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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우 Oct 18. 2022

면식범

1장. 2화.

초밥 여사님과의 일로부터 약 다섯 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새 10월이 다 가고 있었다. 호주의 바람이 훈훈해졌다. 여름이 찾아오고 있었다.


초밥 여사님과의 일은 함구했다. 같이 일하는 사이에서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무탈하게 일하다가 적당히 돈을 불려서 적당히 즐기다 돌아가면 된다. 나만 입을 다물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다. 초밥 여사님은 일이 있은 후로도 나를 몇 번인가 차에 태워 역까지 데려다주셨다. 그러나 집세나 재환에 관한 어떤 것도 다시 묻지 않으셨다.


그간의 변화라면 재환의 처가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떠났다. 외로운 호주 생활에 지쳐 잠시 일본에 머물다 돌아온다고 했단다. 셰어하우스에는 나와 히라 그리고 집주인 재환만이 생활하고 있었다. 항시 집에 상주하던 재환의 처가 없으니 한결 편했다. 알게 모르게 눈치를 봐가며 생활하는 것이 여간 고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랬다. 호주 생활은 고됐다.


워킹홀리데이는 떠나기 전 그리던 그것과는 너무 달랐다. 카페와 일식집을 오가며 주에 6일을 일했는데 카페 직원 누군가의 부재로 근무 스케줄이 꼬이게 되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주에 7일을 일하고 다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거의 한 주를 일해야만 비로소 휴일을 맞을 수 있었다. 연달아 13일을 일해야 하루를 쉴 수 있는 것이다.

머핀 브레이크의 사장님 아밋이 공지한 스케줄. 일요일 출근으로 되어있다.


금요일과 토요일 같은 경우에는 오전 6시에 집을 나서 일식집 주방 업무가 끝나는 밤 11시까지 무려 17시간 동안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카페에서 퇴근하고 일식집 출근까지 두세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는데 집에 들러 쉬기에는 애매한 시간인지라 매번 밖에서 시간을 보냈다.


호주 여자와 황홀한 홀리데이는 고사하고 일상적인 호주조차 즐기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일식집을 나가지 않는 날에 꼭 해야 하는 일들을 어떻게든 뒤로 미뤄 개인 시간을 확보했다. 그중에는 은행 업무도 있었다. 일식집에서는 주급을 은행 계좌로 받았지만 카페에서는 현금으로 받았다. 나는 그것을 계좌에 입금하지 않고 침대 밑에 보관했다.

방 침대 밑에 보관하던 호주 달러.


카페 주급을 받은 토요일. 일식집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평소와 같이 침대 밑 달러 뭉치를 빼냈다. 달러 뭉치가 홀쭉했다. 오늘 받은 달러는 옆에 놓아두고 그 자리에서 돈을 세었다. 다시 세었다. 또다시, 총 세 번을 세고 나서야 나는 받아들였다.


‘씨발. 돈이 빈다.’


보통 가장 먼저 집에 돌아오는 사람은 히라. 그러나 나는 외출을 할 때마다 방 문을 잠가뒀기에 히라는 내 방에 들어올 수 없다. 돈이 없어진 오늘도 분명 잠겨있는 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왔다. 잠깐, 열쇠?


“상우 씨, 만약을 위해서 상우 씨 한테는 스페어 키를 줄게요. 원래 방 키는 제가 가지고 있을 거예요. 다들 이렇게 해요.”


방을 계약하던 날 재환이 말했다. 순간 의심이 뻗쳤지만 다시 거둬들였다. 섣불리 의심해서 건드려 봐야 좋을 게 없다. 그래도 얘기는 해보자. 아, 집에서 도난 사건이 일어났으니 적어도 집주인은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방을 나오니 최소한의 불만 켜 둔 거실에서 재환이 식탁에 앉아 영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재환이 형, 혹시 얘기 좀 잠깐, 괜찮으세요?”


공부하는 재환의 뒤에서 내가 말했다.


“아, 예. 상우 씨 무슨 일 있어요?”


재환은 보고 있던 책 사이에 펜을 꽂아 덮고 그의 맞은편에 있는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형, 저 돈이 없어졌어요.”


재환을 마주 보는 자리에 앉으며 내가 말했다.


“예에? 무슨 돈이요?”


누가 보더라도 어색한, 준비된 리액션이다. 섣불리 의심 말자고 그렇게 나를 다그쳤건만 이렇게 티를 내면… 최대한 태연하게 그간 침대 밑에 돈을 보관했던 것과 왜 그랬는지, 얼마나 없어졌는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아니, 근데요 상우 씨, 나, 상우 씨, 히라만 사는 집에서 누가 도둑질을 하겠어요. 밖에서 누가 들어왔던 것 같은데… 잠시만요.”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 옆의 서랍을 뒤적거리던 재환은 꼬깃한 달러 몇 장을 꺼내 들어 내게 보이고 말을 이었다.


