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베를린 부부-chicken
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가 있다. 어릴 적 매일같이 만나 함께 공부하고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쌓았던, 그러나 사는 장소가 달라지며 이제는 연락도 잘 닿지 않는 그런 친구가 있다. 얼굴을 못 본 게 ‘몇 년’이 아니라 이제는 ‘십 수년’이다. 그동안 그는 나보다 조금 빠르게 결혼을 하고 아빠가 되었다. 싸이월드, 페이스북을 거쳐 현재는 인스타그램으로 종종 소식을 전한다. 뭐 특별히 나에게 전하는 것은 아니고, 그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소식을 내가 접한다.
지난봄,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그 친구가 홍콩에 출장을 다녀오느라 자가격리를 한 모양이었다. 15일의 자가격리 후에 가족이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를 보고 평소에 없던 용기가 훅 났다. (당시 나도 한국에서 가족과 함께 자가격리 중이라서 동질감을 느낀 것도 있었다.) 그 힘든 자가격리를 이겨낸 것도 대단하고, 한 도시에 있지만 격리 기간을 이겨낸 그의 두 딸과 아내도 대단했다. 평소 같으면 그저 ‘좋아요’나 꾸욱 누르고 말았겠지만 웬일인지 DM창을 열어 놓고 몇 번이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물론 그에게 보내는 첫 DM이었다.
어렵게 보낸 메시지에 답장이 왔다. 길지 않은 답장에서 불현듯 어릴 적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참 밝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의 주변엔 늘 웃음이 있었고 몇 마디 농담을 주고받으면 안 좋았던 기분도 좋아지곤 했다. 공부는 원래 잘했지만 누구보다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이유에서 숙제를 안 한 날에 있다면 그에게 가서 부탁을 해야 했다. 커다란 망치 가방을 들고 다니던, 웃음 가득한 그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해맑은 웃음을 가득 머금은 그의 가족사진을 보면서, 서로 가족의 안부를 묻고, 건강을 바라고, 가까운 미래에 볼 수 있기를 바랐다.
한동안 난 SNS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굳이 나의 일상을 왜 공유하는지에 대해 공감하지 못했다. 그런 걸 보면 확실히 현실에서의 인간관계가 가상에서의 관계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핸드폰 밖의 세상에서 사람을 많이 만나고 교류가 많으면 SNS도 그렇게 활용이 된다. 그러니 스스로 SNS에 대해서 ‘회의적’이라고 한다면 비단 그것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사람 관계에 대해 전반적으로 회의적이라는 이야기이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남의 일상을 공유할 에너지가 없었다는 핑계가 가장 그럴듯하다. 나에게 인간관계란, 내 일상 다음의 무언가였다.
살면서 가지는 핑계는 끝이 없다. 이번 주가 너무 바빠서, 이번 달이 너무 바빠서, 내일이 너무 바빠서, 이것만 끝내고, 저것까지만 하고.. 그건 배우자가 생기고 아이가 생겨도 관성처럼 바뀌질 않는다. 자가격리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되어서야 무언가 문제가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이제는 문득 ‘아 그 친구 어떻게 지내지, 어떻게 살고 있지, 연락한 번 해볼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을 때, 그 순간을 잡으려 애쓴다. 찰나의 시간이 지나 머릿속에 다른 생각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벌써 용기는 저 멀리 사라져 버린다.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리는 것은 정성이다. 사진이나 글 등으로 자신의 마음이나 현재 상황을 전달하는 것 자체가 노력이다. 특히 게시한 뒤 24시간 동안만 지속되는 인스타그램의 ‘스토리’ 기능은 여타 다른 SNS와의 큰 차별점이기도 하고 신박하기까지 하다. 옆에서 틈틈이 열심히 스토리를 올리는 아내에게 ‘참 열심히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찰나의 순간에 핸드폰을 꺼내 들어 기록을 하고 텍스트 등을 적절한 자리에 좋고 크기를 조정하고, 아이콘을 넣고 하는 과정이 나에게는 참… 큰 정성이 들어간 행동이다. (그래도 1년 뒤, 2년 뒤 그 순간을 다시 꺼내 보여주는 건 꽤나 감동적이다.)
내가 그랬듯 기억 속의 친구가 나의 인스타를 보고 반가운 안부를 건네는 상상을 해본다. 굳이 ‘용기’라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내가 먼저 되어야… 무엇보다 일단 부지런히 인스타를 쓰는 것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