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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우 Oct 25. 2024

13. 2년 전. (1)


인천 공항에는 중국발 바이러스 상황반이 설치되었다. 국립인천공항검역소는 ‘관심’에서 ‘주의’로 검역을 강화했다. 입국장 소독 빈도는 주 1회에서 3회로 늘렸다. 해외에서 고국으로 돌아온 이들 모두는 증상이 없더라도 혹시 모를 확산 방지를 위해 예외 없이 격리되었다. 바야흐로 정부와 국민이 하나 되었다. 세계는 K-방역이라 극찬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 또 너무나 허무하게 대한민국의 방역 방어선은 밖이 아닌 안에서부터 무너졌다.


2020년 2월 11일 세계보건기구는 중국발 바이러스를 코로나19라고 명명했다. 같은 달 16일 대한민국 경기도 과천에서 사이비 종교의 비밀스러운 집회가 열렸다. 집회가 끝나고 신도들은 사회로 숨어들었다. 온몸에 바이러스를 덕지덕지 바르고. 바이러스는 전국으로 확산했다. 이렇게 야기된 코로나 1차 대유행은 향후 삼 년간 지속될 코로나 시대의 시발점이었다.


2020년 4월 8일. 서울시 강남구에 소재를 둔 유흥업소 근무자가 확진되었다. 그가 근무하던 시간에 업소를 방문했던 이는 어림잡아 100명. 서울시는 대규모 확산을 막기 위해 같은 달 19일까지 유흥업소를 대상으로 집합 금지를 명령했다. 이는 사실상 유흥업소의 영업 중단을 뜻했다. 그리고 5월 8일. 경기도 용인시에서 발생한 확진자가 자가격리 장소를 이탈해 이태원 클럽을 방문했고 그와 접촉했던 11명이 확진되었다. 그에 서울시는 6월 7일까지 또 한 번 집합 금지를 명령했다. 바이러스의 확산세에 따라 기한이 연장될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아서.


2020년 5월. 하경은 서둘렀다. 자취방을 구하려고 천안에서 서울을 서너 번 홀로 오갔다. 동행하겠다는 엄마를 떼어내는 것이 매번 고역이었다. 연을 끊을 생각은 아니었다. 다만, 전과 같은 갑작스러운 방문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또 쾌감을 재현하는 데 있어 어떠한 간섭도 받고 싶지 않았기에 자취방 주소를 알리지 않았다.

서울의 여러 지역을 돌아봤지만, 월세가 가장 저렴한 곳을 찾다 보니 사 년 전에 살던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자취방을 계약하게 됐다. 통근 거리는 지하철로 사십 분 정도. 자취방을 계약한 후 천안으로 돌아와 일 인분의 살림살이와 옷가지를 택배로 보냈다. 그다음 날 서울로 향했다. 기차에서 내려 탁한 공기를 폐에 머금자 비로소 실감이 났다.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는 것이.


첫 출근부터 며칠 동안 하경을 포함한 다섯 명의 신입 사원들은 이곳저곳 불려 다니며 교육을 받았다. 하루 종일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탓에 서로의 얼굴을 모르는 중에도 동기인 남자 사원 한 명은 하경에게 치근덕댔다. 몸담은 집단에서 남자와 엮이는 행동은 항상 끝이 좋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하경은 꼭 그 당시 김 대리를 대하듯 그의 질문에는 사족 없이 답변만, 농담에는 이해하지 못한 척 모르쇠로 일관했다.

정부에서 시행한 집합 금지 명령의 덕을 보았다. 신입 사원 OT, 회식 등은 전면 취소되었고 거론조차 되지 않았기에 퇴근 후 이런저런 행사들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양날의 검으로 하경의 소망을 실현하는데 더 없는 걸림돌이 되었다. 클럽은커녕 번화가조차 맘 편히 거닐 수 없는, 집과 회사만을 오가는 지루한 일상이 계속됐다.

사이비 종교의 집회로 야기된 1차 대유행이 잠잠해질 무렵이었다. 뉴스에서는 대유행 이후 줄어가는 신규 확진자 수를 긍정적으로 시사했다. 그러나 8월 15일 광복절, 1차 대유행을 야기한 종교가 아닌 또 다른 사이비 종교가 정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벌였다. 집회 참여자들은 감염 여부 검사를 거부하고 사회로 숨어들었다. 당연하게도 그들의 행동은 2차 대유행으로 이어졌고 이 사건을 변곡점으로 하경의 속에는 특정 종교를 향한 맹목적인 혐오가 자리 잡았다.

