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파편들이 퍼즐처럼 모이면

by 베를린 부부-chicken

by 베를린부부

2018년에서 2019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은 참 길고도 길었다. 당시 임신 6개월 차였던 아내와 난, 매 순간 노심초사하며 모든 신경을 예민하게 곤두세우고 지냈다. 모든 것이 처음인데 거기에 낯선 환경이라니. 특히나 오후 4시면 어두워지는 길고 긴 겨울밤은 하루하루를 더 길게 만들었다. 당시 나는 연말연시, 모든 공휴일을 합쳐 3주 정도 휴가를 냈었다. 어떤 이들은 만삭에도 자유로이 여행을 간다고 하지만 우리 부부는 그냥 조용히 베를린에서 연말을 보내기로 했다. 대체 무엇을 하며 연휴를 보낼까.


몇 달 후 우리 집에 오게 될 아이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도 부지런히 해야 했다. 그러나 그건 왠지 해가 지기 전에 해야 할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해가 진 후, 긴긴 겨울밤에 우리 부부는 해리포터 시리즈를 독파하기도 하고 한국 드라마 및 영화를 주르륵 정주행 하기도 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그 시기에 우리가 가장 열심히 했던 놀이는 바로 퍼즐이다.

10대 시절 퍼즐을 즐겨하기도 했다. 틈이 나면 곧잘 빠져들고는 했다. 우연히 누군가에게 건네받은 퍼즐을 해보며 재미가 붙은 우리는 그 뒤로도 각종 퍼즐을 계속 사들여 열심히 조립했다. 그리고 그렇게 한 조각 한 조각 맞춰나간 1000개짜리 퍼즐을 가장 저렴한 액자에 넣어 벽에 보관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렇지 않으면 퍼즐을 보관하기도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렇게 열심히 맞춘 퍼즐을 계속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가 있다.


테두리부터 시작해 하나씩, 하나씩. 그림을 보며 색깔을 맞춰보기도 하고, 모양을 맞춰보기도 한다. 작은 부분을 들여다봤다, 크게 봤다, 열심히 눈 운동도 하고 전혀 엉뚱한 곳에 맞춰보기도 한다. 이렇게 작은 조각들이 정교하게 맞혀져 큰 그림을 만드는 과정을 보며 정말 많은 생각들을 했다. 그래서 열심히 퍼즐을 맞추다 잠깐 손을 놓고 멍을 때린 적이 적지 않았다. 난 사실 그게 더 재미있었다. 퍼즐 자체가 맞춰지고 계속 그림이 맞아가는 과정도 재미있었지만 그 행동을 반복하며 멍 때릴 지난 기억들을 소환해내는 내가 더 재미있었다.


특히 브런치에 써 내려가는 내용들이 결국 나의 지난날의 경험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보니 지나간 시간들을 거의 매주, 브런치를 연재할 때마다, 돌이켜 본다. 먼 산을 바라보며 '아 그랬었지, 이랬었지' 등을 생각하며 한참을 멍을 때리면 불현듯 생각나는 인생의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주변 조각들을 하나둘씩 꺼내 본다. 어떤 것들은 참 다르게 기억되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지겹도록 기억이 안 난다. 그렇게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곱씹어 보는 과정이 퍼즐 맞추는 과정과 너무 비슷하다.


그러나 정해진 개수를 이미 알고 있는 퍼즐과 달리 우리는 너무나 많은 일상들을 잊어버린다. 그저께 점심은 무얼 먹었는지, 몇 년 전 성탄절에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사람의 머리가 최대한 에너지를 덜 쓰려고 노력하는 사이 생긴 '습관'들이 찰나의 순간들을 지워버리곤 한다. 그래서 날이 갈수록 못 미더워지는 내 기억 대신 다른 수단으로 순간을 기억하려 노력한다. 예전엔 어느 자리이던 여러 명이 사진 찍는 행위를 참 싫어했는데 이제는 도리어 내가 나서서 사진으로 남기려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게 몇 개짜리 퍼즐이었는지도 나중엔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요새는 특히 20살 즈음이 많이 그립다. 그 시기에 대한 기록을 많이도 찾고 싶지만 유럽에 나오며 어딘가 모르게 시간의 흐름이 많이 바뀌었다. 주욱 이어지지 못하고 어디론가 다른 방향으로, 다른 세상으로 흘러가고 있는 듯한 이전 시간들을 찾고 싶지만 아쉽게도 많은 자료들이 사라졌다. 심지어 어디에 무슨 자료들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씩 웃자고 올라오는 친구들과의 단체 카톡방의 사진들이 그래서 더 반갑다. 어딘가 모르는 잃어버린 퍼즐의 조각을 찾은 듯한 기분이어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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