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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사이다 Dec 04. 2023

건강한 몸에 그렇지 못한 정신

타고난 그릇보다 중요한 건 뭘까

오늘은 또 어떤 손님이 오셨나.

오늘은 술만 마시면 112 신고하는 58년생 아저씨가 왔다.

58년생이면 우리 부모님 세대인데도 요새는 할아버지라고 부르기도 뭐 하다.


오자마자 역시나 계장님과 한바탕을 한다.

"왜!! 그동안 진술거부하신 거예요?!!" 계장님이 물었다.

"아니, 거부해도 된다니까 했죠!!."

"진술거부권 고지한다고 해서 경찰이 진술 거부하라고 한건 아니죠!!!"

"왜요? 제가 거부하겠다는데 왜 머라 하세요? 진짜 이러실 거예요? 저 진술거부하겠습니다!!."

보통은 호랑이 같은 계장님에게 꼬리를 내리기 마련인데 장님도 혀를 찬다.

자기보다 훨씬 건강한 것 같다면서.

피 튀기는 맞대결에 생겨난 소음들이 온 사방에 울려 퍼진다.


결국 계장님이 전략을 바꿔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다시 질문을 하신다.

"자, 그러지 말고 차분하게 말을 해보세요"

"... 저는 일을 안 할 때는 죽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자꾸 112에 신고해서 "저 자살할 건데 어떡하실 거예요"라며

신고를 한다고 했다.

그러면 경찰관 입장에선 출동을 안 할 수 없기에 매번 허탕을 치게 되는 것이다.


얼마나 큰 국가 인력과 세금 낭비인가!

우리나라는 통상 이런 죄들을 경범죄로 처벌했었다.

경범죄 처벌법 3조 3항
- 대상: 있지 아니한 범죄나 재해사실을 공무원에게 거짓 신고한 사람
- 60만 원 이하의 벌금 등에 처한다.


경범죄는 오직 벌금형만 있고 그 금액도 소액이다.

그래서, 이 아저씨가 1년 동안 200건이 넘는 신고를 하는 동안 검찰에서 공무집행방해죄로 기소를 했어도 법원에서 계속 경범죄로 바꿔서 벌금형만 내리다 보니, 습관처럼 반복해서 112 신고를 하는 것이었다.

통화료가 꽤 비싼 상담전화인 줄 아시나.


이번에는 달랐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112에 허위신고를 한 죄로 처음 위계(거짓으로)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하기로 했다.

공무집행방해죄는 통상 '실형'을 살게 되는 중대한 범죄이다.

그도 그럴 것이 경찰관에 대한 폭행이나 허위신고는 일반 사람으로는 생각지도 못할 범죄일뿐더러, 방해받은 시간만큼 그때 일어날 수도 있는 다급한 사건을 처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구속된 이 상황에 분개하다가도 갑자기 정신이 드는지 공손해져서 잘못했다고 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신기한 건 에너지가 우리 방에 있는 누구보다 넘쳐난다는 거였다.


그가 내 앞으로 왔다. 나는 호기심에 물었다.

"엄청 건강하시네요"

"네, 살면서 아파본 적이 없음다!"

"그 에너지를 술 끊는데 쓰시면 좋을 텐데."

"네, 제가 술 마시면 자꾸 이런 일을 벌임다.!"

"죽고 싶다고 112 신고 계속한 거 보니 사실은 살고 싶으신 거죠?

"... 네 사실은 살고 싶습니다."

라고 눈시울을 붉힌다.

참 건강하게 태어났는데 안타깝다. 저렇게 하고 싶은 말 다하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니 스트레스가 없는 걸까?


"어떻게 살고 싶으세요?"내가 물었다.

"일단 저 처벌해 주십시오. 달게 받겠습니다. 그리고 저 누구보다 일을 잘합니다. 나가서 일 열심히 하렵니다."

들어보니 용접일을 한다고 했다. 30년간 한 일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주변 주민들이 인터뷰에서 "술만 안 마시면 참 성실하고 좋은 사람인데... 그놈의 술이 원수지"라고 할법한 사람. 그렇지도 않으려나.


그렇다고 그 죄가 덮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술을 마시는 것도 본인의 선택이니까.

술을 끊겠다고 나와 다짐 또 다짐했다.

70 평생 내 인생한테 미안하다고.

몸이 자주 아픈 나는 그의 건강함이 부러웠다.

물론 누가 바꾸겠냐고 하면 절대 거절할 거지만.

타고나길 좋은 그릇으로 태어나더라도 내가 어떻게 쓰고, 닦는지가 더 중요하다.

부디 남은 여생은 의미 있게 사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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