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내가 봐 온 하늘의 수가 얼마나 될까. 28년을 살면서 하늘을 바라본 게 천 번은 될까. 어릴 적 읽었던 로맨스 소설의 제목이 '천 개의 하늘, 천 개의 사랑'이었다. 고작 17살 언저리였던 나는 천 가지나 되는 하늘과 그 아래 펼쳐지는 다양한 사랑 이야기라니, 하며 무척이나 감명 깊었다.
매일의 하늘이 다르니 그 수를 셀 수 없다는 걸 작가도 알았을 테지만, 내가 28년을 살면서 하늘을 천 번을 보지 못했던 것처럼 그 소설의 제목 또한 셀 수 없이 많은 다양한 경우를 의미하기 위해 '천 개'라는 구체적인 수를 넣은 것이지 않을까 짐작한다. 백 개는 너무 적고, 만 개는 어감이 영 그렇다. 그리하여 천 개가 되었고, 꼭 그만큼 셀 수 없이 다양한 사랑의 이야기가 옴니버스로 펼쳐진다.
인상 깊었던 몇 가지 에피소드 중 한 가지는 이렇다. 침대 위에서 사랑을 나누던 연인의 대화가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이별한다. 침대에서 나눈 대화에서는 이별을 짐작할 수 없었다. 아침에 먹은 단골 샌드위치 가게의 샐러드가 오늘은 별로 신선하지 못했다는 일상 대화를 나누던 다정한 모습에서 서로 등 돌리고 걸어가며 울음을 참는 것이 마지막 장면이다. 그들이 헤어지는 이유조차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 날의 하늘은 푸르스름한 새벽의 기운을 안았지만, 끝머리에는 주황빛의 기울어가는 해를 담았다. 그런 하늘 아래, 오래 만나던 연인이 이별을 맞이했다. 그 누구도 그들이 왜 헤어졌는지, 어떤 서사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저 그런 가깝고도 다정한 대화를 나누는 연인이 헤어졌다는 사실이 그 에피소드의 전부였다. 수많은 에피소드 중에 왜 유독 그 이야기가 남는지 모를 일이다. 두 사람이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어요, 혹은 헤어지고 힘들었지만 새로운 사랑을 찾았어요, 하는 결말이 아니라 사랑하던 연인이 여전히 아픈 상태로 헤어진 것으로 끝났기 때문일까. 내가 기억하는 사랑 하지만 헤어져야만 하는 연애의 첫 장면이기 때문일까.
사랑에 참 다양한 모습이 있더라. 어떤 사랑은 여전히 서로 뜨겁거나 적어도 따뜻하고, 어떤 사랑은 하나가 식어가거나 차갑다. 제삼자는 누구가 잘못했다, 헤어져야 마땅하다 판단하지만 사랑하거나 사랑했던 두 사람 사이에는 일반적인 잣대가 통하지 않는다. 친구의 연애에 훈수를 두다가 내가 그 상황이 되었을 때에는 훈수와 전혀 반대로 행동한다던가, 친구가 그러려고 하면 뜯어말리지만 내 연인만은 바보같이 맹목적으로 굴어주길 원한다던가, 그런 것들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사랑이라는 단어로 묶이는 두 사람의 모습이 어떻던지 간에, 누구도 쉽게 간섭할 수 없다.
이별했다고 해서 사랑이었던 게 사랑이 아니게 될까. 지났어도 그 순간의 진심이 없었던 일이 되진 않을 텐데. 이별 후에 힘든 건 그 순간의 진심을 잊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과거에 따뜻했던 그 진심을 잊지 못해서. 진심도 변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다들 그토록 괴로워하고 있을지도.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을 막연히 알지만 시간이 흘러가길 견디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세상의 모든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이건의 말처럼, 부디 내가 천 개의 다양한 사랑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