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검사이다 Sep 09. 2023

피해자가 검사인 내게 보낸 수상한 소포?!

뇌물인가 아닌가

수세미 뇌물을 받다

어느 날 내 앞으로 소포가 왔다. 수신자는 처음 들어보는 여성의 이름이 쓰여있었다.

“검사님, 물건인 것 같아서 직접 확인해 보시라고 가져왔어요”

우편 담당 직원이 말했다.

“어? 제 앞으로 올 것이 없는데요”   


나는 약간의 긴장과 함께 소포를 뜯었다.

검찰청으로 오는 모든 등기는 검열을 받는다. 검사들에 대한 테러나 사건 관계인들의 돈봉투 같은 뇌물 등에 미리 검사하고 대비하는 것이다.


툭툭.

소리와 함께 무언가 툭하고 떨어졌다.

수세미였다.

“어? 웬 수세미?”     

어느새 내 곁에는 기웃거리며 궁금해하는 다른 직원이 외쳤다.


수세미와 함께 꽃무늬의 예쁜 카드도 동봉되어 있었다.


카드에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직접 만든 꽃수세미니 꽃길만 걸으시라는 내용이 쓰여있었다.

얼마 전 처분한 사건의 피해자였다.     

그녀는 회사에서 괴롭힘을 당해 고소를 했는데, 내부고발로 오히려 불이익을 받던 중, 피의자가 처벌받음으로써 처우가 개선되었다.



방금까지 부장님의 잔소리와, ‘나는 억울하다’며 검찰청이 떠나가라 소리 지르는 피의자 아주머니의 목소리로 골이 지끈지끈 아프던 차, 답답한 곳에서 나와 옥상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은 것처럼 숨이 탁! 쉬어졌다.     


‘그래,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노력하고 있구나.’

순간 이런 생각이 들며 너무나도 감사했다.


부장님은 우리가 ‘수세미’를 받아도 되는지 검토를 해보자고 하셨고, 과 직원들이 검토를 거쳐 ‘받아서는 안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쉽게도 수세미는 피해자에게 ‘마음만 받겠다’는 쪽지와 함께 반환되었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사건과 관련해서는 음료수 하나도 받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카드라도 돌려달라고 해서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검사 게시판에도 '00 지검 **검사가 수세미와 편지를 받았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가 10년간 함께 근무했던 전국 청에 흩어진 직원분들의 응원과 안부 메시지도 받을 수 있었다.

 



‘김영란법’ 1호 사건의 추억


춘천에 근무할 당시 운 좋게 선배 판사가 김영란법 관련 1호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다. 시행 첫날인 2016. 9. 28, 50대 여성인 이 모 씨는 자신이 고소한 사건 경찰관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떡 한 상자를 전달했다. 떡값은 45,000원.


경찰관은 떡을 돌려보낸 후 자진 신고했고, 재판에 넘겨진 이 모 씨는 떡값의 두 배인 9만 원의 과태료를 받았다. 당사자는 시행 첫날이라 제대로 법을 알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억울해했으나, ‘공직자등은 직무와 관련해서는 선물을 비롯한 일체의 금품 등을 받을 수 없다’는 규정을 정면으로 위반한 행위였다.


과거에는 민원인들이 검찰이나 경찰에 고맙다고 보낸 소소한 음식이나 음료를 ‘거절하기 뭐해서’ 받는 관례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국민권익위가 운영하는 ‘청렴 콜센터’에 무언가를 받기만 하면 반드시 신고를 해야 한다.


“왜 이런 것을 줘서 사람을 귀찮게 하냐”며 툴툴대며 고소인에게 받은 음료수에 대한 신고서를 작성하던 경찰관의 모습이 떠오른다. 양쪽 다 이해는 간다. 음료수 하나도 못 건네게 된 현실이 솔직히 좀 씁쓸하다 못해 슬프기까지 하다.




사람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을 때 행복을 느낀다. 특히 '직업'은 일을 하고 대가를 받기에 일을 하며 행복이나 보람을 느끼기가 참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감사함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래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 부디 수세미를 돌려받아 성의를 무시당했다고 생각하지 않으시길, 그 예쁜 마음만큼 이런 일에 다시는 휘말리지 않길 바란다. 나 또한 표현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참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고, 고마웠던 분을 위해 선물을 샀다.

이전 18화 그냥 알겠다고 하면 다 해결되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