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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우 Oct 25. 2024

4. 세 번째 편지 (1)


자취방에서 혼자 술을 마실 때, 안주 삼아 영화를 보곤 했습니다. 그때 봤던 영화 중에서 일본 영화 한 편이 떠오릅니다. 아쉽게도 제목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영화는 실종된 딸을 찾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 속 아버지는 딸을 찾는 과정에서, 모범생인 줄로만 알았던 딸의 실체를 알게 됩니다. 그녀의 실체는 친구들을 마약에 중독시켜 성매매에 끌어들인 소년범이었습니다. 

영화의 원작이 소설이라는데 읽어 보지는 못했습니다. 수능 이후로 왠지 종이 냄새가 역겹게 느껴지더라고요, 책을 펼 수가 있어야지요. 물론, 합법적 독립을 위해 대학에 복학하고 나서는 좋든 싫든 책을 펴야 했지만. 아, 이 이야기는 취재할 때 이미 했던가요? 아무튼.

영화의 내용은 그러하고, 영화에 삽입된 음악이 있습니다. 이 또한 말씀드렸듯이, 제가 처음으로 J를 만나러 가던 날 외출할 준비를 하면서 또 J의 세단을 타고 호텔로 가면서 들었던 음악입니다. 기억하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기억하고 계신다면 이미 들어 보셨을 수도 있으시겠네요. 잊고 계셨다면 지금이라도 한 번 들어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꿈속에서마저 사랑하는 이를 그리는 가사, 편안한 리듬과 몽환적인 여가수의 알토. 듣자마자 중독되실 거라고 장담합니다. 중독…. 이 중독이라는 단어 제가 적으니까 기분이 묘하네요.

요즘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마약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들은 마약으로 비롯된 특정 세력 간의 다툼이라든지, 마약을 유통하는 조직의 우두머리를 형사들이 체포하는 과정이라든지, 마약으로 비롯되는 온갖 이야기는 다 다루면서 마약에 중독된 개인에 대해서, 그들이 어떻게 중독되었고 어떻게 무너져 가는지는 심도 있게 다루지 않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 위에 언급한 일본 영화 또한 그렇고요. 간혹 그런 개인을 조명하더라도 그 또한 극의 전개를 위해 잠깐 스쳐 갈 뿐입니다. 

만약 제가 마약에 손을 대기 전에 중독자들이 어떻게 중독이 되는지, 중독자들에게 어떤 말로가 기다리고 있는지를 심도 있게 조명한 영화나 드라마를 접했다면 과연 어땠을까요. 상황은 달라졌을까요? 적어도 이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을까요? 

저는 각성제를 구하기 위해 천륜을 거슬렀고 투약하면서 인간성을 잃었습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적어보려 합니다. 

네, 밝히기에 부끄럽습니다. 여자로서나 인간으로서나. 또 지금부터 적을 이야기가 훗날, 사회 복귀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제 이야기가 널리 퍼지기를 바랍니다. 부디 널리 퍼뜨려 주시길 바랍니다. 유혹받고 있는, 이미 투약하고 있는 모두가 읽을 수 있도록. 

전에 보낸 편지에 3월 마지막 주 수요일이었고 J의 호출을 받지 못했다는 데까지 적었지요? 바로 이어보겠습니다.


퇴근해서 오피스텔로 돌아온 저는 침대에 앉았습니다. 귀가 시간이 늦은 건 몇 번이나 지하철을 갈아타야 했기 때문입니다. 메신저로 J에게 욕설을 적어 보내는 데 정신이 팔려 내려야 할 곳을 지나쳤거든요. 집에 와서도 저는 J에게 지금은 입에 담지도 못할 상스러운 욕설을 적어 보냈습니다. 먼저 적어 보낸 욕설이 새로 적어 보낸 욕설에 밀려 대화방에서 보이지 않았습니다. J는 제가 보낸 메시지를 읽지 않았습니다. 저는 구형 휴대전화를 집어 던지기를 시작으로 또 한 번 이성을 잃고 말았습니다. 처음으로 J의 연락이 끊겼을 때 뒤집어엎은 채로 방치된 오피스텔에는 더 부술 것도 남지 않았습니다만, 저는 잡히는 대로 집어 던지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번에도 누군가의 신고를 받고 경찰이 찾아왔습니다. 운이 좋았던 걸까요, 마땅히 취할 조치가 없었던 걸까요? 그들은 전과 같이 경고만 주고 돌아갔습니다. 저는 경찰을 마주하고도 각성제를 투약했었다는 의심을 받을까 봐 겁을 먹기보다는, J를 향한 분노가 앞섰습니다.

처음으로 J의 연락이 끊겼을 때를 되돌아보면, 그때는 일말의 희망이 있었습니다. 희망이란 남자라는 생물의 변덕에 거는 기대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J가 다른 조건 만남 판매자와 만나고 있기 때문에 제게 연락하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아직은 별장의 존재를 몰랐을 적이었으니까요. 따라서 그가 만나고 있는 조건 만남 판매자에게 싫증을 느끼면 다시 제게 돌아오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버려졌음을 확신했습니다. 전에 보낸 편지에도 적었듯 별장을 드나들 당시, 여자들이 별장에서 모습을 감추었다가 다시 나타나는 경우는 없었거든요.

