는다. 숨을 한껏 들이마시는 J. 

정말로 좋아서 이러는 걸까. 고린내밖에 안 날 텐데…….

자기 발을 희롱하는 J의 모습을 보고 하경은 혐오감이 인다. 그러나 앞으로 몇 번이나 거듭될 J의 취향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자기를 다그친다.

하경의 체취를 즐기던 J가 그녀의 다리 사이로 손을 뻗어 스타킹을 찢는다.

“콘돔, 콘돔 껴야 해요.”

하경이 다급하게 몸을 일으키며 말하자 J가 흥분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바라본다. 묘한 표정이다. 어쩌면 화가 난 것 같기도 하다. 한참 놀던 중에 장난감을 빼앗긴 어린아이처럼.

“제가 씌워 줄게요. 이건 서비스.”

하경은 달래듯 말하고 탁자 위에 올려둔 파우치에서 콘돔과 소분한 윤활제가 담긴 통을 꺼낸다. 윤활제가 든 통은 뚜껑을 열어 J에게 보이지 않게 손 안에 쥔다. 다시 침대로 돌아온다. 무릎을 꿇고 있는 J, 그의 발기한 성기가 가운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크지도 작지도 않다. 특징이라면 하경이 지금껏 겪어온 상대들의 검붉은 색 성기와 다르게 분홍빛이 지배적이다. 하경은 J의 앞에 절하듯 엎드려서 그의 물건을 입에 머금는다. J가 하경의 머리카락을 움켜쥔다. 앓는 듯한 신음을 내며. 

하경은 J의 뒤로 손을 뻗어 윤활제를 손바닥에 덜어낸다. 입에 머금은 그의 성기를 혀를 굴려 쓰다듬으며, 눈을 치켜떠 그의 얼굴을 찾는다. 그의 얼굴은 천장을 향하고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 틈에 윤활제가 묻은 손을 자기 성기로 가져가 쓱 문질러 바른다. 

조건 만남을 하다 보면 하경이 전혀 흥분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실망하는 구매자들이 종종 있었다. 그러건 말건 하경은 윤활제를 바르는 모습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어차피 한 번뿐일 만남이니까. 그러나 훗날을 기약해야 하는 J를 실망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J의 성기에서 천천히 입을 뗀다. 침이 지익 늘어져 가닥이 된다. 침에 젖어 번들거리는 그의 성기에 콘돔을 씌운다. 그 위에 입안에 모은 침을 흘린다. 침이 잔뜩 묻은 J의 성기를 손에 쥐고 위아래로 흔든다. 또다시 J가 신음한다. J의 성기에 흘린 침은 거품을 내며 아래로 흘러 그의 고환을 적시고 그 끝에 방울지더니 이내 침대 위로 떨어진다. 하경은 J를 밀어 침대에 눕힌다. 그 위에 올라타 손수 J의 물건을 삽입한다. 허리를 앞뒤로 밀고 당기고 또 위아래로 들었다 놓는다. 그러길 고작 몇 번, J가 하경의 허리를 양손으로 잡더니 움직이지 못하게 당긴다. 사정까지 너무나 빠르다. 그 모습이 가소로워 터지려는 웃음을 하경은 가까스로 참는다. J가 웃음을 참는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그의 위에 몸을 포개어 끌어안는다. J도 하경을 끌어안는다. J의 숨이 가쁘다. 하경도 웃음을 참느라 호흡이 고르지 않다. 웃음기가 가시고 나서 하경은 J의 양어깨를 짚고 몸을 일으킨다.

“좋았어요?” 

하경이 묻자. 

“한 번 더.” 

J가 답한다. 그러고는. 

“십오.” 

제멋대로 가격을 제시한다.

하경은 답하지 않고 J의 몸에서 내려온다. 몸 안에서 물컹한 것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난다. 침대 가장자리에 둔 가방 속에서 편의점에서 산 생수를 찾아 꺼내 든다. 동나고 없다.

“이십? 이십이면 돼요?”

J가 다시 묻는다. 그의 터무니없는 가격 제시에 하경이 소리 내어 웃는다. 뒤돌아 J를 바라본다. 사랑스럽다는 듯이 아니, 정말로 사랑스러워서.

“냉장고에 물 있어요.”

하경의 웃음을 긍정의 뜻으로 받아들인 J가 냉장고를 가리키며 말한다. 하경이 냉장고로 가 생수를 꺼낸다. 또 한 번 마약을 다룬 드라마와 지하철에서 읽은 기사가 떠오른다. 플라스틱 뚜껑의 연결부를 보고 개봉한 적이 없음을 확인한다. 안심한다. 뚜껑을 잡고 손에 힘을 준다.

“벨라!”

갑작스럽게 자신의 SNS 닉네임을 외치는 J의 목소리에 놀라 그를 바라본다. 힘 조절을 잘못했는지 물이 튀었다.

“아, 깜짝이야. 갑자기 뭐예요?”

뚜껑을 쥔 손으로 가슴팍에 튄 물방울을 쓱 닦아내며 하경이 묻는다.

“왜 벨라로 지었어요?”

