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5시 50분, 보통 알람이 울리기 전 시계를 확인한다. 첫 출근 후 처음 며칠은 긴장감에 밤새 계속 뒤척였다. 너무나 익숙하지 않은 시간대라 알람에 일어날 수나 있을지 불안했다. 8시부터라는 근무라는 이 회사에 출근하기 위한 시간을 거꾸로 계산해 보니 대략 6시 반에는 지하철을, 그것도 급행으로 타야 했다. 그러니 6시에 일어나면, 나가기 바쁘고 10분이라도 더 일찍 일어나야 정신이라도 차릴 수 있다. 깜깜하고 조용한 집과 단지를 빠져나와 지하철 역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침 일찍 부지런히 움직이는 걸 보니, 내가 너무 딴 세상에 살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급행열차를 타면 몸은 피곤하지만 빨리 갈 수 있다는 마음은 같은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차례차례 지하철역으로 모인다. 혼잡함에 발을 동동 구르듯 급행열차에 타고나면 몇 번의 환승역을 지나는 동안 사람들은 더 늘어난다. 가끔씩 너무 지나칠 정도로 사람이 많지만 그래도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이제 곧 금방이야’. 빼곡히 탑승한 사람들이 거의 빠져나갈 즈음, 나도 이제 내릴 준비를 한다. 올림픽 공원에 내려 따릉이로 15분 정도 자전거 도로를 달린다. 얼마 전 입주를 시작한 둔촌 주공 앞을 지나, 혼잡한 도로를 지나 살짝 오르막에 시작되며 숨이 차 올 때쯤 드디어 도착이다. 허벅지가 딴딴해지는 느낌이 차오른 숨이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해준다.
이제 한국에 귀국한 지 벌써 6개월이 다 되어간다. 화창한 가을 날씨는 어느덧 차가운 겨울바람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이제는 따스한 햇살이 봄 꽃을 피운다. 눈이 오고 손이 너무 시려 한동안 따릉이를 이용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더 타고 싶은 계절이 왔다. 길에는 벚꽃이 흩날리고 옷차림은 드디어 가벼워졌다. 때때로 미세연지 경고음이 핸드폰을 우렁차게 울려대지만, 그래도 이 봄이 반가운 마음이 더 크다. 그 사이, 8시 출근에도 어느덧 몸이 적응했다. 전날 조금 늦게 잠들어 알람을 못 들어도 10분 정도 뛰면 지각하지 않을 시간에는 무조건 눈을 뜬다. 첫 아이가 갓난쟁이 때 7시부터 일어나 놀아달라고 하면 너무 이른 아침이라며 일부러 꽉 끌어안아 더 자라고 종용하곤 했다. 지각하지 않기 위해 매일 서두르는 요즘의 아침풍경에 비하면 많이 여유로웠을 때다.
서울의 지하철은 대부분 바깥 풍경이 없다. 어쩌다 지상으로 올라가면 그나마도 뿌옇게 오염한 소음방어벽에 막혀 눈을 둘 곳이 없다. 유일하게 한강 다리를 건너는 순간이 지금이 아침임을 느끼는 순간이다. 영화에서처럼 지하세계에 산다는 건 이런 기분일까. 아마 그래서 모두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가보다. 만약 차창밖으로 쨍한 바깥 풍경이 보인다면 어쨌을까. 쓸데없는 생각이 머리를 돌고 도는 사이 열차는 목적지에 도착한다. 기가 막히게 지하철 이용객을 겨냥한 앱들이 있다. 사람들에 겹겹이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자리에 앉아 있어도 GPS를 통해 내 위치는 물론, 내 도착지와 목적지를 입력해 놓으면 다음 환승 시간까지 알려주는 친절한 앱들이 있다. 지루함에 음악을 듣고 있오라니 이런 앱들이 없으면 여기가 어디쯤인지 계속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애매하게 한 정거장 때문에 갈아타야 할 때가 있다. 거리로는 대략 1.5km 남짓밖에 되지 않는 거리이다. 그럴 땐 복잡한 환승역에 쓸려 다니는 것보다 따릉이가 현명한 선택이다. 애매한 환승을 피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는 직업의 특성상 몸이 움직일 기회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건물에 도착하면 이제 엘리베이터라는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35층은 사실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높이의 건물이다. 이 건물에만 10대의 엘리베이타가 쉴 새 없이 사람을 실어 나른다. 한참을 기다려 우르르 탑승한 엘리베이터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하다. 집을 떠나 회사에 도착하기까지 음소거와 대량 소음 사이 몇 번의 드라마틱한 장면을 변화를 지난다. 여러 번의 이직에도 매번 새로운 직장의 첫 장면은 상당히 뚜렷하게 기억한다. 아니, 도리어 그 귀한 장면을 더 기억하기 위해 다 반복적으로 복습해 머리에 기록한다. 이번 이직의 첫 풍경의 압권은 단연 엘리베이터 신이었다. 동적인 장소의 정적인 사람들 풍경인 지하철과 정반대 되는, 정적인 장소에 사람들이 이리저리 요동치는 풍경. 생각보다 길어지는 대기 시간이 쫄깃한 긴장감을 주기도 했다.
한국으로의 이직 후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독일과 비교해서 어떻냐는 것'이다. 사실 까탈스럽게 굴기 시작하면 세세하고 세부적인 것들까지 할 얘기들이 너무 많지만 나의 두리뭉실한 답은 정해져 있다.
'다르죠. 아주 많이 달라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일 것이라는 광고문구는 유럽행에도, 한국행에도, 모든 극적인 변화에는 다 적용된다. 일하는 방식, 생각하는 방식, 사고하는 방식 등등, 질문을 바꿔 대체 어떤 것이 독일과 같겠냐고 묻는 것이 더 효율적인 질문이다. 다른 세상이라는 말이 전혀 틀리지 않은 곳에서 지낸 16년은 나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후천적으로 바꿔 놓았다. 그중 나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긍정'이다. 부정적인 단어와 문장부터 나오는 상대방의 훼방도 한 귀로 흘릴 수 있다. 어차피 안될 것이라는 고마운 염려는, 내가 마드리드로 떠날 때로, 떠난 후에도, 그곳에서도 셀 수 없이 들어왔다. 이제는 어느 누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중에 경험할 실패를 생각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긍정’이 더 익숙하다.
급격히 늘어난 출퇴근 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지옥행 급행열차라는 고마운 조언에도 이제는 허허 웃을 수 있다. 물론 물리적인 출근 시간이 늘어났으니, 당연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지하철을 타면 답답하기도 하다. 출퇴근 시간 없는 재택근무가 그립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는 어차피 겪어야 하는 그 시간을 어떻게 잘 쓸지 고민할 뿐이다. 독일 영주권이 고마운 이유는 이런 방식에 익숙해질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준 것, 그게 전부이다. 답답하고 느린 그 리듬 속에 이유 없는 재촉과 이별한 것. 이거 하나면 독일 영주권은 추억 한가득 거리와 함께 보내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