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베를린 부부-chicken
2018년에서 2019년으로 넘어가던 올해 00시 00분, 우리 부부는 집에 있었다. 23시 30분 즘부터 창문 밖에서 울리기 시작한 폭죽 소리로 이제 곧 새해가 되겠구나를 느끼며,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감상 중이던 영화에 집중했다. 23시 50분경, 폭죽 소리가 더욱더 가깝고 격렬하게 들리기 시작했고, 우리 부부는 베란다의 창을 열고 창 턱에 팔짱을 나란히 낀 채 하늘을 수놓는 폭죽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거리가 온통 뿌연 폭죽 냄새로 가득했지만 그래도 2019년을 맞이하는 그 설렘으로 폭죽으로 물든 하늘을 로맨틱하게 바라보았다.
새해가 되기 며칠, 몇 주 전부터 마트며 시내 곳곳이며 할 거 없이 여기저기서 폭죽을 팔았다. 폭죽이랑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가게들에서도 다양한 폭죽이 팔리기를 기다리는 모습은 한해의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인 새해맞이에 들뜬 사람들 마음 그대로였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모양에 따라, 화려함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인 폭죽을 우리 부부는 "하나도 사지 않았다." 바로 두려움이었다.
시내에는 간혹 새해맞이를 과격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언가에 취해, 무언가에 홀린 듯, '오늘은 괜찮아'라고 생각하는 듯 살짝 과감한 사람들이 있다. 어떤 장소나 사람을 지칭한다기보다 새해를 맞이하는 순간은 어떤 형태로든, 누구에게나 설레는 순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대로 나름의 순간을 특별하는 만드는 걸 뭐라 하겠는가. 다만 만삭에 가까워 가는 아내에게 변수가 생기는 게 싫었던 탓에 나는 집에서 보내자고 했다.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베를린에서 처음 맞이하는 새해였기에 새해맞이에 대한 이런저런 기대가 있었겠으나, 행여나 짓궂은 사람들을 만날까 하는 소심한 마음에 그녀를 달래고 달랬다.
창문에 기대 서서 목격한 동네 사람들의 폭죽놀이는 '귀여웠다.' 정말 우리의 마음만 한 마음으로 순간을 새기러 외투를 입고 나온 사람들. 아이들은 까르르까르르 웃기 바빴고 중간중간 스케일이 큰 폭죽을 소화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창문에 매달려 한참이나 하늘을 바라보던 임산부는 다행히 화들짝 놀라지 않고 새해맞이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날 느꼈다. 오지도 않은 상황에 대한,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두려움을.
지나고 나서 별일이 아닌 일은 너무나도 많다. 지레 겁에 질려 나가지 못했지만 재미만 있었다는 거리의 폭죽놀이도 그렇고, 2달의 육아휴직 후 복직하는 첫날의 복잡한 마음을 안은 출근길도 그랬고 아내와 아기만 한국에 가는 길고 긴 여정도 그랬으며 처음으로 아기와 함께하는 '극기훈련'과도 같았던 첫 여행도 그랬다. 모르기 때문에 설레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하지만 왠지 아기와 함께하자니 뭐가 어찌 될까 두려움 마음이 더 커진다. 사실 맨땅에 헤딩이야말로, 그리고 모르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야 말로 내가 베를린에 와서 살게 된 원동력인데도 말이다.
생소함, 혹은 두려움 때문에 반복되는 이런 일상들에 대한 '비겁함'은 아기가 생긴 이후로 더 당당해졌다. 가끔은 이게 아기를 핑계로 내가 하기 싫은 것인지, 정말 아기를 위한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런 순간들마다 왠지 뒤로 꼭꼭 숨겨놨던 나의 어딘가를 들키는 듯한 기분이다. 그래서 아주 서서히, 차근차근 이런 두려움을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 질문하게 된다. '과연 이 생소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런 낯섦, 생소함이 인간으로 하여금 교류하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에 수없이 떠도는 후기들이며 개인의 경험에 대한 공유들이 이런 배경을 타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쓰는 이 글도 마찬가지다. 베를린의 새해맞이가 요란하다는 게 아니라 그런 사람들도 있다는, 세상 어디에 가도 적용될 법한 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물론, 몇 년 전 내가 겪었던 충분히 '어글리'한 새해맞이도 있었다. 새벽 세시 정도 되었을까. 24시간 운영되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 술에 만취해 흑인을 향해 소리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당시 독일어를 전혀 못하던 나를 위해 같이 동행하던 일행이 통역을 해 줬다. '나는 나치(NAZI)도 싫지만 흑인은 더 싫어.'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사내를 말이다. 급기야 주변 몇 명의 사람들이 '이유 없이 욕먹는 그 사람'에게 혹시 모르니 자기들과 같이 내려서 다음 차를 같이 타자고 하고 나머지 몇 명이 그 소리 지르는 사람을 말리기에 이르렀다. 그 지하철에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을 놔두고 그에게는 그 '흑인'만 보였던 모양이다. 사실 이런 봉변에 가까운 느닷없는 상황은 정말 무작위로 일어난다. 내가 그 '흑인'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건 단순히 피부 색깔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그가 아시아 사람을 그렇게 싫어하는 사람이었다면 아마도 내가 그 상황의 중심에 있었을 것이다.
사실 이런 '어글리'한 상황은 세상 어디서나, 어떠한 시간에도 일어날 수 있다.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하면 한없이 부정적으로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하면 한 없이 긍정적으로 될 것이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 우리 일상에는 그 경계가 너무 애매하다. 한 없이 행복하던 순간들에 '어글리'한 상황이 생기는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두려움을 가져오는 생소함은 자신이 겪거나 아슬아슬하게 겪은 간접경험에 의한 생채기일 것이다. 이게 뭐 극복을 할 게 있기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존재가 미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래도 확실한 정복을 위해 금년 연말에는 좀 노력을 해볼까 한다. 그렇게 흐지부지 놓쳤던 작년 12월 31일과 다르게 금년에는, 심지어 아기도 함께 있으나, 나가볼 예정이다. 뭐 물론 변수가 아직도 많아 보이고, 심지어 거리까지 많이 이동해야 하는 시내로까지 가지는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