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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부부 Sep 28. 2021

성격이 급해서..

by 베를린 부부-chicken

급한 성질은 아무 때나 튀어나온다. 길을 걷다가도, 운전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아이와 놀이터에서 놀다가도, 무언가에 홀린 듯 갑자기 마음이 급해지고 이유 없이 쫓기기 시작한다. 그러나 돌연 불쑥 튀어나오는 듯한 급한 마음은 사실 급작스럽게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의 서두름’을 꾹꾹 누르고 있는 뚜껑이 잠시 열렸을 뿐이다. 물론 이 급한 성격에도 장단점이 있다. 너무 마음이 급한 나머지 발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지만, 빠른 리듬이 민첩함으로 발달되기도 한다. (물론 이 모든 단어 선택은 급한 사람의 관점에서 선택된 것이므로 아주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해석을 동반한다)


사춘기 시절, 학창 시절로 대변되는 10대에는 스스로의 성격에 대해 많이 깨닫지는 못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면적인 행동이나 상황들로 추측되는 '정황'들만 있을 뿐 그것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왜 일어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가족들이 함께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아버지는 항상 저만치 앞서가다 못해 계산대에서도 만나느라 고생하곤 했다. 집안의 어르신들도 급한 걸로 따지면 어디 가서 뒤지지 않았다. (성묘 가는 길에 여러 대의 차량이 서로 급한 것처럼 앞서니 뒤서니 하는 모습은... 지금 같았으면 동영상으로 찍어서 유튜브에 올렸을 것이다.) 여러 명의 가족들이 함께 식사하는 명절 자리에서 누군가는 방금 먹기 시작했는데 이미 누군가는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는 듯한 장면은 꽤나 흔한 장면들이었다. 난 거기서 나도 저만큼 '급한' 유전적인 근거가 있다는 것을 눈치챘어야 했다.


20대에는 ‘연애’를 하면서 내 성격에 대해 본격적으로 배워갔다. 당시 나에게 연애란, 내가 아닌 타인과 겪는, 진지한 감정 발달의 과정이었다. 가족이란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단계였다. 새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남의 의견을 공유했다. 원래 쫓기듯 급하게 길거리를 걷는 습관도 누군가의 손을 잡고 여유롭게 이야기하며,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잡담도 하며 좀 더 천천히 돌아보기 시작했다. 반면 밥 먹는 것이며, 술자리며 이해가 안 되는 문제로 누군가와 싸우기도 하고, 다투기도 한다. 화해도 한다. 여러 사람을 만나며 나에 대해서도 서툴게 조금씩 깨닫곤 했다. 나를 제외한 내 주위의 모든 사람은 이미 이해하기 시작했다. '쟤 좀 성격이 급해'.


이후 30대를 오롯이 유럽에서 보내면서 내 급한 성격에 또 다른 챕터가 시작된다.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급한 성격의 유전자가 너무나 다른 외부 환경과 만나며 심하게 억눌렸다. 은행업무를 보기 위해, 직원에게 간단한 질문을 하기 위해 며칠 전부터 질문에 대해 준비하고, 오랜 시간을 줄 서서 기다리고, 마침내 별 것 아닌 일을 처리하는 것 자체가 나에겐 맞지 않는 환경이었다. 슬프게도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점점 많아졌다. 모든 행정 문제들이 그랬고 인간관계가 그랬다. 그렇게 아주 서서히 나의 고집이 억지로 구부러지기 시작했다. 한국에 비해 모든 것이 천천히 돌아기는 유럽 환경은 후천적으로 나를 변형시켰다. 몇 년 만에 만난 어머니는 이런 나를 보며 아주 신기하게 생각하셨다. ‘이 놈이 유럽 놈이 다 됐네’ 이러시면서 말이다. 아 물론, 우리 가족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아무리 후천적으로 느긋해졌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에겐 여전히 별 차이 없이 급한 성격이다.


혼자가 아닌 가족단위로 살게 되며, 그래서 가족의 구성원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하는 시간이 많아지며 자연스레 자기 성찰의 시간도 많아진다. 밥 먹는 시간이 그렇고, 마트에 가서 서두르는 시간이 그렇고, 느긋하러 나간 산책길에서의 시간이 그렇고, 세상 여유로워야 하는 주말 아침 브런치 먹으러 가는 시간이 그렇다. 전혀 서둘러야 하는 이유가 없음에도 서두르고 있다. 알 수 없는 급한 성격이 나를 볶아 채는 순간, 아차 하는 생각에 고개를 들어 와이프와 아이를 바라보면 불현듯 생각이 든다. '나 혼자만 그러고 있구나.' 아이에게 기필코 느긋함을 물려주겠노라 수없이 다짐을 했건만, 그렇지 못했던 미안하고 송구스러운 순간만 기억에 남는다.


한편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는 이 '급한 성격'의 소유자는 회사 모니터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 프로그램을 어떻게 써야 더 효율적으로 빨리 일을 처리할 수 있을까?"

캐드 프로그램이고, 어도비 프로그램이고, 이런저런 기능들에 대해서 찾아보기도 하고 뒤져보기도 한다. 분명 나의 급한 마음을 채워줄 요긴한 기능을 찾아 헤맨다. '캐드 기능직'으로서 나쁘지 않다. 결국 급한 성격이 나의 효율을 올려줄 것이니.


점심시간에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케밥을 먹으러 간다. 혼잡할 시간을 피해서 나왔건만 하필 오늘이 무슨 날인지 유난히 사람이 많다.  가게는 원래 그리 혼잡한 가게는 아닌데도 말이다. 때마침  앞의 사람이  손에 가득 들어도 모자랄 정도의 어마어마한 양을 주문한다. 아마도 동료들의 주문을 받아서  사람일 것이다. 주문을 받은 아저씨는 웃음인지 짜증인지 모를 묘한 표정으로 고기를 썰고 케밥을 열심히 말아 포장을 한다. 그중에 어떤 것은 양파를 빼고, 당근을 빼고, 치즈를 추가하는 등의 현란한 트릭들도 숨어 있다.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마스크 뒤로 입을 ‘헤에벌리고 어이없이 바라본다. 웬일로  순간 나는 급한 마음도 이내 잊어버린다. 배가 아주 고팠지만  광경을 보는 동안 배고픔을 잊어버린 모양이다. 그러나 결국 어쩌겠는가. 기다려야지.  사람이 먼저 왔고 먼저 주문했으니 기다려야 한다. 사람의 가장 강한 욕구라는 식욕을 달랠  있을 만큼의 통제력. 나는 그만큼의 느긋함이 필요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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