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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도시, 안트베르펜(Antwerpen)을 위하여

by 베를린부부

안트베르펜(Antwerpen)은 벨기에의 주요 항구 도시로, 유럽에서 가장 큰 항구 중 하나이자 다이아몬드 무역과 예술로 유명한 도시다. 벨기에의 수도인 브뤼셀에 이어 두 번째 큰 도시로, 한국의 부산과 유사한 위상을 가진 도시이다. 프랑스어를 주로 쓰는 수도 브뤼셀과 다르게 네덜란드 어를 주로 쓰는 이 도시는 벨기에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꼭 들르는 곳이다.


예전 배낭여행 때 들렀던 이곳에서 시작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설레었다. 당시 뒤늦게 배우던 독일어로 많은 업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어찌어찌 독일어 공부를 시작은 했으나, 생각보다 늘지 않는 속도와 끝이 없는 어휘의 바다에, 자극이 아니라 부담만 늘어가던 때였다. 이럴 바엔 차라리 영어로 진행되는 프로젝트가 저 기다려졌었고, 그게 때마침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이 프로젝트와 맞물렸다.


안트베르펜 중앙역 바로 옆 빈 땅에 계획되는 100미터 높이의 두 개의 타워가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다. 100미터라는 높이의 건물이 이 도시에 처음 들어서기에 그 중요성과 의미에 관심이 더 몰렸다. 안트베르펜 현지 설계 사무실인 „베 아키텍텐(B-Architecten)“ 함께 당시 내가 일하던 사무실은 프로젝트를 반반씩 맡아 진행했다. 건축주이자 발주처는 벨기에 3번째 큰 규모의 시공회사였다. 발주처와 현지 업체는 네덜란드어로 주로 소통을 하고, 우리가 동석하는 자리에는 영어로 소통을 했다.


도시의 규모에 비해 거대한 프로젝트의 높이로 인해 안트베르펜 시 당국도 프로젝트에 깊숙이 관계되어 있었다. 시 입장에선 도심 중의 도심에 해당하는 부지의 개발이니 도심경관에 대해 책임감을 가지고 임했다. 특히 그 관계의 중심엔 도시 건축가인 크리스티앙 랍(Christian Rapp)이란 인물이 있었다. 그는 독일 뮌헨 출신의 건축가로 2016년부터 안트베르펜 도시의 도시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 본인의 사무실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랍앤랍(Rapp+Rapp)이란 이름으로 운영 중이다. 그는 커리어 초창기부터 도시와 건축의 연관 주제에 관심이 많았었던 것 같다.


도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중앙역은 그 긴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풍경과 다양한 모습들이 혼재되어 있다. ‘중앙역계의 성당’이라까지 불리는 안트베르펜 중앙역은 그 화려함 뒤에 중앙역 주변 지역 불균형 발전 문제로 시의 오랜 고민이자 연구대상이었다. 내가 설계담당자로 일을 시작하기 직전, 시에서 마침 중앙역 주변 부지 프로젝트 담당자들을 상대로 워크숍을 개최한다고 했다.


그렇게 중앙역 주변 여러 부지와 관련된 프로젝트 담당자들이 모였다. 독일 2팀, 벨기에 3팀, 네덜란드 2팀 등과 안트베르펜 도시경관부서 담당자들 등 총 20명가량이 한 자리에 앉았다. 도시 건축가인 크리스티안 랍의 인사말로 시작한 미팅은 자유로운 토론으로 한껏 열기를 띠었다. 시내 중심가 한 호텔의 콘퍼런스 룸에 모여 도시 모형을 놓고 서로의 프로젝트에 소개하며 의견을 나눴다. 각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를 공유함과 동시에 앞으로 우리가 함께 바라봐야 할 이 도시의 미래 모습에 대해 이야기했다.


저녁 느지막이 끝난 워크숍 후, 저녁 식사를 위해 자리를 옮긴 우리 모두는 그 뒤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눴다. 사실 본질적으로 도시경관과 직원과 설계 사무실 직원들은 비슷한 업무를 수행하지만 사뭇 다른 관계에 있었다. 도시 경관의 심사를 보는 입장과 심사를 위한 서류를 제출하는 관계는 불편할 수도 생산적인 관계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하지 않은 발주처인 건축주 역시 유사한 이익을 좇지만 입장이 다르기에 항상 모두를 위한 조율이 필요하다. 그 조율을 위해 이렇게 시가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것이 놀랍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시 관계자는 그날 워크숍의 회의록은 시의 자료로 앞으로의 과정에 대한 기록으로 남는다고 전했다.


오랫동안 도시 경관 부서에서 일하셨다는 나이가 지긋하신 한 직원분도 자신도 이런 모임은 처음이라며 신기해하셨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나도 그런 생각에 들었다. 다양한 의견과 다양한 시선을 이 도시에 이식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다양한 프로젝트와 다양한 이해관계에 얽힌 그룹을 우리가 사는 도시의 모습으로 바꾸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문득 크리스티앙이 서울시 도시 건축가로 활동하는 모습도 상상해 본다.


얼마 전, 예전 직장의 동료에게 그 프로젝트가 몇 번이나 좌초를 겪을 뻔했다고 전해 들었다. 코로나의 락다운도 이겨냈지만 프로젝트는 경기침체라는 더 큰 고난을 지나는 중인 모양이다. 다행히 크리스티앙은 여전히 안트베르펜 도시건축과의 수장으로 임기중이라고 한다. 그가 임기 하는 한, 그가 관여했던 프로젝트들은 도시의 형상만큼 신비로운 모습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오래된 멋과 새로운 활기가 넘치는 안트베르펜 도심지의 새로운 모습을 방문할 생각을 하면 벌써 설렌다. 무엇보다 한때 나의 일상의 에너지였던 타워는 어떤 모습으로 현실의 한 부분이 될지 너무 궁금하다. 분명, 그간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바탕으로 뜻깊은 도심지의 풍경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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