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각 상태서 섹스 파티를 즐긴 30여 명의 일당이 검거됐다. 그들은 온라인 대화로 알게 되어 필로폰을 함께 복용한 뒤 환각 상태에서 섹스 파티를 벌였다. 일당은 십 대 청소년부터 주부까지 그 연령대가 다양했는데 그중 17세 임 양과 25세 장 양은 각각 임신 사 개월, 삼 개월인 상태였다. 주범인 36세 오 씨는 처음에 꼬여낸 건 자신이 맞지만, 그 후로는 그녀들이 먼저 전화를 걸었다고 진술했다.]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던 9월, 한 드라마가 대흥행했다. 드라마의 배경은 2000년대 후반으로 수리남이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국가에서 마약을 유통하는 한국인을, 같은 한국인인 평범한 중년 남자가 국정원과 협력하여 검거하는 내용을 다뤘다. 드라마가 실화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 대중들은 잊힌 마약 사건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인터넷에는 오래전 발행된 마약 사건 기사들이 올라왔다. 그 여파가 12월인 지금,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기사들을 읽다 보면 어떤 영화나 드라마도 현실만 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경이 휴대전화 액정을 엄지로 쓸어 화면을 아래로 내린다. 다른 기사가 이어진다.
[하루하루 성의 노예가 되어가는 제 모습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이십 대 여성은 자수를 하겠다며 검찰청을 찾았다. 여성은 역시나 온라인 대화로 일당을 알게 되었다. 남녀 수십 명으로 구성된 일당은 환각 상태에서 무분별하게 성관계를 맺고 있었다. 여성은 한 번이라도 시작하면 헤어 나올 수가 없다. 매번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지만, 안 하면 미칠 것 같고 하루 종일 그 생각만 하게 된다고 증언했다.]
한 번 만에 중독이 된다…
하경이 콧방귀를 뀐다. 기사 속 임산부들과 자수한 이십 대 여성이 가증스러워서. 그들 모두는 자의로 마약을 유통한 이에게 연락했다. 덩달아 즐긴 것이다. 그래 놓고 피해자인 척을 한다. 마약에 중독되어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한 번 만에 중독된다.’는 말에서 그 최초의 한 번은 자기들의 선택이었을 테니까. 그들은 의사가 아닌 누군가에게 마약이 든 주사를 놓을 수 있도록 팔을 내준 것이다. 연민할 것이 아니라 멍청함을 꼬집고 돌을 던져야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치료 조건부 기소유예라는 가벼운 판결을 선고받았다. 납득할 수 없다. 그들의 멍청하고 아둔한 선택과 가증스러운 변명에 대한 처벌은 더 가혹해야만 한다.
지하철 안내 방송에 사색하던 하경이 깬다. 어느새 목적지를 한 정거장 남겨두었다. 하경은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가방에 집어넣고 구형 휴대전화를 꺼내 메신저를 실행한다.
-저도 출발했어요~
-어디쯤 오시나요?
-오고 계신 거 맞죠?
-??
J는 5분, 3분, 2분 간격으로 네 건의 메시지를 보냈다.
섹스에 안달이 났구나.
재촉하는 꼴에 진저리가 난다.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 조건만남을 대하는 하경의 신념이지만, 구매자가 이런 식일 땐 집 생각이 난다. 하경은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마스크의 부직포가 입술과 그 주변에 닿아 깔끄럽다.
일이다. 일이야, 하경아. 일하러 가는 거야.
자기를 격려한다. 한껏 들이마신 숨을 내쉰다. 닿았던 마스크가 떨어진다. 눈을 뜬다.
-한 정거장 전이에요.
답장을 보낸다.
J의 메시지가 연달아 온다. 확인한다.
-오고 계시구나!
-저보다 일찍 도착하시겠네요.
-저도 거의 도착했어요! 3번 출구에서 만나요.
답장하지 않고 구형 휴대전화를 가방에 집어넣는다.
지하철에서 내려 3번 출구로 안내하는 표지판을 찾는다. 표지판을 따라 걷는다. 출발하기 전 예상했던 대로 발가락 사이가 땀이 배어 미끈거린다. 개찰구를 지나 걷는다. J에게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예외 없이 답은 즉시 온다. 확인한다.
-옷, 어떻게 입고 있어요?
3번 출구로 향하는 계단이 보인다. 하경은 계단 앞에 선다.
-하얀 파카에 청바지요.
답장한 후에 주변을 훑는다. 하경의 오피스텔 인근 지하철역보다 규모가 한참이나 작다. 완공되고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벽의 타일은 색이 누렇게 바랬다. 경험상 역사가 낙후됐으면 그 주변 건물들, 심지어 주민들의 수준 또한 낙후된 경우가 많았다. J도 그렇지 않을까?
그래, 그에게는 얼굴이든 몸이든, 다른 여자들이 돈을 받고도 그와 몸을 섞고 싶지 않을 만한 하자가 있는 것이다. 이 여자 저 여자, 이 업소 저 업소에서 거절당하며 조금씩 금액을 올려서 제시해 왔을 것이고 그렇게 오른 금액이 추가금 십만 원이 된 것이다. 장애인과 섹스할 수 있을까. 그뿐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혹 전염병이라도 앓고 있다면…….
그가 예약했을 모텔 또한 수준이 빤하다. 다 무너져가는 시설에 화장실에선 역한 하수구 냄새가 날 것이다. 오래된 이불은 뭐가 묻었는지 얼룩덜룩할 것이고 눅눅할 것이다. 모텔이면 그나마 낫다. 빈대가 득실거리는 여관이라면? 아, 역시 돈만 보고 수락할 것이 아녔다.