확신을 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했달까요? 오히려 빠르게 단념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선택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과 선택받은 후 폭식과 설사를 반복하며 토요일을 기다리는 설렘이 저를 살아가게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깨닫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하룻밤이었습니다. 

목요일, 저는 출근하지 못했습니다. 잠에 취해 알람도 듣지 못했습니다. 눈을 떴을 때는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였습니다. 휴대전화에는 회사에서 온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수십 건이나 쌓여있었습니다. 회신해야 했습니다. 솔직하게 설명하든 변명하든 뭔가 조처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래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더 할 수 없는 정도의 나른함. 손가락 몇 번 움직이는 것이 그리도 힘든 일인 줄 저는 몰랐습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저녁놀 주황빛이 오피스텔 안으로 들었습니다. 걱정이 앞섰습니다. 회사 걱정이었냐고요? 그럴 리가요, 다가올 긴 밤을 어찌 보낼지 걱정했습니다. 걱정이 무색하게 또다시 눈을 떴을 때는 날이 밝아져 있었습니다.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몰랐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네요. 주어진 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아니, 살아만 있는 것조차도 이렇게 힘든 과제인지 몰랐습니다. 울고 싶지 않은데 눈물이 흘렀습니다. 우는 것조차도 귀찮았습니다. 울려면 마땅한 표정을 짓고 소리를 내야 하는데 그조차도 귀찮았다는 말입니다. 흐르는 눈물이 베갯잇을 적셨습니다. 누군가 봤다면 식물인간 같았다고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표정 없는 얼굴에 아무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렀을 테니까요. 

이렇게 적으면 너무 거창할 수도 있겠지만, 목적을 상실한 사람에게 억지로 주어진 생은 끊임없이 지속되는 고문과도 같았습니다. 만약 윤회라는 개념이 실재한다면 세상에 나기 전 저승에서 저는 부디 세상에 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학창 시절에는 명문대만을 바라보고 공부했고 서울에서 천안으로 끌려갔던 그땐 다시 상경할 수 있기를 바랐었고요. 다시 상경한 후에는 언젠가는 복 층 구조의 오피스텔에서 살아보리라는 꿈을 품었습니다. 그렇게 염원했고 이룬 것들이 이제는 지옥의 염화 속같이 느껴졌습니다. 진짜 지옥은 따로 있었지만 말이지요. 진짜 지옥에 대해서는 차차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금요일 오후였습니다. 침대 위에서만 지낸 지 이틀째였고요. 뜻이 있는 자에게 길이 있다고 했던가요? 일순간 머리가 번뜩였습니다.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최신 휴대전화에 조건 만남을 할 때 사용하던 SNS와 메신저를 내려받았습니다. 몇 초 사이 설치되었으나 그 몇 초조차도 기다리기가 버거웠습니다. SNS에 접속하려고 계정과 비밀번호를 입력하는데 몇 번이나 오타가 났습니다. 심장의 박동에 맞추어 전신이 진동하는 것 같았습니다. 진동은 신체의 말단까지 전달되어 휴대전화를 쥔 손을 떨게 했습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접속에 성공, 드디어 SNS가 열렸습니다. 각성제 이름을 검색했습니다. 무수한 계정들과 게시글들이 열거되었습니다. 화면을 아무리 내려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변의, 또 변의가 찾았습니다. 화장실로 달렸습니다. 변기에 앉자 무언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아마 물이었을 겁니다. 먹은 것이 거의 없었으니까요. 검색 결과들은 대부분 내용을 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상단에는 메신저 계정이 적혀있었고 그 아래로는 ‘물건 퀄(퀄리티) 걱정하지 마시고 언제든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직접 테스트한 물건만 내려 드립니다.’ 따위의 홍보 문구가 이어졌습니다. 사실 여부도 가리지 않고 메신저를 열어 계정이 열거된 순서대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한 계정으로부터 사진 한 장이 도착했습니다.

사진의 가장 상단에는 MENU라고 적혀있었습니다. 그것으로 보건대 사진은 계정의 주인, 다시 말해 판매자가 취급하는 마약을 적어 놓은 메뉴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메뉴판도 있고 의외로 고상하지 않나요? 문제는 그 아래에 적힌 내용이었습니다. 마약을 지칭하는 은어를 직접 적을 수는 없으니 부득이하게 알파벳으로 대체합니다. A라고 적힌 대분류 아래 대만 0.5G=35, 1.0G=55. 멕시코 0.5G=40, 1.0G=60. 이라고 나라 이름과 숫자들이 적혀있었고 또 그 아래에는 B, C, D 등 도저히 추측조차 불가능한 은어들이 이어졌습니다.

