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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poetry)적인 건축, 알바로 시자

by 베를린부부

'시(詩 / poetry)적이다'라는 표현이 나에겐 유독 어려웠다. 학창 시절, 시를 공부하는 국어시간이면 페이지에 빼곡하게 받아 적어 내려가던 수업 내용이 원인인 것 같다. 따뜻하지만 따뜻하지 않은 것을 의미한다던지, 분명 아침이라고 쓰여 있는데 아침이 아닌 다른 뜻이라고 하는 등의 직설적이지 않은 표현이 이과생에겐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내가 건축을 처음 공부하기 시작한 '건축공학과'는 문자 그대로 공과대학의 일부다. 공대생으로 시적인 표현 따위야 모르면 그만이었지만, 여느 멋진 건물을 이해하려고 하노라면 이 '시적'인 표현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꼭 해야만 했다. 마치, 인문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우리네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그 속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같이. 두드러기처럼 입문의 턱이 높은 문학의 장르인 '시'와 필연적으로 친해져야만 하는 필수관문이었다.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Alvaro Siza)는 스타 건축가다. 일찌감치 수많은 작업으로 전 세계 많은 팬들을 보유한 베테랑 건축가이자 92세의 어르신이다. 1세기 가까이 이어온 그의 활발한 활동은 그 자체가 살아 있는 역사이다. 그 시간의 흔적이 이야기하듯, 그의 몇십 년의 행보를 설명하거나 이해하는 건 무리가 있다. 그저 내가 이해하는 대로 바라보고 느끼면 그걸로 족하다. ‘시적인 건축’이라는 표현도 내가 학생 당시 그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에 가깝다. 다 이해하기 힘든 그의 건축세계나 문화, 사회적 배경이 왠지 ‘시’라는 합축적이고 일상적이지 않은 매개체와 조합이 잘 맞는 것처럼 느껴지듯이.


한국에서도 그의 작업들을 만나볼 수 있는데, 나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국가에 지은 작업들보다 그가 고향 포르투갈에 작업한 초기 작품들에 더 매력을 느낀다. 수영장, 레스토랑, 은행, 학교 도서관, 성당 등등 프로그램과 규모가 너무나 다양한 그의 작업은 매번 다른 주제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그의 모교에 지은 작업이자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포르토 건축학교(Faculdade de Arquitectura do Porto)는 꼭 한 번 직접 방문해 보고 싶었다. 어렵게 방문한 포르투갈 여행이니만큼, 나의 버킷 리스트를 위해 다른 가족들이 많이 양보해 줬다.


포르투 건축학교 역시 알바로 시자만큼이나 내가 건축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많이 널리 알려진 건축물이었다. 그래서 건축학도였던 나에게 이 건물은 꼭 자세히 과제처럼 느껴지는 건물이었다. 시적이라는 표현의 근거는 무엇이며, 무엇을 시적인 건물이라고 부르는지에 대한 과제. 끝까지 모른척하며 '나는 다른 건축가를 좋아한다'며 시치미를 뗄 수도 있지만 그렇게 의도적으로 모른 체하기에는 이미 알바로 시자가 너무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 절박한 시점에 유명잡지의 서문들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서문 속 인터뷰어도 대게는 저명한 건축가들로, 그들이 바라보는 알바로 시자의 작업에 대해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스페인의 건축잡지인 엘 크로키(El croquis)의 사진작가 히사오 스즈키(Hisao Suzuki)의 이 사진만큼 포르투 건축학교가 명쾌하게 보이는 사진은 없는 것 같다. 사진의 하단부 오밀조밀 모여있는 근처 집들이 모든 문법 구조를 갖춘 평서문이라면, 사진 상부의 포르투 건축학교는 모든 문장요소를 가지지만 무언가 평서문과 다른 여유로운 구조를 갖춘 시처럼 느껴진다. 크기는 비슷하지만 하나의 재료를 입고 있으며, 듬성듬성 건물과의 여유로운 간격과, 심지어 이빨이 하나 빠진 모습은, 단어들을 듬성듬성 늘어놓은 것 같다. 평서문과 다르게 가끔씩 주어를 빼놓기도 하고, 동사가 다른 형태가 되기도 하고, 어순이 바뀌기도 하는 일종의 모순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 준다. 어떤 창문은 엉뚱한 위치에 있기도 하고, 특별한 이유가 없어 보이는 창문의 형태도 그렇다. 특히 창문과 함께 눈과 눈썹처럼 보이는 캐노피(Canopy)의 쓰임과 맞지 않는 형태들이 더 함축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그리고 이런 표현들에 대한 좋은 예시가 되는 건물이 바로 포르투 건축학교이다.

듬성듬성 자리한 건물들은 모두 강의실이다. 크게 공간상으로 다르지 않지만 각각 다른 얼굴로 느껴진다.

포르투 건축학교에는 학생들의 에너지가 가득했다. 왁자지껄 강의실 소리와 마침 수업이 끝난 대강당에서 쏟아져 나오는 많은 학생들의 소리에서 사진으로 접하지 못한 더 큰 활기를 느꼈다. 포르토 건축대학의 시작은 독특한 진입구다. 마치 어린아이가 만든 조그마한 돌담을 지나는 듯한 빨간 출입구는 그냥 상징적인 의미다. 옆으로 돌아가면 그만인 크기와 기능은 마치 조형물에 가까운, 여기를 통과하며 대지에 진입했음을 알려주고 싶은 일종의 예고편과 같은 역할을 한다. 뒤이어 이어지는 나무가 우거진 경사로를 걸으면 바로 발걸음마다 눈높이가 조금씩 바뀌며 양쪽으로 본격적인 학생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좌측에 왁자지껄 학생들이 가득한 카페테리아가 있고, 그 위로는 소박한 야외 공간이 있다. 왁자지껄한 전이 공간을 지나 본격적인 건물 사이로 들어선다. 공간의 소실점을 유도하듯, 양 옆으로 들어선 건물들은 점점 넓어지고 점점 커지는 듯한 배치를 하고 있다.

좁은 입구에서 바라볼 때 오른쪽의 건물들이 마치 연속되어 보인다. 오른쪽 건물들 너머로 강가를 바라본다.

힘들고 먼 발걸음을 한 가족들과 왁자지껄한 학생식당에서 간식을 했다. 아내는 이내 예전 유학시절을 떠올리며 학교의 분위기를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복도 한편의 자판기에 학생들이 줄 서서 1유로 에스프레소를 뽑아대고 있었고, 간단한 샌드위치와 달콤한 간식거리가 까르르 웃음소리를 배경으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열기 넘치는 사람들이 모두 얼마나 반짝이는 건축가가 될지 생각하니, 저 멀리 먼 나라에서 온 한국 아저씨가 뜬금없이 뿌듯해진다. 시자의 건축을 구경하며 둘러보는 것도 즐겁지만, 그 안의 활기를 느낄 수 있음이 더 좋다.

건물이 있어야 할 것 같은 자리에 뜬금없는 야외벤치가 놓여 있다.
산등성이를 이루는 단차는 마감은 보통 대형 자연석이다. 가끔 경사로가 되어 오르막길에 되기도 하는 이 석축은 마치 자연스레 이어지며 학교의 일부가 되는 듯하다.
밖에서 바라보는 긴 복도. 이 공간은 모든 강의실을 연결하는 동시에 복도에 자연광을 들이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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