걱정이 꼬리를 물었다. 그 탓인지, 목이 탄다. 편의점에서 사 온 생수를 꺼낸다.
그냥, 집에 갈까…?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역사 끝에서 누군가 자기를 바라보며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손에 든 생수를 다시 가방에 넣고 재빨리 휴대전화를 꺼내 시선을 고정한다. 얼핏 본 그가 휠체어나 목발에 의지하지 않고 두 발로 온전히 걷고 있음에 안도한다. 수없이 만남을 가져왔지만, 항상 처음 만나는 순간이 가장 어색하다. 약속한 상대와 거리를 두고 서서, 서로가 상대임을 알면서도 어느 쪽도 알은체하지 않고 쭈뼛대는 그 순간이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제까지 하경은 휴대전화만 바라보는 행동을 상대에게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먼저 다가오도록 유도했다. 오늘도 부디 J가 먼저 다가와 주길 바란다. 걸어오던 남자는 도중에 멈추지 않고 곧장 하경의 바로 옆까지 다가와 어깨를 두드린다. 하경은 고개를 들고 무선 이어폰을 뽑는다. 검은색 마스크를 쓴 남자. 그가 적당히 중후하며 밝고 명쾌한 목소리로 묻는다.
“벨라 님… 맞으시죠?”
J일지도 모르는 남자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정확하게 머리를 2:8로 나눠 이마를 드러냈다. 조금 넓다 싶은 이마는 흉 하나, 주름 한 줄 없이 깨끗하다. 눈은 쌍꺼풀이 없이 옆으로 길고 높은 콧대를 덮느라 마스크의 코 지지대가 과하게 휘었다. 가늘고 긴 목을 목이 긴 스웨터가 감쌌다. 스웨터에는 먼지 한 톨, 실오라기 하나가 묻지 않았다. 진회색 정장 또한 어디 한 곳 주름 없이 몸에 꼭 맞다. 전체를 덮은 검은색 코트는 그의 작은 움직임에도 찰랑거린다. 무채색 코디 때문인지 원래 타고난 것인지 하얀 피부가 도드라지는 남자. 그는 한마디로 깔끔하다.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이 결벽적으로.
“조금 늦었죠? 죄송해요. 크리스마스라 그런지 주차할 곳 찾기가 쉽지 않네요.”
그가 말했다. 지각에 대한 그의 변명이 거짓말이라는 걸 하경은 안다. 그는 일찍이 도착해서 하경을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지켜보면서 하경이 호객하기 위해 SNS에 올려 둔 알몸 사진, 영상들과 그녀의 실제 몸매가 같은지, 자기가 요구한 스타킹은 착실하게 신고 왔는지 따위를 확인했을 것이다.
“제이…”
“네, 네. 맞아요.”
그는 닉네임을 입에 올리는 게 부끄러운지 하경의 말을 자른다. 그리고 일단, 차로 가실까요? 이쪽으로, 하고 말하곤 앞서 걷는다.
하경은 뒤따라 걷는다.
크리스마스이브. 오후 8시가 조금 넘었다. 서울이라면 어느 곳이라도 붐벼야 마땅할 텐데, J와 만난 지하철역 주변은 한산하다. 집에서 지하철로 삼십 분 남짓 거리에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하다. 멀지 않은 골목으로 들어서자 갓길에 주차된 차가 보인다. 검은색 세단이다. 꽁무니에는 차에 문외한인 하경조차 알고 있는 외국 기업의 문장이 박혀있다. J가 다가가 조수석 문을 열고 다섯 걸음 정도 뒤떨어져 걷는 하경을 기다린다. 하경은 인사 한마디 던지고 탄다. 시동이 꺼진 지 시간이 꽤 지난 듯 내부에 히터의 훈기는 없다. 시트에 닿은 궁둥이와 등에 바지와 패딩을 뚫고 한기가 오른다.
하경을 거쳐 간 고객 중 지금 J와 같이 행동하는 이들이 간혹 있었다. 신사인 양 행동했던 그들은 하나같이 섹스가 끝나면 한 번 더 하길 원했다. 하경이 바라지도 않은 배려로 값을 치렀다는 듯 공짜로. 그러나 이들의 대가성 위선은 하경에겐 씨도 먹히지 않는다. J가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자 히터가 뿜어져 나온다. 히터는 그가 시동을 끄기 전 설정되어 있던 그대로일 테다. 즉 J는 최소한 내부의 온기가 식을 만큼은 차를 비워 두었다. 먼저 도착해서 어딘가에 숨어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라는 하경의 예상이 맞았다.
“차 안이 그새 식었네요? 금방 따뜻해질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J의 입에서 희뿌연 입김이 마스크를 뚫고 나온다. 빤한 거짓말을 뻔뻔하게 잘 한다. J가 차를 출발한다. 근방의 지리를 꿰고 있는 듯 이리저리 막힘없이 골목을 빠져나간다. J의 차는 금세 큰 도로에 올랐다. 한적했던 지하철역에서 얼마 오지 않았는데 도로 위 차들이 빼곡하다.
“음악 틀어도 돼요?”
하경이 묻는다.
“네, 뭐 듣고 싶은 거 있어요?”
J가 휴대전화를 거치대에 고정하며 하경에게 묻는다. 하경은 J의 휴대전화로 손을 뻗어 음악의 제목을 적는다. J에게 치명적인 하자가 없다는 안도를 시작으로 그의 인상, 고급스러운 착장, 고급 세단까지. 하경은 점진적으로 들뜨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서정적인 선율이 필요했다. 꿈속에서 마저 사랑하는 이를 그리는 가사, 편안한 리듬과 몽환적인 여가수의 알토가 흐른다. 고착되어 있던 J의 차가 앞으로 나간다.
음악을 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