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1화.
천안에서 전개된 프랜차이즈 카페의 계약직 사원으로 입사해 1년 만에 점장직을 꿰찼다.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서라고 적는다면 그것은 분명 거짓일 테니, 얽힌 사연을 짧게 적자면 이렇다.
무릇 높은 자리에 앉을 사람은 그 배포란 것이 범인과는 다를 터, 내가 일했던 프랜차이즈의 대표도 그랬다. 배포가 어찌나 컸던지, 투자받은 회사 자금 전부를 손에 쥔 화투패에 올인했고 결국 구속되었다. 소식은 물에 부은 에스프레소처럼 순식간에 모든 투자자들에게 퍼졌고 그들은 앞다퉈 투자금을 회수, 그로 인해 회사는 도산했다.
당시 회사의 투자자이자 이사직을 맡고 있었던 기운이 형님은 묻어 둔 투자금 대신 내가 일하던 지점(그의 말을 빌리자면 돈도 안 되는 지점.)을 울며 겨자 먹기로 떠안았고 운영 의지가 전혀 없던 그는 ‘그냥 네가 점장 해라.’ 라며 나를 점장 자리에 앉혔다.
얻어걸린 점장 자리래도 커피에 대한 열정은 진심이었다. 때문에 한국에서 갈고닦아 연마한 나의 커피를 세계무대에서 펼쳐보고 싶었고 아울러 향상시키기 위해 워킹홀리데이를 결심, 정착지를 커피의 도시 멜버른으로 정했다.
면 거짓말이고 남들 다 가는 워킹 홀리데이, 나도 한 번 가보고 싶기는 한데… 그렇다고 남들처럼 호주 시골에 틀어박혀서 고된 일만 하다 돌아오고 싶지는 않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대충 그냥 도시에서 바리스타로 폼 나게 일하면서 방문한 손님이나, 어쩌면 직장 동료일 수도 있는 호주 여자, 그러니까 그녀의 이름은 아마도 캐롤라인 아니면 레이첼 같은 여성스러운 이름일텐데 프로훼셔널하게 일하는 내 모습에 반한 그녀와 아이는 남 1, 여 1 이렇게 둘 만 낳기로 했고 이제 문제는 신혼집을 한국에 얻을지, 호주에 얻을지… 요건데… 하… 근데 요거는 일단 내 생각에는 한국이 낫지 않을까…
따위의 망상을 즐기며 내 나이 스물아홉이 되던 해 4월, 저가 항공사의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떠났다. 도착한 호주는 가을을 맞이하고 있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 미리 예약해 둔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하자마자 적당히 짐을 풀어두고 헬스장부터 등록했다. 약 3년간 꾸준히 해온 운동을 그만두고 싶지 않았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싸구려 식빵과 시리얼을 씹으며 하루가 시작됐다.
조촐한 아침 식사가 끝나면 신속하게 헬스장을 찾았다. 운동을 마치면 보이는 카페마다 이력서를 돌렸다. 저녁에는 와이파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게스트 하우스 로비 한구석에서 한국에서 가져온 노트북을 사용해 온라인으로 입사지원을 했다. 발로 뛰며 이력서를 돌리고 온라인으로 입사 지원을 하다 보니 몇 곳에서 인터뷰 즉, 면접을 보자고 연락을 해왔다.
‘어딜 가더라도 일정량의 병신들은 존재할 것이다.’는 가정을 우리는 ‘병신 보존의 법칙’이라 일컫는다. 전 세계인이 모이는 대도시란 명성에 걸맞게 보다 다양한 병신들이 있었을 뿐, 멜버른도 이 법칙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때문에 겪은 병신 같은 경우를 몇 자 적자면.
첫 번째 병신과 면접 시간을 오후 1시로 잡았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문 닫힌 카페가 있었다. 도착했다고 문자를 보내자 그때부터 30분 간격으로 자기도 거의 도착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답장을 보내왔다. 시간은 흘러 어느새 오후 3시, 나는 문 닫힌 카페 앞에서 다른 사람을 채용했으니 돌아가라는 문자를 받았다.
또 다른 병신은 자기가 남자인데 남자 마사지사가 필요하다며 개인 마사지사로 일해줄 수 있냐는 문자를 보내는가 하면, 바리스타를 구한다고 해서 면접을 보러 갔더니 ‘사실 우리는 주방 보조를 원해. 주방 보조 한번 해보는 거는 어때?’ 따위의 말을 지껄이던 병신도 있었다.
그렇게 실패를 거듭하길 약 한 달, 50년 역사를 자랑하는 호주의 카페 프랜차이즈 ‘머핀 브레이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인도에서 호주로 이민 온 ‘아밋 챈들러’라는 사장님이 운영하는 카페였는데 내가 묵고 있는 멜버른 중심부에서 거리가 꽤 되는 외곽 쪽에 있었다.
트램과 전철을 타고 어렵게 찾아간 머핀 브레이크의 면접은 성공적이었고 출근 날짜를 잡았다. 출퇴근을 위해 거주하고 있던 중심지에서 외곽으로 이사가 불가피했다. 이사할 집을 알아보던 중 나는 김재환을 만났다.
재환은 나보다 5살이 많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하나님께서 도와주셨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내가 집을 확인하고자 방문했을 때에도 우리의 만남을 하나님께서 도와주셨다며 하나님께 감사하자고 말했다. 나는 모태 불교 신앙이지만 철저한 갑을 관계 앞에 함구했다.
호주 영주권을 목표로 일본인인 처와 2살 아들을 데리고 한국을 떠나온 재환은 가족과 거주하기 위해 임대한 주택을 셰어 하우스로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재환의 집, 방 한 칸에 세 들어 살게 됐다.
