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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쏘이윤 Sep 20. 2020

¿스페인 지상파에는 '누구든' 출연할 수 있다?

성소수자, 70대 노인도 출연하는 스페인 예능

 스페인에도 우리나라 tvn의 '선다방'과 같은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이름하야 "First Dates". 선다방 포맷과 비슷하다. 방송 제작진에 의해 매칭 된 커플들의 첫 데이트 모습을 보여주는 관찰 예능이다.

 스페인에 와서 한국에서의 기억을 더듬어보니, tvn 선다방에 나오는 사람들은 특정한 사회적 기준들이 있었던 것 같다. 나이는 20-30대, 직장인, 결혼을 생각하는 '결혼 적령기'의 사람들. 내 기억에 싱글맘-싱글대디 매칭도 한번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는 정말 '특별' 케이스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스페인에 와봤더니 뭔가 분위기가 다르다. 스페인 방송 황금시간대인 10시쯤에 방영되는 예능 프로그램 중 한 곳에서 흥미롭고도 충격적인 장면이 나왔다. 바로, 아래 사진처럼, 트랜스젠더 커플이 나온 것.


스페인 예능 <First Dates>에서 트랜스젠터 커플이 데이트를 하고 있다. 이 와중에 티비 브랜드 DAEWOO임ㅋㅋ(사진출처:본인)


 직접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아래와 같이 70-80대 할아버지-할머니 커플도 나왔다.


스페인 예능<Frist Dates>에서 70-80대 노인 커플이 데이트를 하고 있다. (출처: Cuatro, 구글)


소수는 소수가 아니야

 사실 나는 한국에서 성소수자들도, 노년 커플들도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 아니, 이미 만나보았을 테지만 그들이 철저히 숨겼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입장이나 권리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스페인에서는 달랐다. 여기 사람들은, (적어도 내 주변의 사람들은,) 그들을 '소수'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저 우리와 같은 일반인이고, '다수'의 반대편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이러한 인식은 언론매체를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언급한 <First Dates>에는 위의 사진에서처럼 트랜스젠더 댄서가 나오기도 하고, 대학을 중퇴하고 음악을 하고 있는 청년, 화학적 성전환 수술을 진행하고 있는 남자, 몸에 타투를 즐겨하는 여자 (스페인 방송에서는 타투 부위를 모자이크 처리하지 않는다), 심지어 배우자를 사별한 70대 노인도 나온다. 특정 집단군이 아닌, 다양한 개인들이 사랑을 찾기 위해, 인연을 찾으러 나온다. 출연 목적 또한, 연애만 하고 싶은 사람, 결혼을 당장 하고 싶은 사람, 아미고 꼰 데레초(Amigo con derecho; 섹스만 하는 친구사이 / *이후 게시글에서 좀 더 상세히 다뤄질 예정)를 원하는 사람 등 다양하다. 본인의 연애성향들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시청자들 또한 악플을 달거나, (사실 스페인에는 악플 문화 자체가 별로 없다.) 방송사에 항의 전화를 넣지도 않는다. 정말... 내가 딴 세상에 와 있구나 싶었다.


원래 스페인도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았다

 스페인 현지 사람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스페인도 불과 20년 전에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상상도 못 했단다. 현재의 한국처럼 '성(sex)'에 대해 폐쇄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유럽연합은 '모든 유럽 연합 회원국은 동성애를 불법화해서는 안된다'라고 선언했고, 스페인은 1979년부터 동성애 및 관련 법안을 합법화해 갔다. 이탈리아 1980년, 스위스 1942년, 독일은 1969년부터 합법화를 진행한 것에 비하면, 스페인은 이웃나라 사이에서도 매우 늦은 쪽에 속했다. 그러나 조금씩 성소수자들의 권리(시민결합, 동성결혼, 동성부부의 입양, 성적 지향이 포함된 차별금지법 등)가 적용되면서 사회적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왔고, 현재 스페인은 성소수자에 열린 국가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앞서 말했듯, 20년 전에는 이러지 않았다는 현지 스페인 사람들의 체감적 소요기간을 고려해 보면, 합법화된 1979년 이후부터 이렇게 자리잡기까지 적어도 20-30년이라는 시행착오의 세월이 걸렸다는 뜻일 테다.


 현재 우리나라는 어디쯤 와있을까. 현 상황을 반추해보면, 얼마 전 여자 아이돌 중 한 명이 'FEMINIST'가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수많은 악플을 감당해야 했다는 사례만 보더라도, 아직 우리나라는 여전히 사회적 차별이 만연한 상태이다. 만약 KBS에서 트랜스젠더, 게이, 레즈비언 등 성소수자들이 데이팅 프로그램에 나온다면 파장이 어떨까? tvn의 선다방 다음 시즌이 LGTB 특집이라면? 우선 종교단체에서부터 광화문 앞에 시위한다고 난리 날 것이고, 악플러들이 각종 혐오발언을 하며 출연자들은 씻지 못할 상처만 받게 될 것이다. 이런 현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일찍 성소수자 권리의 합법화가 시급하다. 동성결혼, 동성부부의 입양 등 성소수자에 대한 추가 권리들이 입법되고, 진정한 합법으로 자리잡기 위해 범사회적인 인식개선 및 교육이 함께 추가,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

 누군가 얼마 전 나에게 선진국의 기준이 무엇이냐-라고 질문했다. 코로나 19 사태에서 얼마나 국가가 위기상황에 잘 대처하는지가 선진국 분별 기준이라는 것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나는 한국이 코로나 19 위기를 잘 대처했다는 점만 보고 무조건 선진국이라고 과대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한국의 위기 대처능력은 훌륭했고, 우수한 기술 기반의 재빠른 적응력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사회가 얼마나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느냐를 고려해봤을 때, 한국은 여전히 후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


사실은 우리 모두가 소수자

 사실 '소수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 '성 소수자', '장애인', '다문화' 및 '한부모' 가정의 친구들 등 우리가 사회적으로 규정한 소수자들 외에도, 악플에 시달리는 아이돌/연예인들, 직장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사회 초년생들, 아토피피부염으로 고생하는 아토피언들, 스트레스로 인한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 직장인들까지, 누구나가 사회적인 억압으로 인한 '소수성'을 갖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사용되는 '소수'라는 단어의 정의/의의부터 다시 고려해 보아야 한다고 본다. 즉, 굳이 '소수'자를 붙이지 않더라도, 혹은 '다문화'라고 굳이 정책용어를 명명하지 않더라도, 누구나가 소수자들로 구분되거나 차별받지 않고  당당한 사회적 구성원 일부로 여겨질 수 있게 바뀌어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선다방에 트랜스젠더도 나오고, '놀면 뭐하니?'에서 LGTB 특집의 원정대가 나오게 되길, 또한 홍석천의 대를 잇는 게이, 레즈비언 연예인들도 두려움 없이 커밍아웃할 수 있게 되기를 조심스럽게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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