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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암댁 Mar 01. 2022

부암댁의 생각_3.홍시


저번 11월 #밭보따리 (@batt_sonen90 ) 로 대봉이 왔다. ‘어므나~ 오랜만이다!’ 대봉을 줄세워 놓으며 추억에 잠겼다. 늦가을 쯤이면 외할아버지는 대봉을 보내주셨다. 할아버지보다 두세곱절은 긴 대나무 장대로 며칠을 하늘에 닿을듯 큰 감나무와 씨름하신다. 장대끝은 v자로 되어있고 그 아래 그물망이 달려있어 감꼭지를 비틀면 그물망 속으로 쏙 들어간다. 그렇게 하루종일 하늘을 보며 딴 감을 서울딸 부산딸 전주딸에게 똑같이 나눠 보내셨다.

서울딸인 엄마는 감을 받으면 베란다 앞에 주르륵, 티비옆에 주르륵 세워놓았다. 따글따글하던 감이 축 주져 안으며 철퍼덕 한 상태가 되면 밥그릇에 홍시 하나 담아 수저를 꽂아준다. 감꼭지를 조심히 따고 얇디얇게 껍질을 벗겨 한스푼 떠서 입에 넣으면 보드라운게 달콤하다. 때론 입안에 넣고 오몰오몰 겉에 몽글한 것을 벗겨내면 씨도 퐁 하고 나온다. 마냥 과육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몽글한 씨부분이 있는 것도 매력적이다.

할아버지가 아프시고는 그뒤로 홍시는 구경을 못했다. 가끔 엄마가 대봉을 사왔지만, 티비옆에 주루룩 놓을 만큼은 아니라서 티비옆 홍시의 풍경도 그 뒤로는 잊은지 오래다. 일본에서 한번 연시 4개에 100엔 할때 한번 사먹어보고는 나도 사먹는 것을 잊고 살았다. 그렇게 잊고 지냈던 추억의 홍시를 밭꾸러미가 소환해줬다.

부엌옆에 테이블에 주르륵 세워놓고 매일 감을 살살 만져보며 이제나 먹어보나 기다렸다. 어느정도 몽글해졌다 싶었을 때, 오늘 먹어? 아냐 조금더 기다려 하며 혼자 줄다리기를 하며 기다리다 오늘 가장 축처진 홍시를 조심히 들고 반으로 나눴다. 우와.. 그 홍시다! 그리고 맛있다...

옛날 생각도 나고 엄마 생각도 나서 얼른 사진을 찍어서 엄마한테 보냈다. 바로 온 엄마의 답장 ‘대봉? 반시? 약올리는감?’ 옛날 생각나 보냈어~ 했어 했더니 옛날에 안좋은 기억만 있다고 하면서 요즘 옛날옛날한다고... 미안.. 그땐 뭘 너무 몰랐어...

간만에 근황토크를 한다. 김치를 담궜다며 맛이 어떻다 저쩧다 한다. 엄마 주려고 저번에 박광희 쌤 댁에서 백김치랑 생태김치 배우고 좀 챙겨놨다고 했더니 엄마도 이번에 잘 담았다고 준단다. 내가 담은 김치는 너무 적어서 줄 수가 없다 했더니 엄마는 엄마가 아무리 없어도 너줄것 없겠냐 쪼까 담아 준단다.  내것 챙기느라 엄마 줄것 아낀 내 모습이 초라해졌다.

전화를 끊고 엄마 가져다 드리려고 챙겨놓은 것에 내가 담은 김치도 좀 더 담고, 된장도 한술 더 펐다. 내일 갈땐 대봉시도 하나 챙겨야지! 그럼! 엄마는 이 홍시의 맛을 알려줬는 걸! 갑자기 아무것도 아깝지 않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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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암댁의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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