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던 아들이 어느덧 커서 자기주장을 하는 순간

아이가 내 손을 떠나 순간은, 내가 그만큼 잘 키웠다는 증거이다.

by 윈플즈

아이를 키운다는 건 신비롭다. 매일 곁에 두고 함께 지내는데도, 어느 순간 문득 그 아이가 달라져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 부스스한 머리로 식탁에 앉아 있던 아이, 밥숟가락을 쥐고 투정 부리던 모습, 잠자리에 들기 전 내 품에 안겨 이야기를 해달라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어느 날 고개를 들면 그 아이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또박또박 자기 주장을 펼치고 있다. 마치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사이에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듯한 순간. 그럴 때면 나는 놀라움과 뭉클함, 그리고 아련한 서운함을 동시에 느낀다.


큰아들이 처음 자기 생각을 끝까지 말했던 순간이 아직도 기억난다. 어릴 때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고개를 끄덕이며 따르던 아이였다. “이제 그만 놀고 숙제해라.” 그러면 투덜거리며도 결국 숙제를 했다. “이 옷 입어라.” 하면 별 말 없이 갈아입었다. 하지만 어느 날, 내 말에 단호하게 “아니야, 나는 이렇게 할래.”라고 말하는 걸 들었을 때,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어릴 적에는 내 품에 꼭 매달리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이유를 설명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작은아들도 마찬가지다. 어릴 때는 형을 따라다니며 작은 그림자처럼 늘 붙어 다니던 녀석이었다. 형이 좋아하는 장난감이면 자기도 좋아한다고 했고, 형이 가는 길이면 아무 말 없이 따라갔다. 그런데 이제는 형에게도 “나는 그거 싫어. 나는 이게 좋아.”라며 자기 뜻을 분명히 밝힌다. 처음엔 그 말투가 낯설게 느껴졌다. ‘이 녀석이 벌써 이런 말을 할 나이가 됐나?’ 하며 잠시 멍해졌다. 하지만 그 순간이야말로 아이가 자라고 있음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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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자기주장을 펼칠 때, 솔직히 말해 내 마음은 복잡했다. 기특하고 대견한 마음이 드는 동시에, 내 말이 더는 절대적이지 않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부모라면 누구나 비슷한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내가 그려온 울타리 안에서만 머물 줄 알았던 아이가 이제는 스스로 경계를 넘어 자기만의 길을 내고 있는 것이다. 그 길은 때로는 위험할 수도 있고, 실수로 가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아이 스스로 걷게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기억난다. 어느 날 저녁, 가족이 함께 식탁에 앉아 있었을 때였다. 나는 평소처럼 아이들에게 공부 이야기를 꺼냈다. “너희는 지금이 제일 중요한 시기야. 시간을 허투루 쓰면 나중에 후회한다.” 그러자 큰아들이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빠, 나도 알아. 근데 나만의 방식으로 하고 싶어. 내가 스스로 선택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거 같아.” 순간, 그 말이 가슴을 쳤다. 내가 아이를 위해 한 충고였지만, 동시에 나 스스로에게도 던져진 메시지처럼 들렸다. ‘네가 나를 믿어줘야 내가 나답게 클 수 있어.’ 그 말 속에는 그런 의미가 숨어 있었다.


작은아들도 한 번은 나를 당황하게 했다. 게임을 오래 한다고 내가 잔소리를 늘어놓자, 녀석은 조금 울먹이면서도 굴하지 않고 말했다. “아빠는 맨날 나 혼난 얘기만 해. 나도 잘한 게 많아.”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맞는 말이었다. 아이가 잘한 것보다 못한 것만 바라본 건 아닌가 돌아보게 됐다. 아이의 한마디가 나를 멈춰 세웠다. 아이가 자기 목소리를 찾는 순간, 부모는 거울 앞에 선 듯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아이들의 주장은 때로는 사소하다. 저녁에 뭘 먹을지, 주말에 어디를 갈지, 심지어는 집에서 어떤 영화를 볼지 같은 작은 선택들이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순간에도 자기 뜻을 내세우는 걸 보면, ‘아, 이제 진짜 한 사람으로서 자기 색깔을 찾아가고 있구나’ 싶다. 부모인 나는 아이들의 그런 목소리를 존중해주어야 한다. 때로는 부드럽게 조율하고, 때로는 단호하게 경계를 알려주면서도 결국은 아이가 자기 선택을 해볼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게 부모의 역할이라는 걸, 아이들의 주장을 들으며 조금씩 배워간다.


아이들이 커간다는 건 결국 내 품에서 점점 멀어지는 과정이다. 어릴 땐 내가 모든 걸 해줄 수 있었지만, 이제는 내가 모든 걸 해줄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옆에서 지켜보며, 넘어지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손을 내밀 준비를 하는 것뿐이다. 그것이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라는 걸, 나는 이제야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가끔은 아쉬움이 몰려오기도 한다. ‘조금만 더 작았으면, 조금만 더 오래 내 품 안에 있었으면.’ 하지만 그런 아쉬움 뒤에는 기쁨이 따라온다. 아이가 내 손을 떠나 자기 발로 걷는다는 건, 내가 그만큼 잘 키웠다는 뜻이니까. 그 순간을 받아들이는 게 쉽진 않지만, 그것이 아이와 부모가 함께 써 내려가는 성장의 이야기다.


― “성장은 아이의 목소리가 커지는 순간, 부모의 마음이 조용히 한 걸음 물러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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