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번 겨울은 가고

#7 2019년 3월 3일 일요일

by 버들


이제 겨울이 다 갔네요.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을 열었는데, 볼에 와 닿는 바람이 포근한 걸 보니 말입니다.

사실 조금 아쉽습니다. 저는 여름보단 겨울이 좋은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겨울을 배웅하며 겨울이 남기고 간 기억에 대해서 기록해보려 합니다.



'겨울'하면, 추워요.

매번 칼바람을 막기는커녕 뼛속 깊이 인사시켜 줄 것만 같은 얄팍한 겉 옷만 대충 입고 다니던 그 사람에게 물었어요.

"안 추워요?"

그 사람은 태연하게 말합니다.

"춥죠, 겨울이니까요."


저런 말이 어딨나 싶어 어처구니없이 바라보는데, 생각해볼수록 맞는 말이지 않겠어요?

왜 그렇게 춥다고 춥다고 겨울을 피해 다녔는지... 추운 그 자체로 겨울인데요.

아마 그때부터 겨울이 좋아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겨울은 추워요.

그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차가운 온도가 손 끝에 닿아 따뜻하게 녹아내리는 순간이 있어요.

제가 먼저 몇 가지 말해볼게요.



집에 클로바가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물어봅니다.

"클로바... 오늘 날씨 어때?"

똑똑한 그녀는 오늘의 최고기온과 최저기온, 강수확률, 그리고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농도까지 야무지게 알려줍니다. 그런데 겨울에는, 클로바에게 묻기 전에 하는 일이 있어요.


내복 아시죠? 유O클O라는 브랜드에서 내복으로 만들어낸 H제품이 대명사처럼 사용되긴 하지만, 삼일절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으니 그 나라 브랜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을게요.

어찌 됐든 내복을 제일 먼저 입습니다. 그리고 클로바가 알려주는 날씨에 따라 그 위에 목티를 입고, 니트를 입어요. 가끔 카디건을 니트 안에 받쳐 입기도 합니다. 하의도 내복 위에 기모 레깅스, 그 위에 종종 스타킹 하나 더.

한 친구는 제가 옷 입는 모습을 보더니 어디 굴러갈 거냐고 물어봅니다.

처음에는 추운 겨울을 바꿀 순 없으니 내가 잘하자 싶어서 껴입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점점 귀찮거나 답답하지 않아요. 뭔가 내 몸은 내가 지킨다, 그런 기분이 들어요.

나를 내가 굉장히 사랑하고 아껴서 감기 걸리지 말라고 두둑하게 입혀주는 그런.

어릴 적 유치원에 가기 전에, 내복 바지 밑단을 양말에 야무지게 밀어 넣고 밑위를 배 위로 한껏 끌어올려 입혀주며 엉덩이를 다독이는 엄마 손길 비슷한 그런.

덕분에 올 겨울에는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건강하게 잘 보냈습니다.



다음은, 따뜻한 커피가 훨씬 맛있다는 점?

저는 사실 차가운 커피를 좋아합니다. 따뜻한 커피를 모금모금 마시면 괜히 갈증이 나서요.

그렇지만 제 몸은 차가운 걸 잘 못 받아들입니다. 배가 차가운 편이라, 탈이 잘 나거든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미지근하게 마시고 먹으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역시, 여름에 미지근한 커피는 고역이에요. 이미 커피 없이는 못 사는 몸인데 말입니다.

그런 이유로 따뜻한 커피를 맛있게 마실 수 있는 겨울이 좋습니다.

주말에 느지막이 일어나, 잠을 깨우는 원두커피를 한 잔 타고 창문을 살짝 열어 찬바람을 맞이하며 홀짝 거리는 거 좋아해요. 가끔 쨍한 바람에 코 끝도 손 끝도 모두 얼어버리긴 하지만 괜찮아요.

따뜻한 커피가 있거든요.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요.

한 겨울에 창문 살짝 열어둔 채로 전기장판이 데워놓은 침대에 파묻혀 온도차를 즐기는 것.

날씨를 핑계로 약속 없는 주말에 하루 종일 넷플릭스와 노는 것.

덕분에 몸이 조금 둔해져도 겨울에는 원래 살찌는 거야,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것. (아니, 외면하는 건가?)

겨울 하면 빠질 수 없는 연말 분위기 물씬 나는 반짝반짝한 거리도 좋아요.

칼바람이 몰아치는 늦은 새벽에 바람 소리와 뒤섞인 포근한 노래를 들으며 일기를 쓰는 것도 행복해요.

이래저래 겨울 좋네요.



겨울이니까 추운 게 당연하다던 그 사람은 올 겨울은 따뜻한 나라에 가서 지냈다고 해요.

크게 감기를 앓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입니다.



저의 겨울 배웅은 여기까지입니다.

저는 이랬는데,

당신의 겨울이 어땠는지도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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