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s Leben geht so weiter. Alles gute!”
(“인생은 그렇게 계속되는 거야. 잘 지내!”)
막스(Max)는 마지막 통화에서 시종일관 호탕하게 웃으며 잘 가라 인사했다. 진작에 전화를 한다면서도 결국 출국 하루 전에야 연락이 닿았다. 막스에게는 꼭 직접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멀리서 응원하겠다고. 9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의 고용주이자 사장님이었던 그는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과는 다르게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와의 첫 만남은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긴장된 상태로 사무실 문을 열었던 그 순간, 검은 정장에 뾰족뾰족 멋을 낸 헤어스타일의 그는 웃는 건지 마는 건지 헷갈리는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면접 내내 건축에 대한 집요한 질문이 이어졌고, 마치 ‘건축에 대해 어디까지 진지하게 고민해 봤는가’를 시험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날의 마지막 인사에서 보여준 그의 짧은 미소는, 이 사람 안에 숨겨진 따뜻한 면을 예고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1949년 스위스에서 태어난 그는 일찌감치 독일로 건너왔다. 스스로를 ‘스위스 시골 골짜기 출신’이라고 농담 삼아 말하곤 했지만, 그런 배경이 그에게 남다른 시선을 준 듯하다. 자연만을 벗 삼아 자라온 그에게, ‘합리성’이라는 명분으로 설명할 수 있는 건축은 오히려 더 매력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건축은, 이성과 논리만으로 구성된 단단한 구조물이 아니었다. 딱 떨어지는 구성 안에 감각적인 조형미와 인간적인 배려가 담겨 있었다. 그것이 바로 ‘막스의 방식’이었다.
그의 세계관은 사무실 곳곳에도 녹아 있었다. 심지어 주말 출근 시에도 늘 검은색 옷만 입는 그는, 외부 일정 외에는 오직 검은색 옷만 착용했다. 그의 사무실은 가구도, 바닥도, 화장실도 모두 짙은 회색과 검정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냉정하고 차가운 인상을 줄 법한 공간이지만, 묘하게도 통일감과 안정감을 주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 세계관 안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들도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닮아갔다.
10년 전, 바르셀로나에서 베를린으로 옮겨가기로 결심한 순간은 나에게도 큰 도전이었다. 바르셀로나 사무실의 환경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독일이라는 나라로 가는 것이 큰 결심이었다. 독일어를 못한다는 것과 독일 내 실무 경험이 없다는 벽 앞에서 여러 번 주저했다. 하지만 당시 맡고 있던 프로젝트의 언어가 독일어였고, 독일 업체들과 협업이 점점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시스템과 문화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우연인 듯 보였지만, 결국엔 필연처럼 느껴진 이직이었다. 구인 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보냈고, 면접을 보고, 차근차근 베를린으로 향했다. 그 모든 결정의 순간들이 지금 돌아보면 내 인생의 중요한 이정표였다.
‘합리주의 건축’이라는 그의 명성은 때로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미조차 배제된, 비인간적인 설계를 떠올리게 했다. 반복적인 입면, 정형화된 창의 배열, 대칭과 질서. 그 모든 것들이 ‘합리적 판단’이라는 이름 아래 이뤄지는 듯 보였다. 그런 건축에 처음에는 거리감을 느꼈다. 내가 몸담았던 이전의 사무실에서는 감정적 터치, 즉 디자이너의 직감이 중요하게 작용했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고 프로젝트 하나하나를 따라가면서 점점 이해하게 되었다. 이 방식이야말로 쓸데없는 감정의 소모 없이, 모든 참여자가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도출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베를린 중심가, 미테(Mitte)를 지나가다 보면 만나는 그림젠트룸(Jacob-und-Wilhelm-Grimm-Zentrum)은 그런 그의 철학이 응축된 대표작이다. 밝은 석재 입면 사이로 칼처럼 떨어지는 그림자들은 그 자체로 조형미를 만든다. 이웃 건물과 맞닿는 모든 선은 정교하게 주변을 따르고, 중심에 자리한 열람실은 내부로부터의 따뜻함을 보여준다. 외부의 냉정함과 내부의 온기가 극적으로 대비되며, 건축이 말할 수 있는 언어의 폭을 넓힌다. 자연광이 조용히 흘러드는 계단식 열람실, 막스 두들러 사무실 고유의 디자인 가구들, 그리고 그 공간을 채우는 책들과 사람들까지—모든 것이 질서 안에서 유기적으로 살아 움직인다.
뮌헨의 슈바빙어 토어(Schwabinger Tor)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프로젝트였지만, 막스의 철학은 그대로 투영되어 있었다. 고급 주거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무겁고 단단한 석재 입면은 일종의 ‘공공성’을 부여했고, 깊은 창을 통해 그림자가 흐르며 덩어리의 조형미를 강조했다. 이 프로젝트는 당시 독일 주거시장에 새로운 분양가 기준을 세우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막스는 항상 말했다. “건축은 도시와 대화해야 한다”라고. 그의 프로젝트는 늘 주변 건물과의 관계를 고려했고, 도시 맥락과의 조율을 가장 중요한 설계 요소로 삼았다. 그가 강조하던 밀도, 높이, 재료, 그림자의 깊이 등은 모두 그 맥락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그런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그의 시선을 닮아갔다.
물론 모든 순간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너무 간단한 기준을 이해하지 못해 배제당하기도 했고, 독일어 실력의 부족으로 인해 내 의도를 온전히 전달하지 못해 답답했던 순간도 많았다. 사무실 안에서는 열띤 토론이 오갔고, 어떤 날은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스스로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이야말로 훈련의 시간이었다. 내가 몰랐던 나를 마주하고, 건축이란 직업이 가진 무게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던 시간.
막스의 사무실에서의 시간은 지금껏 내 커리어에서 가장 길고, 가장 밀도 높았던 시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간은 내게 건축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게 만든 전환점이었다. 단지 ‘무언가를 멋지게 설계하는 것’이 아닌, 세상과 조율하며 ‘정확하게 구축하는 것’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내가 떠난 지금도, 프로젝트 하나하나를 떠올릴 때마다 그곳에서의 시간과 사람들, 그리고 막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떠오른다.
“Das Leben geht so weiter.”
그 말처럼, 내 삶도 지금 그렇게 계속되고 있다.
그렇게 삶이 지속적으로 변하하듯, 그도, 그의 건축도 계속 변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