재환의 집에는 스리랑카에서 온 유학생 ‘히라’가 나보다 먼저 세 들어 살고 있었다. 그녀는 이른 아침에 등교했고 집에 돌아온 후에는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 내가 그녀를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김치 공장에서 일하던 재환은 퇴근하면 주로 영주권 취득을 위한 영어 공부를 했다. 그러나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퇴근하고 나서도 한국인이 운영하는 일식집 주방에서 일했는데 나도 그의 소개로 일식집 주방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훗날 재환은 일하던 김치공장에서 임금체불, 추가 수당 미지급 등의 이유로 회사 간부들과 싸워 퇴사하게 된다. 당시 재환은 내게 이런 말을 남겼다.
“상우 씨, 여기선 한국인을 더 조심해야 돼요.”
나는 월요일부터 토요일 낮에는 ‘머핀 브레이크’의 바리스타로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에는 일식집에서 키친 핸드(주방보조)로 일했다. 키친 핸드의 주 업무는 설거지였고 설거지가 끝나면 만두나 튀김을 튀기는 등 간단한 메뉴들을 조리했다.
일식집은 전철역에서 거리가 멀었다. 나는 차가 없었기 때문에 재환과 같이 일하는 금요일에는 그의 차를 타고 퇴근했다. 그러나 재환이 출근하지 않는 토요일에는 사장님 부부 중 한 분이 나를 링우드 역(일식집과 인접한 역.)까지 태워다 주셨다. 그러면 혼자서 전철을 타고 블랙번 역(재환의 집과 인접한 역.)으로 이동했고 버스가 끊긴 시간인지라 역으로 마중 나와 있는 재환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일식집 주방에는 사장님 내외 중 외를 담당하고 계시는 분이 항상 상주하셨고 호주 영주권을 획득하신 셰프님 한 분이 계셨다. 그리고 김초밥을 담당하시던 여사님 한 분이 계셨는데 영주권은 없었지만 어린 나이에 호주로 유학 온 딸들의 보호자 자격으로 ‘가디언 비자’를 받아 호주에 체류하고 계셨다.
사장님 내외 중 내를 담당하고 계시는 분은 홀에서 서빙을 하셨다. 우리는 사장님 내외를 두고 외를 담당하고 계시는 분을 남자 사장님, 내를 담당하고 계시는 분을 여자 사장님이라 불렀다.
홀에서 서빙을 하는 직원들은 여자 사장님을 제외하고 전부 호주인이었다. 그중 ‘알리’라는 여고생이 파트 타이머로 일하고 있었는데 이 친구는 k-pop에 빠져 한국으로 대학 진학을 고려하고 있었다.
알리는 다리 한쪽이 선천적으로 불편한 친구였다. 알리가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알았다. 알리는 온전한 다리를 계단에 먼저 올려두고 불편한 다리를 끌어올리듯이 계단을 올랐다. 후천적 장애가 아닌 선천적 장애라는 사실은 초밥 여사님이 말씀해 주셨다.
알리는 홀에서 일하는 다른 호주 친구들과는 달리 유난히 나를 친절하게 대했다. 언젠가 만두를 구우려고 달궈진 팬 위에 냉동 만두를 올리다가 튀어 오른 기름이 약지를 덮어 버렸다. 약지 살갗이 그 짧은 새에 다 익어 벗겨졌다. 내 비명을 듣고 달려와 괜찮냐고 물어보는 알리의 질문에 나는 인상 팍 죽이고 이렇게 답했다.
“You Serious? Am I looking Good?”
알리의 표정이 굳어졌고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나를 걱정해 주는 친절한 어린아이의 물음에 왜 그렇게 답했는지…
5월이었다. 호주는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에 있었다. 일몰 시간이 점점 빨라졌고 매일같이 바람이 세게 불었다. 일식집이 유난히 바빴던 토요일 밤. 사장님 내외의 업무가 끝나지 않아 초밥 여사님이 그들을 대신해 나를 역까지 바래다주게 되었다.
“너 재환이 집에서 살고 있다며? 방세 얼마 내?”
달리는 차 안에서 초밥 여사님이 물으셨다. 초밥 여사님도 재환처럼 주택 한 채를 임대해 셰어하우스를 운영하고 계셨다. 재환의 집과도 거리가 꽤 가까워서 나는 초밥 여사님의 속내를 금방 알아챘다.
“방세요? 방세는 왜요?”
“그냥… 내가 너를 좀 도와줄까 해서. 얘기해 봐.”
“에이… 그래도 상도덕이라는 게 있는데... 말씀드리면 안 되죠. 어떤 것 때문에 그러시는데요.”
초밥 여사님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야. 니가 먼저 니 패를 까야 나도 내 패를까지. 얘기해 봐. 안 그럼 후회할 수도 있다?”
“됐어요. 저 후회 안 해요.”
확신에 차서 답하는 내게 초밥 여사님은 더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혹시라도 도움 필요하면 얘기해.”
역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 내게 여사님이 툭 던지듯 말씀하셨다. 살짝 비웃음이 섞인 웃음 조로 짧게 대답하고 지하철 개찰구로 향했다.
지금까지 초밥 여사님과 인사 외에는 별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재환과 마찬가지로 셰어 하우스를, 그것도 재환의 집과 가까운 지역에서 운영하시는 분이 대뜸 집세를 물었다. 이미 선을 넘었는데 거기에 더해서 얘기하지 않으면 후회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으시는 꼴이, 또 굳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며 나를 재환의 집에서 빼내어 자기 집으로 들여 방세를 받아내려는 그 얄팍한 속내가 너무 뻔하고 뻔뻔스럽기 그지없어 웃음이 나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