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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 정신 깃든, 정갈하고 품격 있는 오늘을 산다

일상을 영위하는 대단함

by 배우는 배우

주어진 일상을 그저 자신의 방식으로 영위하는 그의 모습은 왠지 숭고하기까지 하다. 자신의 삶의 온전한 주인이 되어 사는 것, 영화 <퍼펙트 데이즈> 이야기다. 도쿄 공공화장실 청소부인 히라야마(야쿠쇼 코지)의 생활은 심심하다 못해 자칫 지루할 정도로 특별할 것 하나 없다. 그런데 반복되는 그의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 특별할 만큼 완벽하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기꺼이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을 영위하는 대단함. 그는 지금을, 오늘을 산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식물에 물을 주며 출근 준비를 하고선 집을 나선다. 이동하는 내내 그의 차 안에서 들리는 화면을 가득 채우는 올드팝은 편안하고 반갑다. 도시 한복판에 있는 공공화장실인 일터에 가서도 그는 조용히 그의 장비를 챙겨 자신의 맡은 일을 묵묵히 수행한다. 어차피 더러워질 것이니 대충 하라는 동료의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그의 일에 열심이다. 그런 말쯤에 개의치 않고 깔끔하게 장인 정신 가득한 청소를 끝내고 퇴근길에 그는 늘 목욕탕에 들른다. 기분 좋게 땀을 내고 깨끗이 씻은 후, 야무지게 음료까지 챙겨 먹으며 노곤한 몸을 이끌고 자신의 단골 선술집으로 향한다. 간단한 식사와 술로 하루의 피곤을 풀고, 아는 얼굴들과 정겨운 대화 몇 마디와 적절한 온도의 눈빛을 주고받고는 그제야 집으로 향한다. 집에 가서도 별다른 특색은 없다. 자기 전에 읽고 싶은 책을 편한 자세대로 읽다가 잠이 든다. 그리고 다음날이 밝았다. 다음날도 복사해서 붙여 넣기 한 것처럼 같은 일상이다. 큰 사건 사고 없이 단출하게, 영화는 내내 이렇게 진행된다. 그런데 그의 삶의 패턴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그 모든 행위들이 자신에게 주는 선물처럼 따뜻하고 기분 좋게 느껴진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적절한 온도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래서 편안하다.


영화 퍼펙트데이즈 스틸컷


그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그라고 왜 할 말이 없겠냐만은 그는 일일이 떠들거나 전시하지 않는다. 잔잔한 미소로 대신하고, 경청하기를 즐긴다. 그의 삶 역시 조용하다. 소란스럽고 요란한 세상에 그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은 희한할 정도로 꿈같고 환상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그 자체로 위로와 평안을 준다. 또 일하는 동안 장인 정신 깃든, 흠잡을 것 없는 그의 태도는 '아무도 보지 않아도 내가 다 알고 있잖아, 내가 다 보고 있잖아'를 온몸으로 증명하는 듯하다.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는 그의 자연스럽고도 의식적인 행위는 은근히 우리에게 '하늘을 볼 여유'를 채근하는 듯하다. 나무 사이의 햇살을 필름카메라로 담아내는 넘치는 아날로그 향은 정겹다. 하늘을 보며 미소 지을 수 있는 현대인이라, 이 얼마나 낯설고도 아름다운 그림인가.


영화 퍼펙트데이즈 스틸컷


화장실 청소부인 히라야마의 손을 잡은 아들을 발견한 한 젊은 엄마는 이유도 묻지 않고 아니 이유 따위 궁금하지 않은 것처럼 그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그 앞에서 보란 듯이 아들의 손을 물티슈로 박박 닦아낸다. 그 와중에 아이에게 미소를 보내는 그의 '흔들리지 않음'은 왜 그가 그의 일상을 오롯이 지켜내는지 알 것만 같다.


갑자기 찾아온 사춘기 조카가 등장했을 때 '기어코 무슨 일이 일어나는구나' 생각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이제 조카까지 그의 담담하고 단단한 일상에 스며들어버렸다. 조카의 엄마이자 히라야마의 여동생이 찾아온 저녁, '드디어 이 남자의 사연이 풀리겠구나, 이 사람의 과거사를 들을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 역시 말끔히 없애줬다. 사연 있는 얼굴이지만, 사연을 드러내지 않음으로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그게 뭐 그리 대단하거나 특별하냐'라고 오히려 우리에게 되묻는 듯하다.


그의 삶에는 질서가 있다. 그 평범함이 정갈하고 고상하여 그것이 품위로 우리에게 와닿는다. 조용히 자기 삶의 온전한 주인으로 살아가는 그의 반복되는 매일은 이미 그것만으로 얼마나 완전하고 완벽한지를, 영화는 말한다. 아마 그의 '설 명절'도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이 소박하고 단출하며 조용하지 않을까, 상상하게 된다. 그의 편안한 표정이 우리에게 인사한다. 혼자일 때도 함께일 때도 행복하고 평안한 설 명절 되시길♡


영화 퍼펙트데이즈 스틸컷
'한경 아르떼'와 '오마이뉴스'에 [이언정의 시네마테라피] 영화 칼럼 연재 중

아르떼 https://www.arte.co.kr/stage/theme/4150199/list

오마이뉴스 https://omn.kr/2br5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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