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을린 피부가 미의 기준인 나라
스페인 마드리드를 거쳐 그라나다에 도착한 2019년 1월 말.
나는 그라나다 현지 사람처럼 살아보려고 노력했다. 우선 한국의 예능, 웹툰, 신문기사 등을 보기를 모두 끊었다. 그리고 현지인이 살고 있는 셰어하우스에 방을 구하고 (스페인은 보통 청년들이 셰어하우스에서 산다. 우리나라만큼 원룸형 주거공간이 발달되어 있지 않다.) "카우치서핑(couchsurfing)"이라는 모임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언어교환 모임에 참석하며 그라나다 현지 친구들로부터 현장 스페인어를 배웠고, 현지 문화를 체험했다.
특히 셰어하우스에서 함께 살았던 룸메 마리아는 내 첫 스페인 친구였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하엔(Jaén)이라는 지역 출신의 친구인데, 정말 막역하게 지냈다. 나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고 자신의 길을 주체적으로 씩씩하게 개척해 나가는 당당하고 독립적인 친구였다. 최고의 룸메이트였다.
그 친구와 나는 많은 면이 비슷했다. 나처럼 여행을 좋아하고, 독립적이고, 자존심이 세고, 성격도 털털하니 사교성이 좋았다. 동시에 나와 많은 면이 달랐다. 나완 달리, 연애할 때 남자 친구에 빠져 살지도 않았고, 매일 운동을 할 만큼 부지런했으며, (우리나라로 치면 '임용고시'를 당시에 준비하고 있었는데) 공부할 땐 공부하고 놀 땐 미련 없이 신나게 놀았으며, 매사에 자신감이 항상 넘치는 그런 친구였다.
그런 마리아와 나의 만남은 '스페인'과 '한국'이라는 두 세계 간의 만남과도 같았다. 그중 흥미로웠던 부분은 '미인'을 생각하는 두 나라의 기준이었다. 내가 한국의 대표 미녀라며 '이영애'의 사진을 보여줬더니 마리아는 기겁을 했다, 이분 어디 아프냐고. 그녀에 따르면, 스페인 사람들은 피부가 지나치게 흰 피부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 '걱정'부터 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환자 같다'라고 느끼기 때문이란다. 게다가, 피부가 희다는 것은 여름에 휴가를 떠나지 않았다(=햇빛에 피부를 그을릴 여력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해서, '가난하다' 혹은 휴가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피부가 희고, 가냘퍼보여야 예쁘다고 보는 한국과는 달리, 스페인 사람들은 까무잡잡한 그을린 피부(bronceada; 구릿빛 색깔로 그을린)에 건강한 여성을 매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나는 밖에만 나가면 햇빛을 가리기에 바쁘다. 햇빛을 쬐면 피부색이 짙어지고, 주름살도 많아지고, 각종 피부 노화의 근원이라는 생각에 엄청 집착한달까. 한국을 떠나올 때도, 자외선 차단 화장품을 몇 통을 챙겼는지 모른다. 사실 내가 이렇게 피부에 집착하는 이유는 내가 미모가 훌륭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름 피부가 좋은 편에 속하는데, 사실 이 피부라도 좋지 않으면 여성적 매력이 부족하다는 열등감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피부라도 좋아야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마리아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한국의 미인상이 외국인에게 부정당한 충격과 동시에, 내 속에 있던 열등감에서도 해방되는 아이러니를 느꼈달까.
이영애 배우 사진에 이어 마리아에게 '박보검', '정해인' 배우 사진도 보여줬다. 각각 사진을 보자마자 "이 사람들, 여자야?"라고 내게 물어봤다. (정말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이.) 스페인에서 '박보검', '정해인'배우의는 예쁜 남자임에 불과(?)했고, 스페인 대중들 사이에서는 절대 인기를 얻을 수 없는 외모일 거라고 마리아는 덧붙였다. (참고로 스페인 여자들 사이에서는 '털(턱수염)이 많은' 근육질의 남자들이 선호된다.) 이영애 배우 보고는 아프냐고 묻고, 박보검 배우 보고는 여자냐고 묻다니. 새삼 진짜 내가 딴 나라에 와있구나 싶었다.
이 글을 통해서 내가 한국의 멋진 연예인들을 깎아내리고자 하는 의도는 절대 아니다. 다만, 나 자신이 그동안 왜 그렇게 한국사회에서 정해놓은 미의 기준에 구속되어 있었을까 스스로 자문하고자 함이고, 내가 그런 편견을 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는 것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이다. 지난 30년 간 언론 미디어를 통해, 어른들로 인해, 주변의 시선을 통해 체화되어온 미인(美人)의 기준들은 나도 모르는 새 깊숙이 내 속에 뿌리 박혀 있었고, 나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왔다. 스페인에 있으면서 나는 이런 외적 편견들을 자주 마주하면서, 나 자신을, 내 외모를 더 가치 있게 여기게 되었다. 스페인 사람들에게 나는 새롭고, 이국적 외모의 아시아 여자였다. 한국이라는 우물 속에서는 별 볼 일 없었던 외모였는데, 한국을 나와보니, 나보다 나를 더 예뻐해 주는 사람이 많더라. 매일매일 내 자존감이 회복되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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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다가오자 마리아는 이리저리 자기 피부를 태워가며 나한테 자랑해댔다. 나는 여전히 밖에 나갈 때마다 햇빛이 신경 쓰이긴 한다. 습관처럼 선크림도 구덕구덕 바른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왜 선크림을 바르고 있는지, 쓸데없는 편견이나 외모적 열등감에 아직 사로잡혀있는 것은 아닌지 내 마음을 달랠 줄 아는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때로는 자유롭게 햇빛을 만끽하는 순간의 자유로움도 느끼려고 한다.
아, 그런 마음으로 쬐는 햇빛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