“제 돈은 다 있는데… 아니 우리 셋만 있는 집에서 어떻게 상우 씨 것만 없어졌지? 일단 알겠어요. 제가 히라한테도 조심히 물어볼게요. 아무리 봐도 밖에서 들어온 것 같아요. 맞아. 이거 밖에서 들어온 거야. 우리 문단속도 조금 더 신경 쓰죠. 상우 씨, 일단 오늘은 늦었으니까 좀 쉬세요 피곤할 텐데.”


동작이 어설프고 혀가 길다. 혼자 떠들고 혼자 마무리 짓는다. 온몸으로 자기가 범인이라 말하고 있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할 수 있는 게 없다. 증거 없이 심증만으로 재환을 추궁한다 한들 돈을 찾기는커녕 한밤중에 집에서 쫓겨나지나 않으면 다행일 테다.


경찰에 신고한다고 해도 세금조차 제대로 내지 않는 동양인 워홀러가 피해자인 도난 사건을 위해 시간을 할애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영어로 이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할 자신이 없다. 어차피 잃은 돈은 돌아오지 않는다. 속이 쓰렸다.


거의 다 메꿔 가던 정착 비용이 다시 마이너스가 됐다. 언젠가 멀리 여행을 가자던 친구들의 말에 이렇게 답한 적이 있었다.


“어차피 여행 가봐야 장소 바꿔서 술 마시는 게 끝 아니냐? 그럴 바에는 여기서 편하게 마시지 뭣하러 돈 쓰고 고생해서 그 멀리까지 가서 술을 마셔?”


입살이 보살이라더니. 한국에서도 하는 일, 즐기기는커녕 얻는 것 하나 없이 굳이 비행기 타고 72시간을 날아와 고생만 하다 돌아가게 생겼다.




셰어하우스의 모두가 쉬는 일요일. 재환과 히라가 각자 일을 보러 나가고 혼자 남은 집에서 한국에 계신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서로가 이런저런 근황을 물었다. 애써 숨긴다고 숨겼지만 근 30년간 나를 키워오신 어머니는 그 미묘한 톤의 차이를 눈치채셨는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사건에 대해 어머니께 설명했다.


-그 집주인 새끼가 훔쳤구먼. 어쩔 수 없지 뭐… 잊어버려. 아, 힘들면 그냥 한국으로 와! 뭣 헐러고 타지서 고생이여!


1년도 다 채우지 못하고 실패한 채로 고향땅을 밟고 싶지 않다. 게다가 그 사유가 나이 서른 먹고 돈 관리를 못해서라면… 지인들에게 받을 손가락질을 견딜 자신이 없다.


“어떻게 그래요. 포기하는 거잖아요. 나 쪽팔려서 못 가요. 일 년은 다 채워야죠.”


-아이 그깟 일 년 채우는 게 뭐가 중요 혀? 그냥 와도 돼. 이번에 니 아부지도 소 팔었는데 소 값 180만 원 못 받었어. 그래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잖어! 안되면 어쩔 수 없는겨.


“하… 왜 우리 가족은 맨날 당하고만 살아야 돼요!”


소리를 지르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잘 다스렸던 감정이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터졌다. 분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이 흘렀다. 없는 살림에 몇 년간을 정성 들여 키운 소 값마저 제대로 챙겨 받지 못한 아버지와 서른을 앞두고 돈 관리도 제대로 못한 큰아들의 처지가 너무 닮아 애석하고 서러웠다.


호주에서 거주할 1년이라는 시간 동안 특별히 뭔가를 이루려는 욕심은 없었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많은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어느 정도 즐기며 1년은 다 채우되 마이너스만 내고 돌아가지 않기를 바랐다. 그렇게 큰 바람이었을까.




사건으로부터 이주 정도가 지났다. 11월에 들어섰고 바람은 하루가 다르게 훈훈해지고 있었다. 호주에서 시행하는 서머타임 정책(하절기에 표준시를 원래 시간보다 한 시간 앞당긴 시간을 쓰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밤 10시까지도 해가 지지 않았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새까만 구름 아래 어둑했던 호주의 겨울을 다시 마주할 일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겨울은 나를 다시 찾았다. 여름을 기다리던 설렘은 사라지고 내 신상은 호주의 겨울처럼 먹구름 낀 듯 어둡고 우중충했다.


정착비용이라도 메꿔 본전 치기라도 하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처한 상황에서 이사를 하는 것은 또 다른 지출을 만든다. 고로 경제적이지 못하다. 워낙 외진 동네인지라 근방에 다른 방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일단 주머니 사정이 진정될 때까지 이 집에서 조금 더 버텨 보기로 결정했다.


3년간 해온 운동을 그만두었다. 마트에서 구입한 저렴한 베이컨 3Kg를 냉장고에 채웠다. 카페 주급은 바로바로 계좌에 넣었다.


