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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이윤 Nov 02. 2020

"¿너 어디서 왔어?"에 담긴 진짜 의미

'츤데레 존중'이 당연한 스페인 사람들

"넌 어디서 왔니?(¿De donde vienes?)"


그럼 나는 대답한다. 

"한국에서 왔어.(Soy de Corea.)"


그런 내 대답에 다시 질문한다.

"아니, 여기로 오기 전에 어디에 있었냐고.(No, ¿por dónde andabas antes?)"


그럼 나는 어버버 하며 대답을 고친다. 

"아, 지난달까지 그라나다에 있었고, 지난주에 마드리드로 왔어."


스페인 생활 초기에 나는 언어교환 모임에 자주 나갔었다. 동양인 외모인 내가 출신이 어딘지 그들에게는 궁금했을 법도 한데, 그들은 좀처럼 나의 나라를 묻지 않았다. 위에서처럼 내가 어딜 여행하다 '왔'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 여기 스페인에 있는지를 더 궁금해하던 친구들. 한국에서는 처음 만났을 때 이름보다 더 앞서 질문받곤 했었던 지역, 학벌, 직장 등에 대해서는 아예 질문하지 않는 일이 많았다.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은, 내가 '현재' 어떤 사람인지를 더 존중해주고 궁금해하는 질문인 셈이다.


***

 이런 비슷한 '츤데레 존중' 사례는 또 있었다. 어느 한 카페를 들어갔었는데, 음료 하나를 주문해도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을 만큼 꽤 많은 사람들로 붐볐던 카페였다. 역시 그곳에도 동양인은 거의 나 하나뿐이었다. 그곳 직원은 음료를 주문하는 나에게 넉넉하게 기다려 달라 말했고, 조금 뒤 음료가 나오자 그 직원은 나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다 자기 동료에게 이렇게 말했다.


"까만 모자 쓰고 있던 여자애에게 전달해줘."


 저 표현이 뭐 어때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그의 표현에 적잖이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사실 내가 직원이었다면, "동양인 갖다 줘"라고 했을 거다. 아시아인이 거기 나밖에 없는데,  인종적으로 표현했다면 훨씬 쉽고 빨랐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그는 나를 인종으로 규정하지 않고 그저 내 옷, 모자만을 보고 그렇게 표현했다는 사실에 나는 많이 놀랐다. 그들의 무심하면서도 상대방이 존중되는 표현들이, 내 속의 불편한 편견들과 자주 마주하게 만들었고 스스로 나 자신을 반성하게 만들었다.


***

사실 내가 20살 나이에 스페인에 왔었다면, 이런 상황은 눈에 띄지도 않았을 것 같다. 어릴 적부터 축적되어온 편견들이 잘못되었거나 편향됐을 수 있단 생각을 아예 못했을 테니 말이다. 만약 내가 미국으로 입양된 미국 국적의 한국인이었다면? 그런 나를 저 카페 직원이 내 인종적 생김새만 보고, '아시아인' 혹은 '중국인' 등으로 함부로 판단했다면 어땠을까? 자신의 국적 정체성뿐 아니라 태생적 정체성 조차도 무시되는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나는 스페인을 '인종차별이 없는 나라'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분명히 그들 속에서도 특정 나라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내재돼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스페인 사람들이 다른 유럽 사람들보다 훨씬 더 굉장히 '열려' 있다는 건 확실하다. 스페인은 한 때 가톨릭, 유대인, 무슬림들이 모두 모여 살았던, 유럽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멜팅팟' 국가 중 하나였다. 특히 약 800여 년간 스페인을 다스렸던 무슬림 세력이 오래도록 영향을 미친, 꼬르도바, 그라나다, 세비야를 포함하고 있는 안달루시아 지방은 문화, 사회, 종교적으로 수많은 섞임 현상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 사람들 속에서 조화와 평화를 이룰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화, 생활양식, 건축, 문양, 디자인, 집 구조, 심지어 생김새도 다른 서유럽 국가보다는 무슬림 쪽 분위기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무슬림 사람들처럼, 금발보다는 검은 머리를 가진 사람들이 많고, 눈과 눈썹이 굉장히 뚜렷한 사람이 많다.)

그러나다 알람브라 궁전 모습(출처: 구글, 직접찍은사진)
꼬르도바 메스키타-성당, 스페인 대표 배우(하비에르 바르뎀, 페넬로페 크루즈/출처: 구글)

 어쨌든 어느새부터인가 나도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출신부터, 국적부터 묻지 않게 되었다.  대신 요즘 어디를 모험(여행)하고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생각을 안고 있는지 그래서 어떻게 이 곳까지 흘러들어오게 되었는지 그들의 현재 모습에 더 많은 귀를 기울이려 노력하고 있다. 개인의 다양성을 당연하게 생각해주는 이런 에티튜드가 스페인의 '열린' 분위기를 만들었을 것이며, 이런 차별을 조심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개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조금씩 변화시켜 온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너 어디서 왔니?"라는 스페인 사람들의 사소하고도 순수한 질문이 이렇게 나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서로의 '현재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더 많이 형성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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