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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wa Mar 29. 2022

선물

양쌤의 another story10 

선물     

    

시인이 건네준 가래나무의 열매 두 알

손에 꼭 쥐어본다.   

  

이른 봄 꽃샘추위 속 목련

한여름 시원한 소나기

늦가을 바래진 은행잎

겨울밤 길고 긴 불면까지    

 

시인의 사소했던 때론 특별했을

하루, 또 하루가

계절을 되짚어

내 손에 스며든다.  

   

살아야 할 시간의 쓰임과

감당할 무게를 헤아리지 못한 채

웅크리고 앉았던 마음이

드디어 기운을 차렸다.    

  

마저 굽혀지지 않는 손가락 안에 머문

가래나무의 열매 두 알    

 

딱딱한 껍데기 속에 감추어진

시인의 눈길과 마음길을 따라간다 


(by oowa)

         

*가래나무 : 추목. 우리나라 토종나무. 열매를 추자라 한다.

                호두나무와 비슷하지만 호두보다 껍질이 훨씬 두껍고 알맹이도 훨씬 작다.  


   

시인이 건네준 가래나무 열매, 호두, 책

   2년 전 여름, 팔순이 다 된 시인이 책 몇 권과 함께 호두를 닮은 열매 두 알과 호두 두 알을 건네셨다. 

“수필 쓴다며? 이런 책들도 한번 읽어봐.” 

“우와~ 선생님 너무 감사해요.”

“손에 힘이 있어야 글도 쓰는 거야. 이거 뭔지 알아?” 

“다 호두 아니에요?” 

“이건 가래나무 열매야.” 

“가래나무요?”

“이거 손에 쥐고 굴리면 좋아.”

  들어본 적도 없는 가래나무 열매를 처음 봤다. 


  글 쓴 지 얼마 되지 않은 병아리 작가를 응원하는 시인의 마음에 감동했던 날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글을 써 오신 분이 이제 막 작가의 길에 들어선 후배에게 무엇이 필요할지 생각하시고 챙겨 나오신 그 마음이 정말 따스했다. 이젠 펜을 쥐어야 할 손의 힘보다 오랜 시간 노트북 앞에 앉아 있어도 아무렇지 않을 목과 어깨와 허리의 건강이 더 중요하지만, 가래나무의 열매는 그날 이후로 내게 나침반 같은 존재가 되었다. 종이의 빛은 퇴색하더라도 열매 안에 숨겨진 글 쓰는 것에 대한 정성은 오래오래 나의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줄 거 같다.


  시인은 지금 투병중이시다. 예전처럼 멋진 헌팅캡을 쓰시고 성큼성큼 걸으시는 모습을 뵐 날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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