연일 우울한 뉴스가 계속됐다. 늘어만 가는 신규 확진자와 사망자 수를 읊는 것으로 뉴스는 시작해서 손님이 끊겨 생계유지가 어려워진 자영업자들의 한숨과 취업이 어려워진 젊은이들의 한탄을 대변했다. 그런가 하면 수도권에 국한된 집합 금지 명령을 피해 지방 클럽으로 모여 확산세에 힘을 더하는 젊은이들을 고발하기도 했다. 인터넷에는 엄벌주의가 만연했다. 청원 24 웹사이트에는 1, 2차 대유행을 야기한 종교의 교주들과 교인들, 집합 금지 명령을 어긴 모든 이를 부디 엄벌해 달라는 대중들의 청원이 이어졌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청원 링크가 무수히 공유됐다.

위축된 경제 탓에 기업들도 존망의 기로에 섰다. 하경의 회사 내에서도 정리해고가 시작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이 사실이었는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나, 둘씩 보이지 않았다. 모두 연봉이 높음 직한 간부급이었다. 직급이 낮은 사원들과 하경을 포함한 신입 사원들은 안심했다.

뉴스는 재택근무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대기업과 IT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은 사원들의 출근을 고수했다. 중견에 속하는 하경의 회사는 일주일 중 단 하루, 목요일에만 재택근무를 실시했다. 이런 결정을 내린 사내 높으신 분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사원들의 재택근무라는 것은 구시대적인 그들의 시선에 사측의 대단한 손해로 비쳤을 것이며, 그와 동시에 규모는 중견이지만 나름대로 대중들에게 알려진 기업이랍시고 눈치를 보지 않을 수는 없었을 테다. 두 입장을 타협해 내놓는다는 것이 감염 예방이라는 목적에서 완전히 벗어난 허울뿐인 재택근무였을 것이라고 하경은 추측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출근길 지하철에서 소모되는 시간만큼 더 잘 수 있었기에 하경은 매주 목요일을 기다렸다.


10월의 어느 목요일이었다. 하경은 귀를 때리는 휴대전화 알람에 눈을 떴다. 오전 아홉 시. 전날 회사에서 챙겨온 노트북 앞에 앉아 메신저로 출근 보고를 하고 주방으로 향했다. 밤새 건조해진 목을 축이는데 또 한 번 알람이 울렸다. 아홉 시 삼 분. 화장실로 향해 앞머리를 적시고 샴푸로 거품을 내던 중 세 번째 알람이 울렸다. 아홉 시 오 분.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아홉 시부터 이, 삼 분씩 간격을 두고 아홉 시 십오 분까지 설정된 알람을 모두 끄고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오전 회의 전까지 이십오 분 정도가 남았다. 

화상회의니까 양치까지 할 필요는 없다. 재택근무를 하는 날에 세면은 항상 앞머리만 감고 세수로 마무리해 왔다. 화장품 파우치와 고데기를 챙겨와 노트북 앞에 앉았다. 코 위에만 화장하고 고데기로 앞머리를 말았다. 상의를 갈아입고 마스크를 쓰고 온라인 회의실에 접속했다. 아니나 다를까 하경을 포함한 여자 사원 모두는 각자의 집에 있음에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녀들도 하경처럼 마스크 위로, 얼굴이 드러난 부분에만 화장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꼴이 매주 봐도 재미있어 하경은 속으로 웃었다. 재택근무가 시작된 첫날, 집 안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있는 여자 사원들을 보고 코로나에 확진되었냐고 호들갑을 떨며 묻던 팀장은 이젠 그녀들의 마스크 속 사정을 알았는지 아무 언급 없이 회의를 이끌었다. 회의는 삼십 분 정도 후에 끝났다. 팀장의 퇴장을 시작으로 선임들이 하나, 둘 온라인 회의실을 떠났다. 온라인 회의실에는 하경과 여자 선임 둘이 남았다. 막내인 하경은 모두가 퇴장하길 기다렸다. 먼저 나가라는 선임들의 말에 온라인 회의실을 나왔다. 유독 친한 둘은 아무도 없는 온라인 회의실에서 한동안 떠들 테다. 하경은 노트북 옆에 둔 휴대전화를 들어 SNS를 실행했다.


