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극한의 상황에도, 극도의 스트레스에도, 극대의 도파민을 느끼기도 한다. 좁고 불편한 캠핑카 안에서 4박을 함께 하며 가족은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고, 까르르 웃기도 했다. 캠핑카를 빌려 그 안에 짐을 가득 실고, 며칠 간의 여정을 위해 각자 살림을 자신만의 자리에 정리를 하고, 그 좁은 공간에 어린이 시트를 꽉 차게 설치한 뒤 고속도로를 달려 낯선 곳으로 향하는 여정은, 그 자체가 인간 성장의 드라마이다. 독일을 떠나기 전, 꼭 해야 한다는 버켓리스트 중 하나였던 캠핑은, 갓 돌을 넘긴 막내를 제외한 다른 가족의 오랜 로망이었다. 그 며칠간의 경험이 너무 강력해 아마도 앞으로 수년간은 캠핑을 다시 가자는 이야기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기억 속에 강렬하게 각인될 기억임에는 틀림없다.
일상과 주변에서 스며든 캠핑에 대한 일화와 문화들이 만들어낸 로망이 캠핑의 시작이었다. 거기에 독일의 불편함에 대한 '당위적 수용'이 만들어낸 결정타였다. 직장 동료들에게서, 아내는 친구들에게서, 아이는 유치원 친구들에게서 캠핑에 대한 얘기는 언제나 수다의 단골 주인공이었다. 아이들의 성장에 따라 휴가에 필요한 숙소의 크기가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방 하나면 온 가족이 모두 잘 수 있었는데, 아이들이 커 감에 따라 더 이상 호텔 등에서도 아이들을 '소아'로 구분하지 않고 '청소년'으로 구분하는 시기가 온다는 것이었다. 방을 2개나 구해야 하는 순간부터, 가족휴가의 지출의 규모가 달라지고, 그 지나친 지출의 주범인 숙소에 대한 해결책이 바로 캠핑이라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다짜고짜 캠핑카로 명명 지어진 대형차량을 갑자기 운전한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이것도 나름 단계마다를 거쳤는데, 몇 번의 간접 경험과 주변의 격려가 용기를 줬다. 몇 년 전, 캠핑을 자주 다니는 친한 가족의 초대로 캠핑장에 놀러 간 일이 있었다. 그 가족의 일정은 금요일 오전에 출발해 2박 뒤 일요일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틀의 야외활동을 위한 4인의 짐은 어마어마했다. SUV의 지붕에 매달린 루프박스(Roof box)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넣고도, 사람이 앉는 자리를 제외한 모든 공간에 짐을 넣고도, 짐은 끝이 나지 않았다. 당시 우리 가족은 텐트가 아닌 캡슐처럼 생긴 캠핑카를 개조한 숙소에서 2박을 했다. 원래 여느 휴양지에 몰러가듯, 금요일 일찍 퇴근한 아빠와 일찍 하원한 아이들이 저녁 느지막이 도착을 목표로 캠핑장으로 향하는 여정이었다. 아무런 캠핑 도구가 없는 우리는 캠핑카를 개조한 캡슐호텔 같은 곳에서 잤고, 그게 우리 가족의 맨 처음 캠핑에 대한 간접경험이었다.
그 후 우리는 우리만의 제대로 된 캠핑 계획을 세웠다. 필히,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꼭 해야 할 계획이었다. 우리 가족은 한국식 트럭기준으로 2.5톤 정도 되는 승합차를 개조해서 만든 폭스바겐의 스프린터를 렌트했다. 최대정원은 4인으로, 차량 후면에 2명, 운전석 위 확장공간에 2명이 잘 수 있는 구조이다. 렌트비 외의 기름값이나 요소수와 같은 부차적인 비용은 개인부담이다. 그 외, 이런저런 내외부 장치들에 대한 보험비용이 조금 번거롭게 되어있고, 자기 부담금에 대한 비율도 요소들마다 조금씩 다르다. 캠핑카를 렌터카처럼 빌려 여행을 떠나는 우리 가족과 같은 사람들이 많이 늘었지만, 보통이 처음인 경우가 많아 기계조작 미수에 대한 파손비용에 구조가 꼼꼼한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워낙 많은 장치와 장비가 있어, 출발 전 꽤 오랜 시간 동안의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한다. 그래도 잘 모르겠고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투성이었다.
