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잡의 고단함 속에서 찾은 웃음

삶의 무게가 아무리 무겁더라도, 모든 짐을 가볍게 만드는 기적은 온다.

by 윈플즈

30대 후반에 나는 매일 새벽 다섯 시,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거리를 걸어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손에는 두툼한 장갑을 꼈지만, 그마저도 새벽의 매서운 공기를 막아주지 못했다. 역 입구에 도착하면 무료신문을 나눠주는 일을 맡았다. 커다란 뭉치를 받아 들고 서 있으면 출근길 직장인들이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며 내 손에서 신문을 낚아채 가곤 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휙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아주 가끔 “수고하세요”라는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있으면 그날 하루는 덜 춥게 느껴지곤 했다. 신문을 다 소진하면 곧장 주변 상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부터 불을 밝힌 가게들, 이제 막 문을 여는 상점에 들어가 전단을 건네며 인사를 했다. 나도 알았다. 그 일들이 내게 큰 수입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었다는 걸. 하지만 그 일들을 하지 않으면 하루가 더 막막해졌기에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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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이 되면 주말에 촬영한 웨딩 영상을 편집하는 시간이었다.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 앞에 앉아 비디오 캠코더로 담은 장면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신부가 입장할 때의 긴장된 표정, 신랑이 손을 내밀 때의 설레는 순간, 부모님들의 미소와 눈물까지 담아내야 했다. 영상의 길이는 한 시간 남짓이었지만, 그 속을 채우기 위해 수십 시간을 쏟아야 했다. 자막 하나, 음악 한 곡에도 세심한 정성을 들였다. 완성된 영상을 건네주었을 때 신랑 신부가 “정말 감사합니다”라며 눈물을 보일 때면, 그 모든 수고가 보람으로 바뀌곤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언제나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특히 윤달이 끼는 해에는 결혼식이 눈에 띄게 줄었다. 예로부터 윤달에 결혼을 하면 좋지 않다는 믿음이 있었고, 실제로 웨딩홀이 텅 비는 날도 많았다. 그럴 때면 편집할 영상이 없으니 하루 종일 손 놓고 있어야 했다. 수입이 없는 날은 고스란히 불안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나는 또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휴대폰 가판 판매였다. 천막을 치고 화려한 장식을 세운 것도 아니었다. 단지 퇴근길 사람들이 몰리는 길목에 작은 진열대를 놓고, 최신 기종과 요금제를 설명하며 발길을 붙잡는 일이었다. 하루 종일 서 있을 필요도 없었다. 보통 3시간 정도만 서 있어도 하루치 수입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 3시간 동안 서 있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어야 했고, 그중 대다수는 고개를 젓거나 무심히 지나쳐갔다. 그래도 몇몇은 발걸음을 멈추고 내 말을 들어주었고, 그중 한두 명이 계약으로 이어질 때면 잠시나마 뿌듯함이 찾아왔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마음 한구석은 늘 무거웠다. “내가 원래 하던 일은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잡다한 아르바이트들을 전전했다. 편의점 야간 근무를 하며 새벽 손님을 맞이하기도 했고, 작은 행사장의 보조 인력으로 들어가 무거운 짐을 나르기도 했다. 때로는 이름도 모르는 사무실에 들어가 서류 정리를 하며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였다. 아이들 밥그릇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하루 세 가지 일을 동시에 붙잡으며 살았던 시절, 내 몸은 늘 지쳐 있었다. 새벽에는 무료신문을 나르느라 손끝이 갈라지고, 저녁에는 가판에 서 있느라 다리가 퉁퉁 부었다. 편집 작업으로 밤을 지새우면 눈은 충혈되고 허리는 굳어버렸다. 사람들은 “그래도 일을 꾸준히 하니 다행이다”라고 말했지만, 내 속은 늘 불안으로 가득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버틸 수 있을까, 다음 달은 또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지만 그 모든 고단함을 덮어주는 순간이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들려오는 둘째 아들의 웃음소리였다. 작은 발소리가 “쿵쿵” 다가오고, “아빠 왔다!”라는 외침과 함께 두 팔을 벌려 안겨 오는 그 순간, 하루의 피로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내 옷에는 먼지와 땀 냄새가 배어 있었지만, 둘째 아들은 그걸 개의치 않고 얼굴을 묻으며 까르르 웃었다. 그 웃음은 나를 구해주었다.


어느 날은 너무 지쳐 소파에 쓰러지듯 앉아 눈을 감았다. 아이들이 옆에서 장난을 치며 놀고 있었지만, 나는 몸을 움직일 힘이 없었다. 그때 작은 손길이 내 무릎에 닿았다. 아들이 조심스럽게 “아빠 힘내”라고 속삭였다. 짧은 말 한마디였지만, 눈물이 핑 돌았다. 아이는 단순히 장난처럼 말했을지 몰라도, 그 순간 나는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았다.


쓰리잡의 시절은 나를 끝없이 몰아세웠다. 잠은 늘 부족했고, 몸은 만성적으로 아팠다. 하지만 동시에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일깨워 주었다. 삶의 무게가 아무리 무겁더라도, 누군가의 웃음 하나면 버틸 수 있다는 것. 내게 그 웃음은 아이들이었다.


이제 돌아보면, 쓰리잡의 기억은 단순히 고통의 시절로만 남아 있지 않다. 오히려 아이들이 웃어주던 얼굴, 작은 손길, 따뜻한 말 한마디가 더 선명하게 남아 있다. 힘겨웠던 기억 위를 덮어버린 건 늘 그들의 웃음이었다. 그래서 그 시절은 가장 고통스러웠으면서도 동시에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나는 그 웃음 덕분에 쓰러지지 않았고,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다.


― “삶의 무게가 아무리 무겁더라도, 그 모든 짐을 가볍게 만드는 기적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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