지난 5월, 상경 후 하경이 되찾은 자유와 주말이면 홀로 술잔을 기울이는 낭만은 더도 덜도 아닌 딱 한 달 만에 외로움으로 치환되었다. 어울릴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 입사 동기들은 퇴근 후 종종 제각기 짝지어 술집으로 향했다. 하경도 더러 참석했었다. 이즘 정부는 코로나 2차 대유행의 여파를 막기 위한 정책인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시행했다. 정책에 따라 음식점 영업시간은 밤 9시까지로 제한되었다. 그런 탓에 동기들은 술을 들이부었다. 시간 내에 취하기 위해서. 이럴 바에는 차라리 혼자가 낫겠다고 하경은 생각했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퇴근길엔 항상 술을 사 들고 집에 돌아왔다. 빨리 취해 빨리 잠드는 것이 조금이나마 외로움을 죽이는 방법이었다.

어느 토요일 저녁. 그날도 어김없이 취했으나 늦은 오후쯤 마신 커피 때문인지 취기도 하경을 잠재우지 못했다. 하경은 문득 다른 사용자들이 올린 게시물을 보기 위해 만들어 둔 SNS에 사진을 올렸다. 취기가 부추겼다. 유난히 화장이 잘 된 어느 날 출근길에 찍은 사진이었다. 이내 SNS 사용자들이 하나, 둘 찾아와 ‘좋아요'를 뜻하는 버튼을 누르는가 싶더니 다음 날 아침에 확인한 좋아요 수는 무려 오십 건이 넘어있었다. 그것은 곧 일면 부지의 사람들이 하경에게 보내온 관심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하경은 SNS를 시작했다. 잦은 활동과 쏟은 정성 때문인지 하경의 SNS를 구독하는 사람들과 게시물에 달리는 댓글이 늘었고 사진 속 하경이 입고 있는 옷이나 화장품의 정보를 묻는 메시지도 받았다. 하경이 게시물을 올릴 때마다 빠지지 않고 그녀의 SNS에 찾아와 댓글을 달고 하트 버튼을 누르며 팬을 자처하는 이들도 생겼다. 출퇴근하는 동안 지하철 안에서, 점심시간에, 심지어 근무 중에도.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SNS 알림을 확인하는 것이 하경의 일과가 되었다. 사용자들이 누르고 간 하트 수에 따라 하경의 기분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했다.


오늘 아침은 시작이 좋다. 좋아요 수가 많이 누적됐을 뿐만이 아니라 메시지도 꽤 많이 와 있었다. 메시지 함을 열어 위에서부터 차례로 확인했다. 대부분 하경의 외모를 칭찬하거나 사진 속 하경이 입고 있는 옷과 가방, 또 사용한 화장품의 브랜드를 묻는 메시지들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 남자들이 보내온 발기한 성기 사진들이 끼어있었다. 여느 때처럼 천박한 대사와 함께. 

언젠가 방송에서 여자 유명인들이 SNS로 성기 사진을 보내지 말아 달라며 호소하는 것을 하경은 보았다. 그들 중 몇몇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하경은 그들과 달랐다. 다양한 모양의 성기 사진들은 하경에게 관심이나 칭찬과는 다른 재미로 다가왔다. 성욕을 충족하기 위한 소재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적나라한 사진을 본다고 해서 성욕이 일지는 않았다. 다만.

이런 모양이라면 어떨까, 이런 두께와 길이라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일어 오래도록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메시지들을 거의 다 읽어갈 즘 흥미로운 문구가 눈에 들었다. 확인했다. 역시 잔뜩 발기한 성기 사진이 먼저 보였다. 문구는 그 아래 적혀 있었다. 

-길이 16, 두께 12. 혹시 조건도 하세요?

조건? 

