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owa Feb 04. 2022

공적 마스크의 추억

양쌤의 another story 7

  지금 2시 30분이니까 세 시간쯤 자고 또 두어 시간쯤 더 잘 수 있겠군. 맞다, 내일은 조금 일찍 일어나야지.

  주중엔 일단 6시 5분쯤 일어나서 남편이 출근하는 걸 보고 조금 더 잔다. 요즘은 나도 아이들도 나갈 일이 없다 보니 아침 늦게 일어나는데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해는 늦게 뜨고 블라인드도 햇빛 차단이 잘 되는 걸로 바꾸니 늦잠 자기 딱이다.

  아침 8시 40분. 알람이 울리자 잠깐 망설였지만 물 한 잔만 마시고 옷을 입었다. 어제보다 춥다니까 기모 바지에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모자를 쓰고 베란다로 나갔다. 베란다에 매달아 놓은 마스크를 가지러 나가는데… 앗! 저게 뭐지? ㄱ자로 꺾어진 앞 동과 옆 동 사이로 보이는 인도 위에 펭귄이 ‘한 줄 기차’를 하고 있다. 잠이 덜 깼나? 저게 뭐야? 햇빛에 눈이 부셔서 그런가 어째 잘 안 보이지?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봤다. 어! 사람이다. 죄다 약속한 것처럼 흰 마스크에 시커먼 패딩을 입고 따닥따닥 서 있다. 설마!! 


  오늘은 목요일. 출생연도 끝자리가 4와 9인 사람들! 나는 창문도 열고 방충망도 열고 다시 눈을 부릅뜨고 봤다. 망했다. 뉴스에서 약국 앞에 줄 선 사람들을 보았지만, 월요일에 남편과 딸이 어렵지 않게 공적 마스크를 샀던 터라 느긋하게 약국 문 열 시간에 맞춰 나가려던 나는 당황스러웠다. 갈까 말까 망설이다 남편의 가지 말라는 문자를 핑계 삼아 다시 침대로 들어갔다. 그래, 아직은 여유분이 있으니까. 5분쯤 지나니 남편이 다시 문자가 왔다. 마스크 알리미 앱에서 내가 가려던 약국과 사거리 쪽 약국들은 초록색이라고 했다. 베란다로 나가보니 오메, 그 사람들 다 어디 갔지? 후다닥 옷을 입고 나섰다. 사람이 많이 줄긴 했다. 

  “아이구, 엄청 줄 섰네.” 뒤에서 어떤 아저씨가 소리치더니 쌩하고 나를 지나쳐 뛰어갔다. 나도 본능적으로 뛰었다. 그 아저씨를 따라 약국 앞에 있는 신호등 색깔 따위 흥! 냅다 뛰었다. 아저씨 뒤에 줄 서고 보니 상가 정육점 사장님이셨다. 설마 내 앞에서 끊어지진 않겠지. 이쪽저쪽에서 빠른 걸음으로 사람들이 다가와 내 뒤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정육점 사장님은 앞에 줄 선 사람들이 몇 명인지 세어 보더니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 “빨리 나와. 엄청 줄 섰는데 못 살 수도 있겠어.”


  참나. 나는 여행지의 맛집 앞에서도 줄 서 보지 않았다. 남편과 맛집을 찾아갔다가 줄이 길면 기다릴 것도 없이 다른 곳을 갔다. 아, 한번 아니 두 번 줄 서보긴 했네. 브런치 카페 가는 길에 줄 선 사람들을 보고 얼떨결에 합류해서 시식 빵 받아먹으며 줄을 섰고 또 한 번은 대학로 돈가스집 앞에서다. 그때는 친구들과 함께여서 수다 떠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줄을 섰나 보다.


  다행히 지루하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줄이 짧아지고 있었다. 긍정의 기운을 막 느낀 그때, 두 장의 마스크를 들고 당당하게 나오며 외치는 소리가 있었으니… “마스크 오늘 끝이래요.” 곧 약사가 문 앞에 마스크 품절이 써진 종이를 붙였다. 아까 망설이지 않고 나왔으면 샀으려나. 순식간에 줄은 뭉개지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아~ 전투력이 상승한다. 나는 그 길로 사거리로 향했다. 약국들을 훑어보며 가다 보니 한 약국이 오후 3시부터 판매한다는 공지가 붙어 있었다. 좋아. 2시에 나와서 줄을 서 보자. 그런데 당연히 품절일 줄 알았던 대형 체인 약국 앞에 여덟 명이 줄을 서 있었다. 뛰다시피 가 보니 11시부터 번호표를 배부한다는 공지가 붙어 있었다. 9시 50분인데 번호표 받으러 벌써 줄을 선 것이다. 에잇, 집에나 가자. 배고프다.   


  오후 3시가 조금 넘어 결국 마스크 두 장을 손에 쥐었다. 바지 주머니에 넣은 신분증을 집에 두고 온 줄 알고 줄을 이탈해 두 정거장 정도를 걸어갔다가 정신을 차리고 돌아와 다시 50분의 기다림 끝에 26번째로 마스크 구입에 성공했다.     


  2020년 3월, 막 접어든 코로나 시대에 마스크 품귀현상을 겪었을 때의 일이다. 마스크를 쟁여놓지 않으면 너무나 불안하던 때였다.

  2022년 2월, 오미크론이 확산하며 신규 확진자는 사흘째 이만 명을 넘어섰고 마스크가 아닌 자가진단키트 품귀현상을 겪고 있다. 설마 또 줄을 서야 하는 건 아니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날 갑자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