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계획이 아니라 통제다
홈 필라테스 VOD 서비스를 구독 중이다. 작년 8월 말부터 1년 약정으로 구독을 시작했고, 10개월차인 지금 35개 프로그램을 수강했다. 총 운동 시간은 대략 92시간으로 집계되었는데, 하루 1시간씩 운동했으니 주 3회 정도의 빈도로 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1년 동안 이 서비스를 통해 운동하면서 내가 어떤 운동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지 알았다. 일단 흥을 돋구기 위해 과도한 텐션으로 동작을 유도하는 수업은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한 회당 10분에서 15분으로 정확하게 근육에 자극을 주는 운동이 오히려 나에게 잘 맞았다. 그래서인지 스파인코렉터를 활용한 운동이 좋았다. 스파인코렉터는 누우면 척추의 커브를 살려주어 등을 곧게 펴주는 운동 기구이지만, 뒤집어놓고 올라타 푸시업을 하거나 기구를 분리해 더욱 다양하고 세밀하게 운동할 수 있다. 이 서비스에 올라와있는 스파인코렉터 운동은 전부 해봤고, 모두 만족했던 것 같다. 동시에 몸의 변화도 눈에 띄게 나타났기 때문에 운동에 더욱 재미를 붙있을 수 있었다.
나에게 잘 맞는 소기구를 찾고 즐겁게 운동하다보니 욕심이 났다. '이 서비스에 올라와있는 모든 콘텐츠를 소비해보자'. 내가 가지고있지 않은 소도구를 활용한 프로그램은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을, 앞으로 남은 두 달의 시간동안 어떻게 들을 지 달력에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두 달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1시간씩 운동하는 계획표가 완성되었다. 마치 프로 운동선수의 하루 일과를 보는 듯했다.
그러나 살다보면 갑작스런 약속이 생길 수도 있고, 다른 운동을 하러 가는 등 기존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그때마다 오늘의 운동 프로그램을 내일로 미뤘고, 그 다음 날도 다음 다음 날로, 내가 세운 계획들은 차곡차곡 뒤로 밀려갔다. 동시에 계획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스트레스가 시작된다. 효율적으로 움직이고자 세운 계획에 나 자신이 잡아먹히는 꼴이다.
이럴 거면 그냥 계획을 세우지 말자. 멤버십이 종료되기 전 꼭 해봐야 할 프로그램 몇 개만 골라, 일주일동안 얼마나 운동할지 빈도만 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매일매일 운동을 미루던 애증의 달력은 지워버렸다. 중요한 것은 내가 꾸준히 운동하는 습관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과도한 계획은 나를 잡아먹는 '통제'인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