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도 항공권

by 베를린부부-chicken

by 베를린부부



근사한 명분. 내 삶의 중요한 순간이 될지도 모르는 이 순간에 무언가 근사한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 시간이 흐른 뒤 이 순간을 나 스스로 소중하게 간직하기 위해서라기보다 그냥 그 순간에 무언가 있어 보이고 싶었다.




대학 졸업 당시 꽤 많은 선후배들이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 유학을 몇 마디 말로 이렇다 저렇다 정의할 수는 없지만 이 글을 위해 최대한 26살의 나로 돌아가 그때 내가 가졌던 생각과 감정들을 마주해야 했다. 당연히 첫 번째 동기는 더 배우고 싶고 더 알고 싶은 학문적 욕심이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드러내지 않는 이유들을 나도 가지고 있었다. 남들보다 더 근사한 한 줄의 학벌, 혹은 그러함으로 남들과 달라지고 싶은 욕망.


나의 어지러운 마음속 생각들을 현실 속 상황들과 연결하는 것은 더 어려웠다. 가고 싶지만 가지 못했고, 하고 싶지만 하지 못했고, 아쉽지만 단념해야 했다.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걸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과거형으로 내 머릿속에 새겨야 했다. 그렇게 해야 진짜 '졸업'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졸업 후 서울에 있는 설계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했다. 은사님의 사무실이니 아예 모르는 환경도 아니었고, 일하시는 분들도 꽤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작업을 하던 사무실이었다. 이런저런 나 스스로의 설득에 1년 반 정도를 그 사무실에서 일을 했다. 주 6일 매일 14시간 정도를 일하는 환경은 다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 속에서 나를 조금씩 잊어가는 느낌은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다. 말라비틀어진 화분에 물 붓는 것처럼 아무것도 흡수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나 자신이 영양분이 다 빠져나간 흙처럼 느껴졌다. 매달 국내, 해외에서 배달되는 잡지를 봐도 무엇이 좋은지, 이들은 왜 열광하는지,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릿속만 복잡해질 뿐 아무런 감흥 없이, 이유도 모른 체 나 자신만 탓하곤 했다.


그렇게 근무한 지 1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운이 좋게도 부모님의 도움으로 다른 가능성이 열렸다. 사실 아버지도 은퇴가 멀지 않았던 시점이라 가족들도, 나도 무언의 '적당한 선'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적당한 선을 기회로 바꿀 고민들이 시작됐었다. 어디를 왜 가야 하고 난 그곳에 가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육하원칙에 착착 맞는 과정을 말이다.


그렇게 고민 끝에 찾은 결론이 나의 가장 위대한 건축가, 라파엘 모네오(Rafael Moneo)를 따라 마드리드로 가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어투에 그분은 굉장히 황당해하시겠지만 분명 그 당시의 나는, 그 사람 언저리에 있으면 그와 같이 훌륭한 건축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나는 간단한 인사조차 할 수 없는 벙어리였고 혼자였다. 스페인어의 알파벳도 모르던 나는 일단 언어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후에는 지금 이 시간이 내가 스페인에서 건축가로 거창한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 꺼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는 딱 그만큼 무지했다. 미국 발 세계 경제 위기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내가 스페인에 도착한 그 해가, 아주 길고 긴, 어둡고 축축한 새로운 세상의 첫 해가 될 것이라는 것은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비행기는 그 전에도 종종 타봤지만 돌아오는 비행기표 없이 편도 항공권으로 떠나는 길은 너무 어색했다. 스페인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아오는 길에도, 일주일에 4일씩 각종 송별회를 할 때도, 눈물로 가족들과 인사를 할 때도 실감하지 못했다. 배낭을 메고, 이민가방을 끌고 도착해서도 별 다른 생각은 없었다. 햇빛이 안 드는 방에 도착해서 첫 날밤 누워 천정을 보니 그때서야 실감이 났다. 아, 이젠 진짜 혼자구나.


나의 일상은 그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나의 의지대로만 흘러가고 있었다. 일주일에 4일은 어학 공부를 하러 다니고 나머지 길고 긴 주말은 여행을 위해 소비했다. 가고 싶은 장소가, 보고 싶은 건물이 너무 많았다. 이제야 진정 나를 위한 건축여행이 시작됐다는 생각에 외로운 것도, 보고 싶은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도 잊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집시 같은 삶의 유효 기간은 1년이었다. 어차피 군대보다 더 힘든 설계 사무실을 다니며 돈을 모을 수는 없었으니 모두 부모님의 돈이었다. 절박함 가운데 자유로움이 있었고 방탕함이 있었다.




Fundació Pilar i Joan Miró a Mallorca, Palma de Mallorca, España

Rafael Moneo / 1987~1993

©HK Shin


Ampliación del Museo del Prado, Madrid, España

Rafael Moneo / 2001~2007

©HK Shin

Banco de España(la última ampliación), Madrid, España

Rafael Moneo / 2006

©HK 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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