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의 직장생활

by 베를린 부부-chicken

by 베를린부부

예전에 어릴 적 TV 프로그램 중에 'TV 손자병법'이라는 프로가 있었다.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일 때 아버지의 퇴근을 기다리며 TV를 보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꽤나 자주 아버지와 함께 시청을 하곤 했다. 하얀 셔츠에 넥타이를 맨 사람들이 나와 겪는 직장의 이야기들이다. 주로 회사에서 상사들, 동료들 등과 겪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인데, 기억도 가물가물한 이 TV프로 중에 이런 게 기억이 난다. 어떤 사람이 안 주머니에 항상 사표를 품고 다니던 장면이다. 꺼낼 까 말까 하는 그 장면. 물론 그 후에도 코미니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등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던 장면들이다. '사표를 항상 품에 품고 다닌다고' 하며 안 주머니를 쓰윽 보여준다. 그와 함께 비장한 동작과 심상치 않은 표정.

이 김에 찾아보니 88 올림픽 즈음부터 방영된 프로니 벌써 30년이 넘은 프로다. 그러니 나와 30여 년 터울이 나는 내 아버지가 지금 내 나이 또래 때 직장생활을 했을 때가 그랬겠거니 싶다. 그러나 그 사표를 둘러싼 ‘내적 갈등’은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져 나도 마찬가지로 열심히 겪고 있는 중이다.


“내가 진짜 때려치우고 말지!”


이런 감정이 파도를 칠 때 브런치에 와서 글을 읽는 게 여러 모로 많은 위안이 됐다. 세상 곳곳에서 여러 사람들이 각자의 상황에서 겪는 웃픈 일상들. 오죽하면 ‘퇴사’와 관련된 글들이 그리 인기를 끌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어떤 이들은 그렇게 박차고 나갔고 어떤 이들은 아직도 씨름 중이다. 나처럼.


369법칙의 끝자락을 잡고 있는 나 역시도 마찬가지로 끝없는 좌절감과 상실감을 겪고 있다. ‘누군가 밑에서 월급 받는 건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아주 아주 아주 강하게 다짐한 6년 전의 다짐은 잊을만하면 돌아오는 식상한 예능 프로처럼 내 곁을 떠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고 있다. 물론, 월급이라는 무시무시한 보상을 받고 살았으니 여태껏 나의 사표는 내 품에서 나오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 사표를 안 가지고 다닐 수는 없다. 한 번씩 확확 열리는 내 머리 뚜껑을 붙잡기 위해서라도 지니고 다녀야 한다. 그래도 회사 분위기 상, '정말 못해먹겠네!'라고 외치며 '사직서'라고 쓰여 있는 하얀 봉투를 책상에 내팽게 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그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최대한 점잖게 여러 번 회사에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등을 여러 차례 협상하듯 이야기하고 이게 좋아질 수 있는지 가능성이 있는지 서로 간에 '노력'도 해야 봐야 하므로 시간이 꽤나 걸리긴 할 것으로 느껴진다.

이곳의 계약 정서상 수습 시간에는, 마치 아마존에서 내가 구매한 제품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는 사유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정말 한순간에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며칠 어떤 사람이 안 보여서 주변 사람에게 "누구누구는 휴가 갔나 봐?"라고 물어보니 "그 사람 떠났어."라며 속 빈 정보공유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 수년 씩, 식물로 따지면 뿌리를 꽤나 오래 심고 있는 경우라면.. 그래, 좀 걸릴 수도 있다.

그리고 그때쯤 되면 아마도 내가 여태껏 경험한 퇴사를 바탕으로, '최대한 웃는 모습으로 밝게' 헤어지고 싶어 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놈의 직장 때려치우고 말지' 하면서도 정작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쑥쑥 자라고 있는 아기 때문도, 당장 다음 달에 빠져나갈 대출금 때문도 아니다. 다른 곳으로 이직한다 하더라도, 혹은 정말 나만의 사무실로 자립한다 하더라도, 진짜 혹은 아예 다른 일을 하더라도, 사는 것 자체의 생리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삶의 속성'을 조금 알아버려서가 아닐까 싶다. 일상에 아주 급격한 변화를 주면, 당연히 당분간은 몸과 마음이 적응하는 동안 여러 모로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새롭게 적응하기 위해 에너지도 많이 들어갈 것이다. 그것이 희망이건, 후회이건 중요하지 않다. 나의 일상에, 수년 동안 비슷한 패턴으로 생활한 나의 일상에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새롭게 느껴지는 그 기분. 사실 그 기분을 위해서이다. 어느 곳에서 무얼 하던, '일상'자체가 가진 스트레스는 그다지 크게 다르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나 스스로의 보호본능을 작용시켜 현실의 스트레스를 정당화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브런치와 같은 '탈출구'를 더 만들어볼 계획이다. 무언가 계속 찾아보고 시도하고 탐구해보는 그 과정을 더욱더 광범위하게 해 볼 생각이다. 그런 와중에 주 40시간을 의무적으로 써야 하는 직장에서의 나의 깊이는 살짝 얇아질 수는 있겠으나 이미 몸에 익은 '습관'들만으로도 기계적으로 생산하는 머릿속 과정은 에너지를 더 적게 쓸 테니 말이다. 보통 이럴 때 쓰는 말로 '취미'라는 단어가 있으나,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저 단어의 속성을 인정할 수가 없다. 그것보다는 조금 더 치열하게, 더 열심히, 꾸준하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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