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베를린부부-chicken
마드리드(Madrid) 근교에 위치한 “알깔라 데 에나레스”(Alcala de Henares)라는 조그마한 도시는 1년에 두어 번 소박하게 열리는 행사를 제외하고는 조용한 곳이었다. 유럽식의 낭만 넘치고 임팩트 있는 생활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다. 사람들도, 도시의 건물들도, 심지어 나무들도 차분한 도시였다. 시의 가장 중심가에는 대학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에라스무스(Erasmus, 유럽의 교환학생 프로그램)를 통해 유럽의 이곳저곳에서 모인 젊은 청춘들, 나처럼 유랑하는 사람들, 혹은 그곳에서 자라 그곳에서 삶을 일궈가는 사람들이 조용한 배경 위로 이리저리 엉켜 살고 있었다.
Alcala de Henares로 오게 된 건 경제적 이유였다. 마드리드 중심가에 비해 물가도 쌀뿐더러 어학원 비용도 저렴했다. 그리고 대학에서 운영하는 어학원이라 왠지 더 믿음이 가기도 했다. 당시 미국발 경제 위기로 달러, 유로, 파운드 가릴 것 없이 환율은 요란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한국에서 돈을 부치는 것 자체가 낭비인데 그래서 조금 더 아껴야 했다. 처음 마드리드로 출발하며 가족들과 동의한 부분은 딱 1년이라는 시간이었다. 1년 동안 해볼 거 다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깔끔하게 들어오는 걸로 말이다. 나도 간단하게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내 마음속 저기 깊은 곳에서는 벌써 음흉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내 실력이면 어디서든 환영할 것이란, 착각이라도 부르기도 민망한, 초라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에게도 역시 별 다른 애정을 쏟지 않았다. 항상 이 장소는 잠시 머무는 곳이라고 생각했고 어차피 잠깐 마주친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인지 어학원에서 스쳐갔던 많은 사람들의 소식을 대부분 모른다. 얼굴은 어렴풋이 기억나지만, 이름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나 신기하게 어느 나라에서 왔던 사람이었는지는 기억난다.) 그때 마주친 몇 안 되는 한국 사람들은 주로 서반아어를 전공하는 학생들이었다. 교환학생으로 왔거나 어학연수를 온 사람들이었다. 머무는 기간이나 목적이 좀 더 명확한 사람들이 많았다.
길어봐야 어학원에서 4시간이면 하루 일과가 끝이 났다. 빈 집으로 돌아와 밥을 해 먹고 빈둥빈둥 같은 집에 사는 친구들이 퇴근하길 기다리거나 틈틈이 마드리드를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 다닐 때였다. 마드리드 시내에 가면 호기심이 요동치고 감성이 흘러내렸다. 되지도 않는 은유와 미끄덩거리는 표현들이 미니홈피에 가득했다. 일상에서 탈출했다는 해방감, 혹은 노동의 자유에서 벗어났다는 기쁨, 여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 여행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었을 법한 감정을 참으로 값비싸게 경험했다. 시간의 단위로도, 화폐의 단위로도 꽤 비싼 값을 치렀다.
그때 난 딱 여행자와 교민 사이였다. 나의 불안정한 현실을 외면하거나 부정하고 싶을 땐 언제나 돌아갈 곳이 있으며 시간에 쫓기지 않는 여행자였고, 한국에 두고 온 환경에 돌아가고 싶지 않으면 교민이자 실직자였다. 순간마다 오락가락하는 생각, 복잡한 머릿속만큼이나 감정도 오르락내리락했다. 지금 같았으면 아예 차라리 1달이나 2달 정도 시간을 정해놓고 그 시간만큼 좀 더 정확하게 나 자신을 정의 내렸을 것 같다. ‘나는 앞으로 1달 동안 여행자처럼 산다’, 혹은 ‘나는 앞으로 1주일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놀러만 다니겠다’처럼 말이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니 그냥 불안하고 쫓기는 듯한 상태로 일상을 두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늠할 수 있는 정도로 시간을 좀 촘촘하게 나눠 썼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그냥 ‘순간’들에 집중했어야 했는데. 아,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것도 스킬이구나 싶다.
Alcala de Henares에는 처음 스페인에 도착한 나 같은 이방인들이 많아서인지, 동네 구멍가게나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안 되는 영어로 친절함을 베푼다거나 가벼운 눈인사 정도는 이방인에게 따뜻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나는 이상하게 빠르게 외로움에 말라가고 있었다. 사람도 그리웠고 음식도 그리웠고, 내가 두고 온, 그렇게 떠나고 싶어 했던 일상도 그리웠다. 주변에 심리적 고립으로 급하게 한국으로 돌아가는 한국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나는 무식하게 참는 방식을 강제적으로 택했다. ‘내가 여길 어떻게 왔는데, 다시 그 일상에 빈손으로 어떻게 돌아가나’라는 생각에 무작정 술로 참았다. 비범한 포부를 가지고 요란 법석하게 떠났으니, ‘남들에게 보여줄’ 뭐라도 가지고 가야 한다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남의 눈 때문에 견뎌야 한다고 말이다. 쓸데없는 생각들은 갑자기 넘치게 많아져 버린 시간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도 모르게 나의 어딘가에서 자란 망상 때문이기도 했다.
Plaza Santos Niños, Alcalá de Hena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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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za de Canalejas, Mad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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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zog & de Meuron / 2001~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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