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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송이 Mar 19. 2018

애도(哀悼)하는 사회

작가 지망생의 습작(習作) #7

※ 2018년 2월 14일 작성한 글입니다. 

※ 커버 사진은 http://www.civic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807에서 가져왔습니다.




 첫 애도(哀悼)의 기억은 2009년의 겨울이다. 

 한창 수험공부에 열을 올리던 시기라, 늦은 시간까지 독서실을 지키기 일쑤였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집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울렸다. 외할아버지의 부고(訃告)였다. 어떻게 집까지 갔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겨우 교복만 갈아입은 뒤 가족과 함께 의성으로 향했다. 차는 묘한 정적 속에서 두 시간 남짓 달렸다.


 장례식장에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척이 가득했다. 마치 어느 명절의 모습과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붉어진 눈시울과 굳은 입매는 명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할아버지의 영정 사진 앞에는 막내 삼촌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서울에서 지내는 삼촌의 모습은 정말 오랜만이었지만, 고개를 푹 숙인 모습에 쉬이 다가가지 못했다. 


 삼촌은 짓눌린 발음으로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다. 투정인지, 한탄인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끝내 들려오는 소리는, 처음으로 접한 어른의 울음이었다. 심장을 긁으며 치고 올라와서는 손 쓸 새도 없이 터져 나오는 울음이었다. 처음 보는 삼촌의 모습이었다. 저러다 삼촌이 잘못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심장이 쿵쿵 울렸다. 그 울음이 여전히 귀에 어른거린다.


 가족 간의 사별(死別), 평생을 함께 한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했다. 삼촌은 그렇게 하룻밤을 내내 울음으로 지새웠다. 다음 날 아침에는, 두 눈이 퉁퉁 붓긴 했지만 그래도 멀쩡한 모습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삼촌이 밤새 토해낸 울음은 할아버지를 보내드리기 위한 애도(哀悼)였다.      


 애도(哀悼)는 산 자들이 아픔을 딛고 일어서기 위한 과정이다. 이별의 아픔을 토해내고, 상처를 치유하고, 상실의 공허함을 채우는 일이다. 떠나간 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은 사람이 다시금 살아가기 위해서 애도는 필요하다.       




 애도의 자유는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현실은 슬픔에 빠진 이들을 재촉한다. 


 “산 사람은 살아가야지!” 


 이런 재촉은 실로 사별의 슬픔마저 마비시킬 정도로 지독하다. 하지만, 마비된 슬픔은 아주 사소한 계기로도 폭발할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다. 해소하지 못하고 쌓이는 슬픔의 찌꺼기는 방류되는 댐처럼 수많은 고통을 토해내며 일상을 망가뜨릴 것이다. 이런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충분한 애도의 과정을 받아들이는 사회적 정서가 형성되어야 한다.     


 애도가 부재(不在)한 사회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우리는 멀지 않은 과거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2014년 4월 16일, 긴급 보도된 기사를 읽고 한동안 충격에 빠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와중에 세월호는 차가운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다.


 가족과의 사별을 겪고도 그 죽음에 대해 어떤 설명도 듣지 못한 세월호 유가족에게는 누구보다 더 슬퍼하고 요구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애도가 부재(不在)한 사회는 그들을 손가락질했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다.”, “언제까지 우려먹을 것이냐!” 공감이 결여된 이런 말은 애도의 자유마저 빼앗았다.     




 세월호 참사가 곧 4주기를 맞이한다. 

 안산 합동 분향소에는 매주 추모객들의 발길이 향한다. 전 국민이 보내는 추모 문자가 전광판에 가득하다. 사랑하는 가족을 먼저 떠나보낸 남아있는 자를 보살피려는 노력이 끊임없다.


 그러나 정작 사과해야 할 사람은 사과하지 않았다. 유가족에게는 숨겨진 죽음의 진실을 마주할 권리가 있다. 설명되지 못한 죽음은 어떤 보살핌도 치유하지 못한다. 충분한 설명이 없다면, 원하는 만큼 슬퍼할 애도의 자유도 없다.     


 애도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가 올바르게 기능하는 데 필요하다.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지 않고 어영부영 덮어 버린다면 개인에게 그렇듯이 고름과 악취가 사회 또한 병들게 할 것이다.


 애도의 사회가 되려면 국가적인 비극을 충분히 슬퍼할 치유의 시기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남의 일이 아니다. 내가 속해있는 이 사회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이 참사를 함께 이겨내야 한다.  


 애도의 정서가 만연한 사회를 위해, 마땅히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안산 합동 분향소에 문자를 남긴다.     


‘REMEMBER, DON'T FORGET.’ (잊지 말자, 그리고 기억하자.)




# 안산 합동 분향소에 보내는 추모 문자는 이동통신 3사에서 무료로 지원합니다. '#1111'을 수신인으로 설정하고 문자를 보낼 수 있습니다.

# 최근 추모 문자가 급격히 줄었다고 합니다. 잊지 말고, 모두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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