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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연애 -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by 베를린 부부-chicken

by 베를린부부

예전 어느 프로그램에서 가수 S가 삼사십 대의 연애에 대해 이런 얘기를 했다. “당신은 오락실의 어느 익숙한 게임기 앞에 서 있다.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남은 동전을 만지작 거린다. 고민한다. 동전이 몇 개 안 남았는데 새로 게임을 시작하면 끝판을 깰 수 있을까.”

결혼이 끝판은 아니다. 그리고 연애도 오락이 아니다. 그러나 남은 동전으로 고민하는 모습은 익숙하다. 본인만 알 것 같은 남은 동전의 개수는 우리를 더 신중하게 만든다. 어이없이 게임 초반에 날려버린 동전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이번에는 다를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아내와 나는 장거리 연애로 시작했다. 우리 둘 모두 장거리로 연애를 한다는 것에 대한 불안과 의심은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뭐 안되면 어쩔 수 없지'하는 쿨내 진동하는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래, 한 번 해보자'라는 시작점은 서울이었고 그다음 만남은 베를린이었다. 불확실한 마음의 두 남녀가 외지에서 만나기 위한 노력들이 필요했다. 그녀가 후에 말하길, 비행기를 타는 마지막까지 고민했다고 한다. '그냥 모른척하고 잠수 탈까' 등의 진지한 고민들을 친구들과 상의했다고 한다.


그냥 그대로도 괜찮을 것 같은 일상에 상대방이 한 번씩, 또 한 번씩 나타나기 시작하며 물결이 치기 시작한다. ‘에이 무슨 연애야’라며 일부러 별일이 아닌 듯 스스로를 채근하던 모습에 동요한다. 아내가 일 때문에 독일로 오게 됐고 나와 몇 명의 지인을 만나기 위해 그녀가 베를린으로 왔었다. 그땐 정말 재미나게 놀기만 했고 그 해 여름 내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 우리는 데이트인 듯 아닌듯한 만남을 몇 번 가졌다. 내가 베를린으로 출국하기 하루 전, 난 그녀에게 한 번 만나보자고 했다. 어차피 떨어져 지내야 하니 카톡을 조금 더 자주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게 고백이 되었다.


덥고 습했던 서울의 여름을 지나 그해 성탄절, 우리는 베를린에서 다시 만났다. 연말을 기준으로 3주 정도의 시간을 마련했다. 전체 일정은 물론 최대한 길게 잡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녀는 언제든 출국 날짜를 바꿀 수 있는 표를 끊어서 왔다. 마음에 안 들면 바로 한국으로 가겠다는 의지였다. 나는 겉으로 호탕하게 웃으며 잘 알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기울어져 가는지 더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에게는 베를린에 오는 것이 여행이었지만 우리는 그 속의 작은 여행을 또 하나 계획했다.


우리는 베를린을 출발지이지 목적지로 삼고 여행 계획을 짰다. 베를린을 출발해 데사우를 거쳐 뉘른베르크, 프라하, 드레스덴을 돌아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베를린의 동쪽으로 크게 2000킬로가 조금 넘는 여행이었다. 동쪽 유럽의 연말 분위기를 구경하는 것과 서로의 관심사를 교차로 테마로 정해 상대방에 대해 조금 더 알고자 하는 것 등의 거창한 명분들이 있었으나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대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다. 사소한 순간들마다 서로 의견이 다를 것이고 관점이 다를 것이고 모든 것이 다를 것이다. 과연 그런 다른 점들이 서로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일까를 알고 싶었다.


서로의 마음속의 가장 큰 호기심이자 의심은 과연 이렇게 해서 상대방에 대해 얼마나 알 수 있을까였다. 여행을 하다 보면 사소한 것부터 사사건건 부딪힐 염려가 많다. 그러나 그것 역시 일상이 아닌 여행의 일부였으니 단편적인 모습이다. 결국 상대방을 모두 알 수는 없다. 어쩌면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작은 순간들에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상대방을 기억하기엔 여행만 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다행히 결혼하라고 등 떠미는 사람들도 없었고 둘 다 솔로였으며 마음이 맞는 데로 여행할 수 있는 여건도 됐다. 그러니 그저 여행하면 됐다. 다른 복잡스러운 생각은 서로의 경험에 의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마저도 다행이었다.


우리 둘 모두 그때의 여행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있다. 정말 여행이 괜찮아서였는지, 우리가 지금 잘 살고 있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우리 둘 모두 제법 긴 자동차 여행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뒤로 우리는 종종 자동차 여행을 하곤 했다. 우리 아이가 태어난 뒤로 잠시 멈춘 상태이지만.



여행 첫날, 바우하우스 데사우(Bauhaus Dessau)

Ateliergebäude Prellerhaus / Walter Gropius / 1925 - 1926

당시의 개념으로 직장과 집이 한 곳에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을까. 용도상 아뜰리에 건물(Ateliergebäude)로 구분되는 이 건물은 프렐러 하우스(Prellerhaus)라 불린다. 바이마르(Weimar)의 다른 장소에 이미 사용 중이던 '아뜰리에 건물'이라는 개념이 바우하우스의 새로운 캠퍼스에도 등장한 셈이다. 백여 년이 지난 지금 봐도 세련되어 보이는 이 건물의 발코니의 모양을 좋아한다. 끝이 아래로 휘어져 있는 모양은 빗물을 받아서 버리는 식이 아니라 비가 오면 오는 데로 바로 바깥으로 흘려보낼 것이다. 현행 법규상 불가능해진 형태만 남아서 더 낭만적으로 보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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