하경은 곧장 인터넷에 ‘조건’을 검색했다. 제일 상단에는 조건의 국어사전에 따른 의미가 검색됐다. 그 아래로는 필요조건과 충분조건 또 그 아래로는 법률 용어인 정지 조건과 해제 조건의 설명이 이어졌다. 하경은 메시지를 보낸 이가 말하는 조건은 이따위 것들이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검색엔진을 바꾸어 다시 조건을 검색했다. 역시 국어사전에 따른 조건의 의미가 가장 상단에 검색됐으나 화면을 내리자 ‘은밀한 성매매 조건 만남.’이라는 기사의 제목이 보였다. 하경은 조건 만남이라고 검색어를 수정했다. 가장 상단에 온라인 백과사전이 보였다. 백과사전은 조건 만남의 정의를 ‘인터넷을 통해 성 판매자와 성 구매자가 조건(금액 혹은 금품)에 대해 합의하고 실제로 만나 성관계 후 합의된 금액이나 금품을 주고받는 행위.’라고 서술하고 있었다. 그 아래로는 조건 만남으로 피해를 본 이들을 취재한 기사가 열거되었다. 역시나 찾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하경은 무심히 화면을 내렸다. 그러다 검색엔진이 제시하는 추천 검색어가 보였다. 여러 개의 추천 검색어 중 세 번째에 위치한 ‘조건 만남 후기’를 눌렀다.


노트북에서 울린 사내 메신저 알림에 하경은 휴대전화에서 눈을 뗐다. 잠자기 상태에 들어간 노트북을 깨웠다. 팀장이 보낸 메시지였다. 

-점심 맛있게 드세요.

시계를 보니 오전 회의가 끝나고 두 시간이나 지나있었다. 물 말고는 입에 넣은 것이 없는데 배가 고프지 않았다. 

두 시간 동안 조건 만남에 관해 하경이 알아낸 것이라고는 업계에선 조건 만남을 조건이라고 줄여 부른다는 사실과 조건 만남을 할 수 있는 SNS와 할 수 없는 SNS가 존재한다는 사실 두 가지뿐이었다. 은행 앱, 배달 앱, 온라인 커뮤니티 같은 양지의 것들만 이용해 온 하경에게 음지의 영역을 발굴해 내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하경이 현재 이용하고 있는 SNS는 운영진들이 바지런하고 감시가 엄하다는 이유로 조건 만남을 할 수 없는 쪽에 속했다. 그 때문인지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를 현재 이용하고 있는 SNS에 검색해도 원하는 내용이 검색되지 않았다. 하경은 조건 만남을 할 수 있다는 SNS 중 하나를 골라 휴대전화에 설치했다. 그리고 이제 막 계정을 만든 참이었다.

새로 설치한 SNS를 열어 검색어를 조건 만남이라고 적고 돋보기 모양을 눌렀다. 외설스러운 사진을 대문으로 걸어둔 계정들이 검색되었다. 판매자들의 계정인 것 같았다. 하경은 상단에 검색된 계정들부터 하나씩 드나들며 소개 글을 탐독했다. 

계정의 주인은 ‘대부분’ 여자로, 남자를 대상으로 성을 판매하고 있었다. ‘모두‘가 아니라 ‘대부분’인 이유는 그들 중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이를 한 명 보았기 때문인데 프로필 사진을 보고 여자인 줄 알고 들어간 계정에는 위는 여자, 아래는 남자인 트랜스젠더가 남자를 대상으로 성을 판매하고 있었다. 남자가 남자에게 성을 판매하는 경우는 단 한 건도 찾을 수 없었다. 

판매자가 여자든 트랜스젠더든 고객은 남자였다. 그에 따라 가격은 남자들의 사정 횟수로 책정되었는데 일반적으로 1회 사정에 십이만 원에서 십오만 원 사이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가슴이 뛰었다. 마지막 시도가 태성 인터내셔널에서 김 대리와의 섹스였으니 벌써 오 년이 흘렀다. 지금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긴 시간이었고 너무나 큰 노력을 들였다. 그리고 비로소. 비로소 다시 시도할 수 있다. 스무 살 한여름 밤의 쾌감을 재현하기 위한 시도를. 심지어 그 수단이 너무나 효율적이다. 정부 정책인 사회적 거리 두기를 우회할 수 있을뿐더러 클럽이나 술집에 죽치고 남자가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수고와 비용도 덜 수 있다. 물론, 그런다 한들 다른 여자들보다 어느 부분에서든 지출은 현저히 적을 테지만.

