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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딩하는 작가 코작 Jan 13. 2021

내가 죽기전에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

3부 - 결혼을 하다.

5년 전 비가 아주 많이 오던 날. 우리는 결혼했다. 사실 준비란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한채 시간이 흘렀다. 결혼식 당일이 되던 날, 우리는 서울에서 새벽 5시 30분에 메이크업을 받으러 미용실 샵에 갔다. 샵이란 곳은 연예인이나 가는 곳인줄 알았는데, 내가 가게 될 줄이야. 못 일어나면 어쩌나 걱정을 했지만, 잘 일어나서 메이크업을 받았다. 그리고 결혼식장으로 출발. 행선지는 강릉이었다.


가서 이제 결혼만 하면 될거라 생각했던 결혼식은, 가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정체도로. 추석 전이라 그런가, 너무나도 막히던 그 길은 우리에게 식은땀이 나게했다. 식전 30분에 겨우 도착한 우리. 부랴부랴 옷을 갈아입고 지인들에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양말을 차에 두고와서 부랴부랴 삼촌 것을 빌려신고, 그렇게 식은 시작되었다.


'신랑 입장'


정말 심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뭐가 그렇게 떨리던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그렇게 머릿속은 백지상태였다.


'신부 입장'


장인어른과 와이프가 함께 걸어오는 걸 보는 난 아름답다라는 생각이 아닌 다른 생각이 계속 들었다.

'언제 나가면 되는거지? 언제 나가면 되는거지? 언제 나가면 되는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굉장히 일찍 와이프의 손을 잡고 걸어왔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주례없는 식을 했던 우리는 양가 아버지의 영상으로 식을 시작했다. 영상으로 보는 아버지는 너무나도 밝으셨다. 동생이 영상을 찍어주었는데, 나중에 들어보니 몇번을 다시 찍으셨다고 한다. 아버지의 영상이 끝나고 장인어른의 영상이 나왔다. 생각외로 와이프는 담담했다. 와이프는 장인어른과 보이지 않는 담을 쌓고 있었다. 지금은 그 담이 다 무너졌지만, 그 당시에 그 담은 절대 허물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휴전선 그 이상이었다. 


영상이 끝나고, 이벤트를 하나 준비했다. 무언가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한다는 것. 처음 해보는 일이었다. 너무 떨렸다. 하지만 이미 시작 된 이상 잘 끝냈어야만 했다. 이벤트는 친구의 축가로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은 페이크. 친구는 노래를 1절만 불렀다. 노래가 끝나자 갑자기 MR에서는 구두 소리가 나왔다.


'도각 도각 도각'


그 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친구는 외쳤다.


"얘들아~!"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이 결혼식 무대에 올라왔다. 그리고


'오 허니~'라는 소리와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렇다. JYP의 허니. 시선이 그 친구들을 향해 있을 때 난 무대를 내려가고, 삿갓을 쓴 채 내 양옆에 다른 친구들을 끼고 '신랑 입장!' 했던 문 앞으로 향했다. 1절이 끝나고 허니의 중간 간주가 나올 때 나와 내 양옆의 친구들은 무대로 걸어갔다. 간주가 끝나갈 때 쯤 나는 무대에 도착했고 '핫!'소리와 함께 썼던 삿갓을 던지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춤이 끝나갈 때쯤 숨겨놨던 꽃다발을 꺼내들어 와이프에게 프로포즈 하듯이 이벤트를 끝냈다. 지금 생각해도 친구들에게 너무 고맙다.


굉장히 몸치였던 나에게 이것은 굉장한 도전이었다. 주말에도 출근하느라 춤 추는 것을 중간에 포기하겠다고 난리쳤던 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 그리고 했다는게 참 신기하다.


그렇게 식을 마치고 폐백까지 마친 우리는 지인들에게 인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정말 멀리서 와주신 모든 분들께 지금 생각해도 너무 감사하다. 그렇게 모든 걸 마친 우리는 비행 때문에 식사도 하지 못한 채 바로 떠날 준비를 해야했다. 밖을 보니 비가 억수로 쏟어졌다. 하늘이 무너질 것 처럼. '정말 잘 살려나보다'라는 주변 분들의 말에 '그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우리는 공항으로 떠났다.


비행기를 타는 그 순간에도 사실 떠난다는게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드디어 떠난다니. 비행기 자리에 앉는 순간까지도 믿기지 않았다. 사실 결혼식을 하기 전까지 내가 결혼을 하는건지 마는건지 생각 할 겨를 조차 없이 바빴다. 일주일 자리를 비운다는 것은 곧 내 책상이 없어진다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할 정도...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고 첫 1년동안 휴가는 3일 썼다. 샌드위치 연휴만. 그 다음 해에는 휴가를 쓰고 출근하는 날이 잦았다. 물론, 주말 출근도 많았고. 모르는 것 투성이었고 새롭게 해야될 것들도 많았기 떄문에 회사생활에 시간을 갈아넣을 수 밖에 없었다.


여러 생각을 뒤로 한채 옆자리를 보니 와이프가 편지를 보고 있었다. 장인어른께서 손수 써주신 붓글씨 편지. 정성이 느껴졌을까, 와이프는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그런 와이프의 손을 꼭 잡고, 우리는 달달한 결혼생활을 꿈꿨다. 그리고, 22시간을 날아 목적지인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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