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검사이다 Nov 24. 2023

봄을 이긴 겨울은 없다

나에게는 존경하는 부장님이 있다. 사실 존경할 수 있는 상사를 만나는 건 정말 운이 좋아야 한다. 

회사에서 힘든 이유는 일이 아닌 사람인 경우가 많고, 대부분의 상사는 나를 괴롭게 한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부하에게 상사란 어렵고 힘든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들의 말에 '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부장님은 핫하디 핫한 정치 사건을 주로 하셨다.

회사에서는 가장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앞다투어 아빠 곁을 차지하려 할 정도로 일도 가정도 균형을 이루시는 분이다.


그런 부장님이 보고를 하러 온 나에게, 넌지시 자기의 이야기를 꺼내 놓으셨다.

"나는 한 번도 나의 정치적 성향을 내비친 적 없어. 그리고 평생 검사하면서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이 정치사건이었지. 그런데 어떤 정부는 내가 고향이 그쪽이란 이유로 친정부라고 하고, 어떤 정부는 내가 그분을 모신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친정부라고 하네. 그렇게 파도에 휩쓸리듯 정치사건을 하게 되었어."


그랬구나. 나는 부장님의 정치적 성향과 그의 행보가 지금의 자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부장님은 남들처럼 부모님 도움 없이 힘들게 사셨다고 한다. 그러나 부모를 원망하거나 내가 가난한 집에 태어났다는 것을 원망한 적은 없단다. 그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라고.

늘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했고,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왔다고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가장 원하고 잘하고 싶은 역할은 '아빠'였다고 고백하셨다.


"그런데, 원치 않았음에도 정치사건이란 파도에 휘말렸고, 그러면서 모든 것을 좌파와 우파로 나눠 생각하게 되더라. 그럼에도 나는 내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려 노력했고 지금도 자부해. 하지만 좌우로 나뉜 세상의 절반이 나를 향해 욕하고 비난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저 이런 큰 사건을 하는 사람은 얼마나 빛날까? 사람들의 인정 속에서 얼마나 행복할까, 멋있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부장님이 부장님으로 보이지 않고, 그저 가족들과 세상을 잘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세상에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표현하기 위해 몸을 내던진 아름다운 존재로 보였다.


부장님이 아니 미래의 내가 말했다.

"김검사야, 나도 사직하고 싶었던 순간들이 정말 많았어. 가정을 지키는 아빠이고 싶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고도 싶었거든. 물론 그만둔다고 해서 말리지는 않을 거야. 그렇지만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길을 가다 보면 너에게 엄청난 것이 온다는 것은 내가 자신 있게 알려줄 수 있어."

"부장님, 후회하지 않으십니까?"

"응, 난 후회 안 해. 지금의 강해진 내가 참 좋거든" 


나도 10년이 지나니 그 말이 들린다.

깊은 밤 수없이 뜬눈으로 지새운 날들과 눈물들이 별처럼 스쳐 지나간다.

봄을 이긴 겨울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