조건 만남은 또한 무엇보다도 안전하다. 성매매에 전문적으로 뛰어드는 것은 일상에 지장이 있다. 지인들을 꼬여 내는 행위는 품도 많이 들고 자칫 잘못하면 금세 낙인이 찍힌다. 김 대리와의 사건이 그랬던 것처럼. 그에 반해 조건 만남은 시간과 낙인으로부터 자유롭다.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고 고객이 지인일 확률은 거의 0에 수렴할 테니 소문이 날 일도, 전처럼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될 일도 없다. 덤으로 시도할 뿐인데 월급 외 수입도 생긴다. 매일 밤 남자를 바꿔가며 섹스하면서도 중견 기업 사원 유하경이라는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결정은 마음을 먹을 것도 없다. 사실, 스무 살 한여름 밤에 이미 마음을 먹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단지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업계에 어떻게 뛰어드느냐.’였다.

조건 만남을 위한 SNS를 꾸미는 것은 다른 판매자들의 것을 참고할 수라도 있지만, 구매자의 연락이 왔을 때 어떤 식으로 응대해야 하는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 외에도 장소 협의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협의가 이뤄진 장소의 대여 비용은 구매자와 판매자 중 어느 쪽이 부담해야 하는지 등 배워야 할 것들이 많았다.

판매자들의 SNS 소개 글에는 하나같이 올해 3월, 전 국민을 분노케 한 온라인 성범죄에 이용됐던 메신저 계정이 적혀있었다. 대중들에게 철통같은 보안으로 유명한 이 메신저를 구속된 성범죄자는 물론, 판매자들 역시 그 점을 높이 사 이용하고 있을 것이었다. 하경은 휴대전화에 그 메신저를 설치했다. 그리고 SNS에서 판매자 한 명을 골라 ‘조건 만남 처음 해보는데 어떻게 하나요?’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윽고 장문의 답장이 도착했다.

판매자의 답장에는 기본요금과 선입금 액수, 하룻밤을 통째로 같이 보낼 시 발생하는 비용이 적혀있었다. 그 아래로는 천박한 행위를 뜻하는 줄임말이 열거되어 있었는데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그 말들이 정확히 어떤 행위를 뜻하는지는 모르지만 모두 천박한 행위를 뜻한다는 사실은 하경이 알고 있는 몇 가지 줄임말이 같이 열거되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각 줄임말 옆에는 그에 따른 추가 비용이 함께 적혀있었다. 하경이 판매자가 보내온 장문의 답장을 다 읽기도 전에 판매자는 계좌번호를 보내왔고 또 연달아 메시지를 보냈다.

-보내드린 계좌로 선입금 먼저 하시고요.

-텔 잡으신 후에 주소 찍어 주세요.

-요금은 선불이고 만나서 주시면 돼요.

받은 메시지로 미루어 보건대, 구매자가 장소를 정하고 장소가 모텔일 경우 대실 비용도 구매자가 부담하는 것 같았다. 요금은 선불, 만나서 섹스하기 전에 받는다. 하경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혹시 계좌주에 적힌 이름이 본명인가요?

하경이 보낸 메시지가 ‘읽음’으로 표시되고도 판매자는 한동안 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분 뒤 ‘딸이나 쳐, 개새끼야.’라는 욕설을 남기고 대화방을 떠났다. 본명이었나 보다고 하경은 생각했다. 

마음먹은 대로 곧장 시작할 수 있을 줄 알았으나 앞으로 자신을 거쳐 갈 구매자들에게 자신의 계좌 번호와 본명이 알려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못내 걸렸다. 그러나. 

그래도 괜찮을까? 

괜찮지 않을까? 

괜찮을 것 같은데?

라는 식으로 하경의 사고는 흘렀다. 이름과 계좌번호만을 알아서는 딱히 할 수 있는 나쁜 짓이 없을 것이다. 또한 구매자는 절대로 자신을 신고할 수 없다. 성매매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구매자가 하경을 신고하는 순간 구매자 또한 성 매수 혐의로 공범이 되고 만다.


노트북에서 사내 메신저 알림이 울렸다.

