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꾸던 미래와 현재는 항상 달라서

by 베를린 부부-chicken

by 베를린부부

내가 어릴 적 유치원에서는 생일 때마다 화려한 왕관을 쓰고, 촛불을 들고 다른 어린이들 앞에 서서 소원을 말하곤 했다. 다른 친구들이 축하주는 것에 대한 화답의 의미였던 것 같은데, 거기에 어른들의 질문인 것 같은 ‘나의 장래희망은 무엇이에요’를 이야기하는 이 생일잔치는 아련한 사진으로만 남아있다.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나는 이런 자리에서 줄곧 택시운전사가 꿈이었다고 했다 한다. 아마도 꼬맹이 나에겐 택시 아저씨가 능숙하게 바꿔 대는 기어 조작이 재미있어 보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후에 내 꿈은 과학자이기도 했고, 화가이기도 했으나 사춘기를 겪으며 한참 공백기를 가졌다. 후에 문과 이과의 선택에선 공대를 나오신 아버지의 영향으로 이과를 선택했다. 그 뒤로는 나도 그를 따라 공대로 향했고 성적에 따라 흘러 흘러 건축공학과로 흘러왔다. 선배들에게 전해 듣기로는 IMF 전에는 건축공학과가 꽤 인기가 많은 과였다고 한다. 뭐 물론 나 때는 뒤에서부터 인기가 더 많았다. 무엇보다 군대 가기 전 패악질을 부려놓은 성적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마도 건설 경기가 예전 같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전공 선택에는 어릴 적 그림 그리는 걸 꽤나 좋아했던 기억의 영향도 있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때마다 진로를 정하는 것이 내 미래를 바꾸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믿어왔건만, 이미 정해진 진로 외에 삶의 요인들로 나의 미래는 지금도 시시각각 바뀌고 있다. 그에 따라 당연히 나의 현재는 과거의 내가 꿈꾸던 것과 많이 다르다.

굳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언급하지 않아도 그냥 사는 것 자체가 예상은 커녕 한 치 앞도 보기 힘들다. 내가 감히 예상을 하는 게 의미는 있을까도 싶다. 어쨌든 삶은 흘러 흘러 여기까지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사는 거’는 아니다. 저 멀리 보이지 않는 미래, 예를 들어 나의 50대 혹은 60대, 등등에 닥치지 않은 일들을 예상한다는 핑계로 걱정과 염려를 하는 것 말고 그냥 오늘 나에겐 주어진 일로 오늘을 열심히 사는 것. 그게 일상의 원동력인 것 같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짧게는 한 달 뒤, 길게는 두어 달 앞에 정해져 있는 일들이 있다. 공모전 마감도 있고, 프레젠테이션 같은 일들도 있고, 잊지 말아야 할 휴가 계획도 있다. 그렇게 지금 앞에 보이는 일에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일주일이 지나가고 한 달이 지나고 일 년이 지난다.


혼자에서 둘이 되고 셋이 된 가족의 일원이 되며 삶의 속도는 더 빨라진 것 같다. 동시에 미래는 더욱더 예측하기 힘들어졌다. 특히 아내나 아기가 갑자기 어디가 아프거나 하면 그 시간을 지나는 사이 세상의 시간은 더욱 훅 지난다. 사실 이런 일상을 살다 보면 “나의 장래희망은 무엇입니다.”라고 말할 마음의 여유도, 시간의 여유도 없어진다. 그래서 더욱 뿌연 연기 속 열심히 손을 뻗어 보일랑 말랑 한 근거리의 목표를 향해 간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뿌연 안갯속 손 뻗으면 바로 손 잡을 수 있는 사람들이 내가 엉뚱한 곳으로 더듬더듬 거리다가 여느 웅덩이에 퐁당 빠지는 것을 막아주는 고마운 이들이다. 십수 년 전 친하게 지내던 직장동료, 힘든 일 같이 이겨낸 친구들, 그러나 이제는 지구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고 사는지 알 수 없는 친구들은 앞을 예상하기 힘든 내 미래만큼이나 멀게만 느껴진다. 뭐 그래, 내가 SNS라는 훌륭한 도구를 잘 안 쓰기는 한다.

20대 후반부터 줄곧 이 곳 저곳 의도치 않게 떠돌아 살아온 탓에 누군가를 만나면 헤어짐도 있다는 “회자정리”를 열심히 느끼며 살아서 그런 걸까. 살면서 어떤 순간에 삶이 교차되며 맺었던 많은 관계들이 장소를 옮기며, 일상이 다시 갈라지며 서서히 멀어지곤 했다. 마드리드에서 스페인어를 배울 때 절친들은 지금 모두 어디에서 무얼 하고 살고 있는지 모른다. 아마도 그래서 나는 그냥 이 순간에, 당장 만나서 얼굴 보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순간들을 더 값지게 느끼는지도 모른다.


내 인생의 공상과학 영화, ‘백 투 더 퓨처’처럼 내가 미래를 가 볼 수 있다면 미래의 나를 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했던 적이 있다. 당연히 궁금하다. 질문 천지다. 그러나 볼까 말까 전에, 하나 확실한 건, 아마도 내가 예상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마치 끝을 예상할 수 없는 영화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듯이 끝까지 “모르기 때문에 기대를 품고” 가 볼 생각이다.

나도 역시 지금과 다른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 이 놈의 직장 따위 때려치우고, 그깟 월급쟁이 때려치우고 한량처럼 놀고 먹는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지금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듯이 그런 미래는 나에게 안 올 가능성이 아주 크다. 그거 말고 올봄에 우리 세 가족이 휴가를 가서 보게 될 햇살이 넘실대는 좋은 날씨와, 마음에 한껏 가득한 행복의 여유가 더 기다려진다.


참 우리의 일상 속에는 아이러니가 가득하다. 정해 놓지 않았기에 더 많은 기회가 넘실대는, 그래서 더 재미있어지는, 어제는 알 수 없었던 오늘이 그렇다.





이전 16화인간관계의 후시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