캠핑장에 대해서도 많은 선택지가 있다. 우리는 베를린의 북서쪽에 위치한 쿨룽스본(Kühlungsborn)이라는 지역으로 향했다. 편도로 250km 정도 떨어진 이곳은 여름 성수기에는 아주 붐비는 휴양지이다. 발트해를 따라 캠핑장과 휴양호텔, 각종 편의시설이 즐비한 이곳은 한국의 동해안과도 같은 곳이다. 해변가를 따라 형성된 여러 캠핑장도 입장료나 부대시설 등에 다라 사용비가 다 다르다. 캠핑의 초보인 우리는 나름 캠핑장의 5성급인 캠핑스파크 쿨룽스본(Campingpark Kühlungsborn)에서 묶기로 했다. 여기저기 잘 갖추어져 있는 화장실과 샤워실, 사우나 시설, 각종 편의시설과 놀이시설 등은 물론, 캠핑카를 이용하는 사람을 위한 오배수처리 시설 등 모든 것에 고루 갖추어져 있었다. 경험이 없으니 일단 너무 고된 곳은 피하고자 했다.
9월 말은 여름 성수기가 지난 직후였다. 여름날씨가 지나간 바닷가 날씨는 비도 자주 오고 일교차가 심했다. 마침 내리는 추적추적 비에 상당시간 우리는 실내에서 지지고 볶고 놀아야 했다. 날씨 좋은 날, 해를 피하기 위한 파라펫은 유지보수를 위해 비가 오는 날씨에는 사용하지 말라고 권했지만 끊임없이 내리는 비에 파라펫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 노후를 즐기는 분들이었다. 장기로 투숙하시는 분들은 보통 차량도 덩치가 큰 SUV가 많다. 거기에 이동식 캠핑카를 달고 다니기도 하고, 아예 우리처럼 직접 운전이 가능한 자주식 캠핑카로 장기투숙을 하시는 분들의 차량은 웬만한 버스만 한 크기였다. 덩치가 큰 만큼 많은 살림을 가지고 다니시는지 웬만한 가구들이나 대형 TV는 기본이었다. 부활절 연휴나 여름 방학시즌이 되면 1달씩 장기 캠핑을 가는 가족들도 꽤 많은데, 저만한 살림으로 아이들과 장기캠핑을 하는 분들이 갑자기 경외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출발하는 날, 모든 살림을 꾸역꾸역 넣고 모든 가족들이 타고나니 차가 작게 느껴졌다. 오후 내내 달리고 달려 밤늦게 도착한 캠핑장에서의 첫날밤이 생각난다. 좁은 공간에 다들 끼이고 끼여 피곤한 몸을 누였다. 특히 돌이 갓 지난 둘째가 대견스러웠다. 그리고 둘째 날이 되고 셋째 날이 되니 놀랍게도 그 작은 공간에 적응되었다. 첫날만큼 무작정 좁게 느껴지지 않고, 다들 그 행동반경에 적응한 듯 행동했다. 마침 비가 멈춘 날씨에 주변 산책도 가고, 성수기가 지난 넓은 바다를 걸었다. 역시나 놀이터를 보고 광분하는 아이와 비에 젖은 채로 놀기도 했다. 지역의 주력 관광상품이라는 몰리(Moli)를 타고 옆 동네로도 구경을 다녀왔다. 고즈넉하고 조용한 마을에 우리가 떠드는 소리만 들렸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주변에 익숙해질 때쯤 우리가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다. 마음은 반반이었다. 서둘러 집에 가고 쉬고 싶다는 생각과 좀 더 있었으면 하는 마음.
출발부터 도착, 그리고 후 처리까지, 그 수 많고 자잘한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가족 내의 교류 역시 일종의 사회성의 훈련임을 깨닫는다.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 바라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 여러 인물과의 교류를 통해 그 과정을 경험하고 결과를 기억하는 것. 참 별거 아닌 캠핑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불편함의 아련한 기억을 떠올린다. 아이들을 재워놓고 쥐 죽은 듯 조용한 차 안에서 우리 부부는 많은 수다를 떨었다. 기능상의 문제로 차에서 물을 쓰지 못하고 화장실을 쓰지 못한 우리의 불편함도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어디든 우리는 캠핑카로 갈 기회가 된다면 무조건 길을 나설 것이다. 이번에는 아예 더 긴 여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