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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wa Mar 22. 2022

Keep Calm and Drink Up

양쌤의 another story 9

 5일 동안 갇혔다가 쏟아져 나오는 커피콩의 향이 마스크를 뚫고 콧구멍으로 직진한다. 

 음~(들숨) 하~(날숨) 좋다. 커피콩이 든 지퍼백을 살살 흔들어 핸드밀에 커피콩을 넣는다. 

 이만큼, 이만큼… 이만큼? 

 커피콩을 덜 때만 사용하는 나무 숟가락이 없어 어림짐작으로 넣는다. 너무 적은가 싶어 커피콩을 서너 개씩 계속 핸드밀 안으로 떨어뜨린다. 처음 핸드밀로 커피콩을 갈 때처럼 정성을 다해 오른손을 움직인다. 서걱서걱. 끼익끼익. 커피콩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2년 동안 부지런히 일한 핸드밀의 팔다리 쑤시는 소리가 조용한 방에 가득하다. 

 한동안 빛을 못 보다가 2년 전부터 세상 구경하는 커피메이커에 종이필터를 펼치고 갈린 커피콩을 붓는다. 600ml의 물이 커피 가루를 거쳐 조금씩 유리 티팟에 떨어진다. 똑 또로록 똑. 시각, 청각, 후각을 자극하는 저 까만 물방울들은 곧 나머지 감각을 채우며 내 몸에 스며들겠지.

일주일간 곁을 지켜준 친구들


 목의 통증이 없어진 6일 차 아침, 커피를 내렸다. 5일 만에 맛보는 커피다. 아쉽게도 코가 막혀 맛을 잘 모르겠다. ‘브라질 옐로우 부르봉’. 아주 맛있다는 로스팅 카페 주인의 얘기에다 달콤한 초콜릿 같은 이름에 끌려 산 커피콩인데… 그 맛이야 앞으로 천천히 알아가면 되지.

 오랜만에 머리가 맑다. 좁은 이동식 책상에 파일 케이스 두 개를 겹쳐 노트북을 올리고 커피를 놓으니 꽉 찬다. 침대 발치에 걸터앉아 노트북을 켰다. 딱히 무엇을 쓰겠단 생각은 없지만 앉아 있다 보면 뭐라도 쓰겠지.      

  ‘Da-da-da-da-da-da Da-da-da-da-da-da-da-da Then I will fall without a parachute’ 

새로 만든 플레이리스트에서 John K의 ‘Parachute’, Bazzi의 ‘Star’, Benson Boone의 ‘Ghost town’이 이어졌다. 맛도 모르는 커피를 계속 마셨다. 하얀 화면에서 살짝 시선이 비켜나는데 일주일 가까이 사용했던 종이컵이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커피 색깔과 같은 13온스 종이컵에 쓰인 하얀 글귀, 

  ‘Keep Calm and Drink up’

  흐흐흐. 그냥 하던 대로 커피나 마셔라? OK. 커피가 몸 구석구석에서 기지개를 켰다.

일주일간 나를 달래준 친구들


  ‘Keep Calm and Carry On’은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대규모 폭격이 예고되었을 때 영국 국민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만들어진 슬로건이었다. 여기에서 비롯된 ‘Keep Calm and ~’ 패러디 표현이 많이 나왔었는데 이 시점에 이렇게 나를 응원해줄 줄이야.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코로나바이러스로 아수라장이 된 세상은 전시상황과 다를 바 없었다. 바이러스를 막으려고 이기려고, 누구는 진이 빠지도록 총만 없는 전투를 치러야 했고, 누구는 철저히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했다. 그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마음에 커다랗게 빈칸이 생겼다.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삶에 분명 달라지는 것들이 있겠지만,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나가 다르지 않으므로 그전의 삶은 이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하던 것들을 담담히 회복해가는 것으로 아수라장이 된 일상을 일으켜 세워본다.     

“Keep Calm and Carry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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