-고생들 하셨습니다. 내일 회사에서 봅시다.

업무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팀장의 메시지였다. 조금 전 연락한 판매자가 보낸 장문의 메시지, 그중 천박한 행위의 줄임말들을 해독하는 동안 해는 기울어 창으로는 노을이 들고 있었다. 팀장의 메시지에 이어 선임들도 연달아 퇴근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하경은 가장 마지막으로 ‘고생하셨습니다.’라고 인사치레를 한 후 노트북을 껐다. 마음 놓고 휴대전화에 집중했다.

장문의 메시지에 적혀있던 천박한 행위를 뜻하는 줄임말들은 업계에서 옵션으로 통했다. 판매자들은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행위를 옵션으로 내걸고 구매자들로부터 기본금과는 별도로 추가금을 받았다. 각 판매자가 내건 옵션들은 이를테면 특별한 복장 또는 유니폼 착용, 구강성교 등 연인들도 즐길 법한 것들부터 항문 성교, 풋잡(여성의 발로 남성의 사정을 돕는 행위), 뺨이나 볼기를 때리는 구타, 목을 조르는 가혹 행위, 대소변을 보는 행위 등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것들까지 다양했다. 

조사를 마치고 하경은 SNS에 올릴 소개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가격은 기본금 십삼만 원에 선입금 오만 원으로 책정했다. 설사 구매자가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더라도 오만 원이면 이동하며 지출한 시간과 교통비에 상응한다는 생각이었다. 하룻밤을 통째로 같이 보내는 옵션은 적지 않았다. 쾌감이 재현될 것인지는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고 다음날 출근도 고려해야 하기에. 그 외의 옵션 또한 적지 않았다. 인간 이하의 천박한 행위까지 해가며 돈을 벌어야 할 정도로 사정이 궁하지 않을뿐더러 다른 판매자들과 달리 분명한 목적, 즉 쾌감을 재현하겠다는 탐구심에 기반하여 이 업계에 뛰어드는 거니까. 

같은 행위일지라도 목적에 따라 급(級)은 분명하게 나뉜다. 

그런 생각이었다.

SNS를 꾸미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신체 치수와 지역, 만날 수 있는 시간, 메신저 계정 등을 적어두고 속옷만 입고 찍은 사진을 얼굴만 오려내 올려 두었다. 처음에는 별 반응이 없더니, 하루에 한 장씩 꾸준히 올리자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뒤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회사에 있던 하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메신저를 실행하자 당장 저녁에 조건 만남이 가능하냐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자신이 조건 만남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구매자로 위장해 연락했을 때 판매자가 그랬던 것처럼 하경은 가격과 선입금 액수가 적힌 메시지와 계좌번호를 적어 보냈다. 구매자의 구매 의사를 반신반의하며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이윽고 오만 원이 입금됐다는 은행 앱 알림이 울렸다. 첫 번째 조건 만남이 예약되었다. 

덜컥 겁이 났다. 내내 괜찮다가도 일이 닥치면 도지는 불안 병이 또 지랄이었다. 머릿속 자리 잡고 있던 쾌감을 재현하겠다던 목표 의식은 사라지고 납치, 감금, 폭행 등 각종 사고 영상들이 반복 재생되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무를까? 

더딘 시간은 고민할 일이 생기자 빨리 감기라도 하는 듯 순식간에 흘렀다. 진즉에 젖은 겨드랑이와 이미 흥건한 살색 스타킹 속 발가락 사이는 마르기는커녕 더 많은 땀을 뿜어냈다. 어느덧 퇴근 시간이 되어 팀장부터 직급순으로 하나, 둘 자리를 떠났다. 하경은 매일 그렇듯 가장 마지막으로 자리를 정리했다.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에서 하경은 인터넷에 조건 만남 폭행, 사기, 감금 등을 차례로 검색했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열거된 기사 속 피해자들은 모두 구매자인 남자들이었다. 때마침 오늘 조건 만남을 예약한 구매자가 시간과 장소가 적힌 메시지를 보내왔다. 피해자는 모두 구매자였음을 시사하는 기사 탓이었을까. 조금이나마 용기가 생겼다. 

일단은 가보자. 약속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구매자의 인상착의를 확인하고 결정을 내리자. 

그렇게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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