내가 일식집에서 일하는 날이면 항상 블랙번 역(재환의 집과 인접한 역.)까지만 데리러 오던 재환도 꼴에 죄책감은 느끼는지, 내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일식집까지 데리러 왔다. 재환이 내게 저지른 업보다 주머니 사정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


연고라고는 하나 없는 고립된 환경, 입에 맞지 않던 음식, 도난 사건이 삼위일체를 이뤄 멘탈을 좀먹던 중, 극단적으로 줄인 지출은 그에 훌륭한 시너지가 되었다. 카페에서도 일식집에서도 말수는 줄어들고 실수는 많아졌다.


카페에 출근하자마자 베이커가 만든 빵들을 주방에서 쇼케이스로 옮기다 바닥에 다 쏟아 버렸다. 의외로 아밋은 나에게 별말 하지 않았다. 아마도 내 상태를 눈치채고 눈 감아 주지 않았을까.

머핀 브레이크의 쇼케이스. 메뉴 이름을 외우기 위해 촬영.


일식집에서 냉동만두를 튀기다 손에 기름이 튀었다. 따끔하게 튀고 만 것이 아니라 튀어 오른 기름이 약지를 덮었고 그 짧은 새 약지의 살갗이 기름에 익어 녹아내렸다. 달려와 나를 걱정해 주는 알리의 걱정 어린 말에 퉁명스럽게 답해 그녀를 주방에서 쫓아냈다.


이런 나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어온 사람은 여자 사장님이셨다. 유난히 한가했던 토요일. 휴무인 셰프님은 출근하시지 않았다. 마지막 손님이 일식집을 떠나고 평소보다 조금 이르게 주방 청소를 마무리 지었다.


“상우야 잠깐만. 그거 그냥 두고 홀로 나와봐.”


마지막 설거지를 하려던 내게 남자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초밥 여사님은 주방 마감보다 더 이르게 초밥 파트를 마무리 짓고 여자 사장님의 홀 마감 업무를 돕고 계셨다. 재환이 나를 데리러 일식집에 도착하기까지 약 30분 정도 남았다.


남자 사장님을 따라나가니 홀은 이미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고 초밥 여사님과 여자 사장님이 홀 중앙 식탁에 앉아 계셨다. 남자 사장님은 여자 사장님 옆에 앉으시고 내게 초밥 여사님 옆자리에 앉으라고 말씀하셨다.


“상우, 너 무슨 일 있지?”


여자 사장님이 먼저 입을 여셨다.


“아니 얘가 항상 흥얼거리면서 일하는 앤데, 지난주 금요일부터인가? 표정도 안 좋고 노래를 안 부르더라고.”


내가 대답이 없자 초밥 여사님이 여자 사장님의 말을 받았다.


‘끼이익.’


그때 주방 쪽으로 나있는 일식집 뒷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차, 하필 오늘…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네. 다음에 얘기해 다음에.”


뒷문을 열 때마다 나던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은 남자 사장님은 급하게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나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모두가 짜 맞춘 듯 자리에서 일어났고 여자 사장님은 카운터로, 남자 사장님과 초밥 여사님은 주방으로 향하셨다. 나는 남자 사장님과 초밥 여사님의 뒤를 따랐다. 주방에 들어가니 홀을 향해 걸어오는 재환이 보였다.


“아이, 우리끼리만 한잔하려고 했는데 재환 씨, 어떻게 알고 빨리 왔어?”


남자 사장님은 너스레를 떨며 재환에게 말씀하셨다.


“아 그러셨어요? 아이, 그냥 나오다 보니까 이 시간에 도착했네요.”


재환도 덩달아 너스레를 떨며 남자 사장님의 말을 받았다.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짐을 챙겨 주방을 나왔다.


차를 타고 재환의 집으로 향하던 중 재환이 편의점 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우리 여기서 뭐 좀 마시고 가요. 내가 살게요.”


재환이 주차하며 내게 말했다.


‘지가 훔친 내 돈으로 사는 거면서 도둑놈의 새끼가 생색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열기 가득한 주방에서 일한 탓에 음료가 간절했다. 편의점으로 들어가는 재환의 뒤를 따랐다. 재환은 캔 음료를 나는 초코 음료를 집어 들고 편의점을 나와 차 앞에 섰다.

재환의 차 위에 올려둔 음료. 종종 재환과 나는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러 음료를 마시곤 했다. 이때는 한참 추웠던 7월.


“상우 씨, 담배 한 대 태우세요.”


재환은 흡연을 하지 않았다. 나는 가방에서 말아 피우는 담배 잎과 필터, 종이를 꺼내 능숙하게 한 개비 말아 불을 붙였다. 한 모금 들이마시자 목구멍이 화했다. 연기를 내뿜고 달달한 음료를 마셔 목을 축였다. 재환은 아마도 사건에 대해 얘기를 꺼내려는 것 같았다. 순순히 이실직고해주면 좋으련만…


"상우 씨, 진짜 미안한데 다른 집 알아보셔야 할 것 같아요."


예상과 달리 재환은 굉장히 생뚱맞은 얘기를 꺼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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