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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검사이다 Nov 23. 2020

죄송한데 헤어지세요


사랑은 미친 짓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른 온갖 폭력들을 보라.

고인이 된 연예인 구모 씨의 사건을 보며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검찰청에 올라오는 많은 사건들 또한 ‘사랑’이란 감정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남자들이 여성들을 즐겁게 해주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남자를 호스트라고 한다.

호스트들은 종종 고객과 사적으로 만나기도 하는데 고객이 호스트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면 전 재산을 바치기도 한다. 종국에는 자신이 철저히 이용당했음을 깨닫고 사기꾼이라며 그를 고소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중세 남성의 날씬함의 비결은 스타킹이었다고 한다.

 


조사 첫날 '우리 가게 에이스’라고 나에게 자신을 소개한 호스트 역시 그가 홀린 여성만 5명, 피해액만 8억 원 이상이었다.

그는 첫 대면에서 밤의 제왕 같은 눈빛으로 여검사인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저 같은 놈 때문에 고생시켜 드려 죄송합니다(웃음).”가 그의 첫인사였다.


보통은 멀찍이 떨어져서 불안해하는 눈빛을 숨기려고 고개를 숙이고 있기 마련인데 그는 팔꿈치를 당당히 탁자 위에 올린 채 자신의 입김이 내 얼굴에 닿는 거리까지 다가와 속삭이듯 말한다. 뭐 이런 놈이 있나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났다. 자신감에 차있는 그를 조금 추켜 세워주니 모든 죄를 인정하는 것도 모른 채 에이스인 자신의 ‘비법’을 털어놓았다. 백종원의 설탕처럼 그의 비법도 매우 간단했다.  

   

“검사님 제가 얼굴이 잘생기기를 해요, 몸이 좋기를 해요? 아무것도 아닌 제가 정글에서 살아남은 비법은 바로 여자들 자신의 애정결핍입니다.”


애정결핍? 호스트의 입에서 심리학적 용어가 튀어나오다니. 유머나 칭찬 같은 거겠지라고 생각한 나는 솔직히 조금 놀랐다. 자신이 모든 여자를 그렇게 사랑의 포로(?)로 만들 정도로 대단한 분이진 않단다. 그는 심지어 자신을 변호했던 여자와 사귀기도 했단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만나본 피해자들의 개인 사정은 모두 불우했다. 남편이 상습적으로 바람을 피우고 다니거나, 어릴 적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하는 등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한 경우가 다수였다.


그런 그녀들은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해주고, 자신을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느끼게 해 준 ‘에이스’에게 자신의 목줄을 내어주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돌변하여 자신을 소홀히 대하고 다른 여자들 만나자 어느새 집착이 시작되고 그가 원하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녔다는 것이다.      


누구나 애정결핍이 있다. 우리의 부모님도 부모가 처음이었기에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양육환경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애정결핍을 가진 사람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결핍을 타인으로부터 채우려고 할 때 비극이 시작된다.

어쩌면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한 사랑은 상대로부터 사랑받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사랑에 빠진 나르키소스처럼.  


수면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당시 나 역시도 불안한 연애를 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상황에 공감이 갔다. 공부와 달리 사랑은 노력하면 할수록 나에게 서 멀어져 가는 느낌이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여대생 시절 선배들이 그 사람과 사귈지 말지 모르겠으면 키스해보는 상상을 해보라는 농담을 했었다. 사랑이 성적 욕망이라면 그럴듯한 기준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사랑이란 이름으로 상처 입고 행복해본 우리는 어렴풋이 안다.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미성년인 중학생에게 모델을 시켜주겠다고 꾀어내 수년간 성관계한 피의자 김 씨, 헤어짐을 통보하는 여자 친구를 억지로 강간하고, 불을 질러 가족까지 살해한 피의자 이 씨, 전 여자 친구의 성관계 동영상을 풀겠다고 협박한 피의자 윤 씨, 그들은 끝까지 억울하다며 울부짖었다.


나는 그들 모두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피의자는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사랑해서 화가 나 그랬습니다."

"정말로 사랑했다면 피해자들이 상처입있을까요?"

"......"


피의자들 모두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들이라도 한 번쯤은 사랑받는다는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머니라는 존재를 통해.

혹은 가족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선의로 살아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상처 입히는 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사랑을 빙자한 이기심이 아닐까?


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이런저런 사건들을 다루며 나에게 사랑은 ‘그 사람이 상처를 입었을 때 내 마음도 똑같이 아픈가’가 되었다. 어떤 이들은 이를 연민이라고 부른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 가장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가 나를 정말로 사랑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소위 ‘쓰레기’를 구별하는 방법은 없냐고 묻기도 한다. 당연히 방법은 있다. 똥차(?)를 경험해보면 된다. 기회가 없다면 어떡하느냐고? 내가 먼저 나 자신을 사랑하면 된다. 뻔하지만 어렵다.

내가 나를 사랑한다면 우리는 우리를 아프게 하는 사람에게 매달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즐겨보던 유명한 연애 유튜버의 답은 항상 똑같다. ‘제발 헤어지세요.’     


너와 같이 있어도 나는 네가 그립다(면 헤어지세요)


그루밍(정신적으로 길들여 성폭력을 반복하는 것)을 당하는 성범죄 피해자들이나 가정폭력을 당함에도 견디는 피해자들 대부분은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요, 나는 버림받을 거예요.’ 라거나, ‘신은 나를 버렸어,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해요.’라는 뿌리 깊은 피해의식에 잠겨있다.


당신도 그들도 나도 알고 있다. 그 믿음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자꾸만 그 믿음뒤로 숨는다.


일을 하다 날 위해 물 한 모금 마시는 것, 주말에 내가 좋아하는 한강에 가서 좋은 공기를 마시는 것, 누군가 나를 위해 문을 잡아주는 것, 커피 매장 직원이 웃으면서 커피를 건네는 것.


매일매일 우리는 사랑하고 또 사랑받고 있다. 지금까지 크고 작은 파도에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잘 견뎌왔을 바다 위 작은 돛단배 같은 당신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자.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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