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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킷랩 Nov 27. 2018

경험-상상-불안-반복

불안의 미술관, 이연식

1.
안녕하세요, 버킷랩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이연식’님의 ‘불안의 미술관’입니다.


2.
이 책은 버킷랩에서 운영하는 독서모임 한주한권에서 마흔 다섯번째로 함께 읽는 책입니다. 이로써 총 13,104(+292)페이지째 함께 읽게 되었네요.

3.
여러분은 불안을 자주 느끼시나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5년전과 비교했을 때 불안장애로 인해 치료를 받는 대한민국 사람이 10만명 이상 증가했다고 합니다.

생물의 자연스러운 상태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를 나태함이라고 생각하며 계속해서 개인들에게 과업이 주어지는 사회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 것 같은데요.

이 책은 이런 불안이란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미술작품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그곳에 담긴 불안의 형태를 함께 엿보는 기회를 주는 책입니다. 한 권의 책에서 다양한 작가의 여러가지 작품을 살펴볼 수 있고, 막연히 보기만 했을 그림들을 주제를 가지고 읽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용도 어렵지 않고, 간결하여서 평소에 미술에 흥미를 갖고 계셨던 분들이라면 천천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4.
저자는 책의 머리에서 불안을 ‘경험과 상상’의 합작품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과거에 겪었던 한가지 사건이 단초가 되어 미래에 대해 지나친 비약으로 부정적 감정상태에 갇혀버리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많은 예술가들이 이런 불안을 일으키는 경험과 상상을 스스로 끝없이 반복하며 그 감정을 재료로 작품을 창조합니다. 저자가 같은 페이지에서 불안을 표현했던 ‘피학적인 즐거움’이라는 수사는 비단 예술가들 뿐만 아니라 불안에 중독된 많은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책에서는 [르네 마그리트], [에드워드 호퍼],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에드워드 스타이컨] 등 그림, 조각, 사진 등 많은 분야에서 불안을 소재로 삼았던 많은 작가와 작품들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번 리뷰에서는 [에드워드 뭉크]에 촛점을 맞춰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5.
뭉크하면 떠오르는 그림이 아마도 다들 있으실 것 같습니다. 바로 <절규>인데요. 이걸 뭉크가 그렸는지 모른다하더라도 불쾌하게 구부러진 배경색들과 공포스러운 몰골로 경악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어디서 한번쯤은 보셨을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뭉크라는 화가는 이 그림으로 이미지화 되어있기에 그를 기괴하고, 으스스한 화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러나 그의 다른 작품목록들을 조금만 살펴봐도 그가 표현하는 ‘공포’심이 ‘무서운 외부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속에서 나오는 ‘불안과 우울’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같은 주제로 반복해서 작업된 그림들은 그가 자신의 내면에서 사라지지 않는 불안과 우울을 몇번이나 곱씹으며 리플레이 했다고 볼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의 그림들을 보면서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볼까요?

5.
뭉크의 <멜랑콜리>라는 작품입니다. 침울한 표정으로 해변에 앉아있는 남자가 시선을 사로 잡습니다. 바다에 와서 탁 트인 바다에 시선을 두기는 커녕 턱을 괴고 땅을 보고 있네요. 무엇을 생각하는 것일까요? 제목인 멜랑콜리의 뜻인 ‘우울’처럼 단순히 우울한 것일까요? 그림 뒷편으로 멀리에는 각각 흰색옷과 검은색옷을 입은 사람들이 보입니다. 흰색옷 하의는 치마처럼 보이는데요. 어쩌면 연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함께 해변에 온 연인과 혼자 슬퍼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대조적입니다. 

6.
이번에는 <이별>이라는 작품입니다. 직접적인 작품명을 통해 나무에 기대어 손끝이 빨개질 정도로 왼쪽 가슴을 움켜쥔 남자가 뒤에 바람처럼 지나가는 여자와 이별한 연인이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겠네요. 두 사람은 방금 헤어진 것일까요? 아니면 흰색 원피스의 여자는 남자의 상상으로, 그저 예전 연인을 그리며 마음 아파 하고 있는것일까요?

그런데 흰색 원피스가 익숙합니다. 직전에 보았던 그의 그림 <멜랑콜리>에서 행복해보였던 그 커플의 여자분도 이런 옷을 입고있었죠. 어쩌면 <멜랑콜리>에서 멀리보였던 그 연인은 뭉크 자신과 그 옛연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적으로는 말이 안되지만 작가의 세계에서 함께하던 시절과 혼자인 시절을 함께 표현하고 싶었을 수도 있었을테니까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뒤 다시 <멜랑콜리>를 보면, 첫번째로 봤을 때는 남자의 우울함에 대비되는 행복한 분위기로 읽혔던 두 사람의 거리가 어쩐지 먼 것 같기도 합니다. 이미 이별한 사이라고 생각하니, 저때도 사이가 안좋았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7.
추측만 가능했던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그림 <해변의 두 사람> 입니다. 연인이 서로에게 푹 빠져있을 때라면 두 사람은 조금 더 가깝거나,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것 같은데 두 사람은 어딘가 각자로써 해변에 존재하는 듯 합니다. 함께 있지만 함께있는 것 같은 따듯함은 없으면서, 그렇다고 완전히 혼자있을 때처럼의 편안함도 없는 의아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림의 다른 제목이 <외로운 두 사람>이라는 걸 알고나면 둘의 공허함이 조금 더 느껴지기도 합니다. 언젠가는 서로를 뜨겁게 사랑했겠지만, 이제는 함께 있어도 외로운 사람들이 되어버린 연인에게 남은 일은 이별 뿐일 것입니다.

8.
뭉크는 ‘이별’이라는 한 가지 장면을 3개의 시선으로 화폭에 담았습니다.

옛연인을 생각하며 우울감이 시작될 때의 <멜랑콜리>, 그리고 그 암울한 감정이 더 심해지며 이별의 아픔이 다시 재생되는 <이별>, 마지막으로 행복했지만 종국에는 서로를 외롭게 했던 자신과 자신의 연인을 그려놓은 <해변의 두 사람>.

뭉크가 이별이라는 경험을 얼마나 곱씹으며 머릿속에서 반복재생했을지, 또 그로 인해 우울하고 불안해하다가 그 감정을 재료삼아 창작을 하고, 다시 또 그 피학의 사이클을 반복했을지를 상상해보면 단순히 기괴한 화풍을 가진 화가로만 알았던 뭉크가 불안이라는 감정을 매개로 저와 가까워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9.
이번 리뷰에서는 불안의 ‘반복’적 특성과 ‘피학적’ 특성에 촛점을 맞춰서 에드워드 뭉크에 대해서만 소개할 수 있었지만, 책에서는 이 리뷰보다 더 알찬 내용으로 일상의 불안과 그것을 옮겨 재생하고 있는 그림들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으니 조금 더 추워지기 전에 이 책을 한번 보시고 가까운 미술관에 그림을 다녀와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은 공감을 일으키듯이, 평화보다는 불안을 표현한 예술들에 조금 더 애착을 가진 것이 느껴졌던 저자의 책, 불안의 미술관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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