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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랑쥐 Jun 19. 2021

[아내의글]사랑은 야채 같은 것

더 괜찮은 어른이 되는 길

intro

더 괜찮은 어른이 되는 길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면서

'어른이 된다는 건 과연 뭘까' 하고 생각해본 적 있어?

아직도

성숙한 척, 겉만 어른인 척, 척척하는 어른 말구


내가 예전에 비해

부쩍 달라진 내 모습을 발견하거나

이런 모습이 진짜 어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 것들 말이야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성미정의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이란 시를 읽으면

새삼 엄마가 떠오른다.

시의 전문은 마지막에 소개하려 한다.


나는 엄마로부터 많은 '사랑'의 방식을 배웠다.

 

첫 번째로 엄마는 나에게 항상 다양한 사랑의 '표현'을 말로 해주셨다.

무뚝뚝한 딸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을 듣는 게 쉽지 않았지만 엄마는 내게 줄곧 사랑한다는 말을 어릴적부터 아끼지 않았다.

특히나 맞벌이로 어릴적 동생과 나를 두고 일을 하러 가는 엄마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날은 더더욱 전화를 자주 하셨다.

예전엔 핸드폰이 없고 돼지 꼬리가 달린 집 전화기로 받아야 해서 통화를 하노라면, 숙제나 게임, 친구들과 노는걸 동시에 하는 게 불가능했다. 그래서 난 항상 엄마가 묻는 말에 대답만 하고 빨리 끊으려 했다. 하지만 엄마는 늘 밥은 제때 잘 먹었는지, 오늘은 몇 시에 귀가했는지, 별일 없었는지를 순차적으로 물어보시고 마지막엔 전화기에 대고

“우리 딸 사랑해~”라는 말을 속삭이듯 하셨다.

그리고 공백의 시간이 몇 초 흐르고 엄마가 다시 운을 떼셨다.

“우리 딸은~?”라고 되물으면, 나는 그제서야 하염없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무미건조하게 “알라뷰” 하고 전화를 툭 끊는 게 엄마와 내가 대화로 하는 일종의 사랑 방식이었다.


두 번째로 엄마는 항상 나를 '쓰다듬어' 주셨다.

내 나이 서른일곱에도 아직 엄마 눈엔 부끄러운 표현이지만 애기 티가 줄줄 난다며 나의 얼굴을 매만진다.

내가 누워있을 땐 나의 손을 조몰락조몰락거리면서 손발이 찬 나를 걱정하며, 엄마의 따뜻한 두 손으로 마사지를 해주셨다.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로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다 보니 고향에 내려갔다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날에는

“우리 딸 손 잡아보자~” “우리 딸 안아보자~” 하며 항상 뜨거운 스킨십과 함께 사랑을 온몸으로 표현해주셨다. 그래서 알았다.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말로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아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구나 하고 말이다


세 번째로 엄마는 나를 ‘존중’해주셨다.

존중(respect)의 어원인 라틴어 레스피치오(respicio)는 ‘본다’라는 의미가 있다. 존중의 정의 속에는 상대방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존재임을 아는 능력이라고 한다.

엄마는 나의 있는 모습, 내가 생각하는 사고방식, 내가 도전하고자 하는 일에 항상 관심을 가지고 바라봐 주셨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내가 늘 중심을 잃지 않고 갈 수 있도록 응원과 믿음을 주셨다. 그래서 ‘용기’란걸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용기는 나의 모든 일에 뜨거운 시발점이 되었다.

 

에히리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서도 존중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존중이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이바지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라는 것', 즉 바라본다 라는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렇게 나의 성장 과정에서, 그리고 지금까지도 한결같이 엄마는 내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언제나 존중해주셨고 스스로의 가치를 사랑할 수 있도록 바라봐 주시고 계신다.


2021.6.19 우리집 토마토 그림 /오일파스텔 / 사진_ 집앞 정원




그러고 보면 엄마는 사랑이라는 표현 아래

보호와 존중, 책임을 몸소 실천하셨다.

그리고 내게 알려주셨다.


사랑이란 건 단순히 판단하여 내릴 수 있는 단편적인 사건도 아니고, 열렬하고 가슴에만 일렁이는 감정만 있는 것도 아니란 걸 말이다.


그래서 난 엄마에게 배운 사랑의 방법으로

나의 남편에게 보여주려한다.


그가 사랑하는 모든것이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이라고.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성미정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씨앗을 품고 공들여 보살피면

언젠가 싹이 돋는 사랑은 야채 같은 것



그래서 그녀는 그도 야채를 먹길 원했다

식탁 가득 야채를 차렸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오이만 먹었다



그래 사랑은 야채 중에서도 오이 같은 것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야채뿐이 식탁에 불만을 가졌다

그녀는 할 수 없이 고기를 올렸다



그래 사랑은 오이 같기도 고기 같기도 한 것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의 식탁엔 점점 많은 종류의 음식이 올라왔고

그는 그 모든 걸 맛있게 먹었다



결국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사랑은 그가 먹는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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