자신을 놀라게 한 목소리 크기에 비해 싱거운 J의 질문은 뒤로하고 목을 먼저 축인다. 차가운 느낌이 몸속을 타고 흐른다. 고급 호텔에서 제공하는 생수치고는 그 맛이 영… 찝찌름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 종일 요거트와 바나나 하나밖에 먹지 않았다.

“영화 트와일라잇 알아요? 그 영화에 나오는 여주인공 이름이 벨라예요.”

물이 절반이나 없어진 플라스틱병을 J에게 건네며 말한다. J는 고개를 저어 사양한다. 하경은 병의 뚜껑을 잠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지고 다시 J의 위에 올라탄다.

“뭐야? 물어봐 놓고 왜 아무 말도 없어요?”

J는 대답 없이 하경에게 손을 뻗어 그녀의 목덜미를 잡고 당긴다. 입술에 그의 입술이 닿는다. 그러고는 하경을 끌어안은 채로 몸을 굴린다. 하경의 위로 올라온 J는 자신의 욕구만을 채우려던 첫 번째 섹스와는 다르게 그녀의 귀부터 목으로, 목에서 가슴으로 머리를 옮겨가며 정성스레 애무한다. 역시 아무런 느낌 없다. 하경은 윤활제가 말라서 다시 보송해졌을 자기 성기를 숨기고자 몸을 일으키려는데 J가 가슴팍을 눌러 저지한다.

“가만히. 그냥 가만히 있어 봐요.”

하경을 내려다보며 말하는 J. 무언가를 확신하듯 웃는다. 입꼬리. J의 얼굴이 천천히 하경의 다리 사이로 향한다. 

안 젖는 거. 들켰네.

하경은 체념하고 침대 위로 고개를 누인다. 서울의 야경이 눈에 든다. 야경 빛이 저리도 찬란했던가. 잡아먹을 듯 들이치는 빛이 황홀하기 그지없다. 아랫도리에 저릿한 느낌이 든다. 반가운 감각에 놀란 하경은 누인 고개를 든다. 자기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어 정수리만 드러난 J. 또 한 번 저릿한 아랫도리, 그 감각이 이번에는 아랫도리에서 그치지 않고 허리 줄기를 타고 오른다. 하경은 뒤통수를 침대에 박는다. 아니, 뒤통수가 침대에 박힌다. J가 이리저리 혀를 놀릴 때마다 하경의 허리가 말렸다 휘었다 튀었다 비틀리고 다시 말린다.

“좋아?”

고작 두 음절일 뿐인데 J는 한참 동안 말을 뱉는다. 하경은 그의 말을 아주 긴 시간 동안 듣는다. 어떤 소리보다도 커서 귀가 먹먹해진다. 아니, 어쩌면 아까부터 들려오던 짐승의 울음소리가 귀를 먹먹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J가 고개를 든다. 아주 천천히. 그의 움직임이 너무나 느려 답답할 정도로.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은 그의 뒤로 후광이 된다. 그가 위로 올라온다. 아주 느리게. 오랜 시간 동안. 이내 그가 하경의 안으로 비집고 들어온다. 

괴롭다. 괴로워서 그만뒀으면 좋겠다. 아니, 그만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쾌감의 고통에 이를 악문다. 그제야 내내 들리던 짐승의 울음소리가 자신이 내던 소리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침대가 몸을 감싼다. 포근하다. 침대가 나를 삼킨다. 아니, 침대는 삼킬 수 없으니까. 가라앉는다. 침대 밑으로. 침대를 뚫고 아득하리만치 저 아래로. 다시 튀어 오른다. 침대가 뱉어낸 몸이 튀어 오른다. 아니, 침대는 뱉을 수 없으니까. 저 위로, 천장에 닿게, 천장을 뚫고. 튀어 오른다.

그만. 아니, 영원히. 영원보다 더 영원히.


쨍한 소음에 눈을 뜬다. 객실 전화가 울리고 있다. 누운 채로 손을 뻗어 받는다. 호텔 직원이 퇴실 시간까지 삼십 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비보를 전한다. 하경은 수화기를 던지듯 내려놓는다. 통창 너머 저 멀리 얼마 남지 않은 오전의 해가 높다. 눈이 부셔 감아버린다. 객실 밖 복도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소리. 그 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혼자 남았음을 깨닫는다. 상체를 일으킨다. 여전히 스타킹을 신고 있다. 사타구니 부분에는 애액이 희게 굳었다. 침대 아래 바닥에 발을 딛고 일어선다. 몸 여기저기를 움직여 올바르게 작동하는지 확인한다. 통창 아래 놓인 테이블로 향한다. 하경의 발에 플라스틱 생수병이 차인다. 병은 탁자 다리에 부딪혀 속이 빈 소리를 내고는 객실 구석으로 나가떨어진다. 호텔에서 제공한 생수병이다. 바닥의 물기에 스타킹이 젖었다. 

탁자 위엔 현금과 호텔 문장이 옅게 인쇄된 종이가 놓여있다. 종이에는 ‘에드워드가.’라고 적혀있다. 통창의 커튼을 닫는다.

‘찾았다.’

하경은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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