암호 같은 은어들을 해독하기 위해 메뉴판 가장 상단에 적혀있는 A를 인터넷에 검색했습니다. A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 온라인 백과사전, 제과 회사의 홈페이지가 검색되었습니다. 그것들을 일일이 읽어가며 정보를 찾기에는 인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메뉴판에 A 다음으로 적혀있는 B를 검색했습니다. 다른 정보 없이 뉴스만 열거되었습니다. 그로 보아 B는 A와 달리 오직 마약만을 뜻하는 은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검색된 뉴스 중 두 번째에 열거된 것을 열었습니다. 뉴스는 현 대한민국의 마약 중독 실태를 시사하고 있었습니다. 사회를 고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되었을 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약인 B에 대해서 너무나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경기도 일산에서 유통되는 B가 다른 지역에서 유통되는 것보다 고품질이며 더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정보도 적혀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제가 찾고 있는 각성제를 뜻하는 은어에 대해서는 적혀있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세 번째에 열거된 기사를 열었습니다. 중학생이 메신저로 마약을 구해 투약한 사건이 적혀 있었습니다. 제게는 너무나 반가운 기사였습니다. 더 할 수 없는 정도의 나른함에 젖어있던 제가 침대를 박차고 일어날 수 있었던 건 이 기사가 다룬 사건 덕이었습니다. 기사를 직접 읽은 적은 없지만, 언젠가 회사 사람들이 이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던 것이 떠올랐고, 중학생도 직접 구하는데 나라고 못 할까. 라고, 생각했거든요.

세 번째 기사 또한 두 번째 기사와 같은 목적으로 적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기사 덕에 원하는 각성제를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기자님의 성함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배윤정 기자님. 얼마나 감사하던지. 배 기자님께서 적은 기사에는 마약을 투약한 중학생의 사연과 함께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마약을 지칭하는 은어들이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배 기자님의 기사에 따르면 제가 찾는 각성제의 은어는 메신저로 받은 메뉴판의 가장 상단에 적혀있던 A였습니다. 또 A 외에도 다양한 은어들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여기까지 알고 나니 다음은 추측하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A의 아래에 적힌 나라 이름은 원산지를, 숫자들은 용량과 가격을 뜻할 것이었습니다. ‘A, 멕시코, 1.0G’라고 적어 판매자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마음이 급한 중에도 투약에 쓸 주사기가 없다는 사실은 잊지 않았습니다. 방법이 없으니 아쉬운 대로 일단은 경구 투여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무엇보다 투약이 급했으니까요. 경구 투여가 정맥 투여보다 약효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J와의 만남과 별장에서 경험했기에, 두 방법의 간극을 조금이나마 메워보고자 두 원산지 중 효과가 더 뛰어날 비싼 것을 큰 용량으로 선택했습니다.

이윽고 답장이 도착했습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판매자는 제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을 물었고 현금은 받지 않으니 메신저를 이용해 특정 암호화폐를 송금 하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초조했습니다.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된 배덕감, 죄책감, 두려움 따위의 감정들 때문이 아니라 복잡하고 번잡스러운 절차 때문에요. 변기에 오래 앉아 있으니 슬슬 다리가 저렸습니다. 그럼에도 변기에서 일어날 수 없었습니다. 일을 마무리 지어야만 화장실에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군말하지 않고 휴대전화에 암호화폐 거래소를 내려받았습니다. 판매자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암호화폐를 송금하자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판매자로부터 각성제 사진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J가 처음으로 저를 별장에 데리고 갔을 때 제게 보여주었던 것과 같이 지퍼가 달린 작고 투명한 비닐 주머니에 담겨있었습니다. 순대를 포장할 때 넣어주는 양념 소금처럼요. 몇 분 뒤, 판매자는 검은 비닐로 한 번 더 포장한 각성제의 사진과 ‘드로퍼’가 각성제를 ‘던지기’ 할 곳을 아주 구체적으로 적어 약도와 함께 보냈습니다.

구체적인 용어의 설명은 굳이 적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제 이야기가 누군가를 중독으로 이끄는 매개가 되는 것은 원치 않으니까. 물론, 이렇게 주의하는 것이 무색하게 마약에 관한 정보를 무분별하게 담은 기사는 꾸준하게 또 지속적으로 발행될 것이고 누군가에게 중독에 이르는 방향을 제시하겠지요. 제가 기사를 읽고 각성제를 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여담이지만, 기사를 적는 그들에겐 조회수가 가장 중요하다지요? 

저는 판매자가 보내준 약도를 따라 걸었습니다. 약도가 안내한 곳에 이르자 으슥한 골목이 나왔습니다. 거주하고 있는 오피스텔 주변에 그런 골목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각성제가 담긴 검은 비닐을 찾아 챙겨온 가방 안에 넣고 오피스텔로 돌아왔습니다. 그날따라 오피스텔 엘리베이터가 터무니없이 느렸습니다. 기다리지 못하고 비상계단을 뛰어올랐습니다. 현관을 열자마자 누가 잡으러 오는 양, 무식하게 안으로 몸을 밀어 넣고 안전 고리까지 걸어 잠갔습니다. 판매자와 연락을 한 시점부터 각성제를 챙겨 집에 돌아오기까지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마치 음식을 포장 주문한 것 같았습니다. 그만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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