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owa Mar 16. 2022

걷는 게 좋아지는 중

양쌤의 another story 8


  절대 걷는 걸 싫어하는 게 아니다. 윈도 쇼핑이라면 서너 시간도 즐겁게 걸을 수 있다. 여행지에서도 지쳐서 못 걷겠다 한 적은 없다. 단지 배부를 때 소화나 시키자며 걷는 걸 좋아하지 않을 뿐이다. 걷는 건 몸이 적당히 가벼울 때가 좋다. 배부를 때는 소파에 눕는 쪽이 더 좋다. 역류성 식도염 때문에 좀 고생을 한 적이 있긴 하지만.     


  걷기가 아픈 허리엔 제일 좋은 운동이라는 걸 알지만 운동을 목적으로 걷는 것은 별로다. 이 나이에도 내재한 반항기가 여전한지 걸으라 하면 더 걷기 싫다. 게다가 러닝머신은 참 재미가 없다. TV 보면서 걸으면 시간이 금방 간다지만 TV는 소파에 누워서 큼직한 화면으로 보는 게 최고다. 의사들은 허리가 아파도 어깨가 아파도 걸으란다. “햇빛 보고 좀 걸으세요.”가 유행어인 것처럼. 추워서 눈만 빼고 돌돌 싸고 다니는데 도대체 겨울에는 어떻게 햇빛을 보며 걸어야 하는지, 의사들은 햇빛 보며 걷는지 묻고 싶었다.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기 전엔 산책하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친구의 손에 끌려가지 않는 이상 나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러 바람 쐬러 기분이 꿀꿀해서 산책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봄이면 벚꽃에 개나리에 조팝나무를 비롯한 꽃들이 넘쳐나고 겨울에도 귀여운 오리 가족이 줄줄이 헤엄치는 안양천에 오랫동안 무심했었다. 코로나가 잘한 일이라면 가끔 안양천을 따라 걷게 만든 거다.      


  그러고 보니 나는 걷는 걸 좋아하지는 않았네. 싫어하지 않았을 뿐이지.     


  한 움큼씩 먹는 영양제에서 하나라도 줄여보려고 비타민D 주사를 맞으러 갔다. 주사를 맞고 병원 옆 도서관을 가려다가 뒤돌아 안양천으로 내려갔다. 고가도로 아래 열심히 팔을 흔들며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고 비교적 어슬렁거리며 걷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책을 넣으려고 가져온 텅 빈 에코백은 덜렁덜렁 손목에 매단 채. 갑자기 걷기 딱 좋은 날이었다. 생각보다 춥지도 않고 얕은 바람이 상쾌했다. 죄다 말라버린 갈색을 띤 풍경 위로 선명한 하늘만 보며 걷다가 커피 생각이 났다. 오전엔 일단 닥치고 커피.      

  가끔 들리던 카페로 가는 길에 처음 보는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언제부터 있었지? 오늘은 이 집 커피 맛을 보자. 개업한 지 5개월 됐다는 말에 물어보고 머쓱했다. 눌러쓴 모자 속에선 보나 마나 김이 피어오르고 있을 텐데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아무도 없는 카페에 앉아 땀 뻘뻘 흘리며 마시는 커피. 하~ 빨간 맛만 불맛이 아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 걸을 이유를 만들었다. 왕복 5km 정도, 도보 1시간 이내의 카페 탐사를 하는 거다. 인터넷 지도로 검색해 보니 카페가 참 많다 많아. 


  요즘 월요일마다 걷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걷기로 다짐한 지 두 달쯤 되었다. 걸어서 찾아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브런치 글들과 아침 기사를 읽고 돌아온다. 한 주를 시작하는 마음의 자리를 쓸모 있게 정리하고 몸의 균형도 찾아본다.

cafe 동네  /  Su's coffee  /  Gradito cafe

 

 내가 찾아가는 카페들은 프랜차이즈 카페가 아니다. 그래서 좋은 점은 카페마다 각각의 아기자기한 매력들이 있어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는 거다. 하지만 월요일이 휴무인 카페도 많고 대체로 오픈 시간이 늦는 것이 좀 아쉽다. 한 번은 엄청 추운 날 생각 없이 일찍 나섰다가 문 연 카페를 못 찾아 당황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오픈 시간 5분 전 불이 켜져 있는 카페를 발견한 순간 문을 밀고 들어가 인사하고 앉아버렸다. 

댕리단 커피  /  cafe 7gram  /  cafe 가배

 

 월요일이면 거의 첫 번째 손님으로 카페의 문을 연다. 어쩌면 주인이 하루 중 가장 정성스럽게 내렸을 커피를 마신다. 마스크에 갇혔던 입이 자유롭게 커피의 맛을 느낀다. 커피 향이 카페의 부족한 온기를 채운다. 혼자 편안하게 마시는 게 좋으면서도 내가 일어날 때까지 다른 손님이 들어오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한다. 텅 빈 자리를 바라볼 주인에게 마음이 쓰인다. 유일한 손님으로 앉아있기라도 하는 게 나을지 나도 빨리 자리를 떠나주는 게 나을지도 생각한다. 카페가 사람들로 가득해도 아무렇지 않은 평화롭고 정겨운 일상이 빨리 오길 바래본다.      


  걷는다. 낯선 카페, 처음 보는 머그잔, 비슷한 듯 다른 커피 맛을 찾으며, 놓쳤던 마음을 챙기며 걷는다. 

  걷는 게 좋아지는 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적 마스크의 추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