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부모님은 강남에서 수건 가게를 운영하신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해오던 일이었다. 자연스레 나 또한 가게에 대한 관심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제 걷고 이제 말하기 시작한 아이를 혼자 집에 둘 수 없는 사정 의해 나는 가게에서 일과를 보냈다. 눈에 띄는 건 포장용 박스들과 누군가를 축하하거나 창립기념을 위한 수건들. 그 사이에서 나는 컸다. 학교에서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어보면 다른 친구들은 소방관, 의사, 선생님을 외칠 때 난 송월타월!(부모님이 대리점으로 운영하시는 수건, 우산 브랜드)을 외쳤다. 선생님은 의아해했다. 당최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셨다. 학부모 면담 때 선생님은 우리 엄마에게 여쭤보셨다. “문수가 장래희망으로 송월타월이라고 하던데..” 엄마는 말했다. “아 저희가 그 브랜드 대리점을 운영해요.” 이렇게 내 장래희망이 해명되었다. 그 당시엔 당연하다 생각했다. 고등학교까지는. 20살에 나는 대학생활보단 돈을 벌어보고 싶었다. 당장 내 앞가림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늦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우울한 감정이 지배돼 짧은 생각으로 내뱉은 말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당시엔 돈이 최고라는 생각을 했다. 뉴스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자기 앞가림을 하는 모습을 보며 부러웠다. 무슨 일이든 내 앞가림, 내 직업이 있다면 뭐든 하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가게에서 일 하니 내가 뭘 하고 있나 싶을 정도로 적극적이지 못했다. 대부분 다른 대리점은 자식에게 물려주면 크게 성공하는 사례가 많아, 나에게도 그런 기대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노골적으로 비쳤다. ‘어느 대리점은 한 달 매출이 억대더라.’ , ‘너도 이거 물려받으면 어느 정도 벌거다.’라는 말을 한 달에 6번 정도 들었다. 주기적으로. 그때 처음으로 내가 반골기질이 있다는 걸 알았다. 내 자유의지보단 돈이 우선인 부모가 미웠고(사실 자식이 굶지 않고 살아가길 바라셨지만), 떳떳하게 좋아하는 일이 있으니 난 이 길을 택하겠다! 하는 배짱도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는 20대 초반이 패기 있게 도전해볼 일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군 복무가 시작됐다. 4급인 나는 사회복무요원으로 자연스레 가게와 멀어지니 다른 것에 관심이 생겼고, 그건 고등학생부터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지만 작심삼일로 흐지부지했던 취미를 다시 시작했다. 한 달에 한 권 읽기도 힘들었다. 당연하게도 책과 나는 어색한 사이로, 버스에서 만난 얼굴만 알고 이름은 모르는 동창과 다름없었다. 그래도 끊임없이 책은 가방에 들고 다녔다. 죄를 속죄하는 사람처럼 책을 항상 지녔다.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물론 의미 없는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세상엔 별의별 사람이 산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유튜브로 갖가지 다양한 세상을 눈으로 확인하지만 책은 달랐다. 시각적으로 주는 즐거움은 없었다. 오로지 상상 속에 내가 화자가 되어 화자의 심경을 이해하는 재미가 있었다. 때로는 불쾌하고 통쾌하며 슬프고 우울했다. 그렇게 책 읽는 재미를 알아가던 도중 글배우님의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를 읽으며 살 수 있는 글배우님의 모든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나도 책을 써서 누군가에게 위로를 해주자!’ ‘나라는 인간도 글을 써보자!’였다.
“나는 언제 죽을지 몰라요. 그건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겠죠. 막 태어난 갓난아이도 심장이 멈추면 죽듯 나도 그러해요. 하지만 후회 없이 죽고 싶어요. 글을 읽고 글을 베껴 쓰고, 다시 내 글을 쓰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말을 배우고 글을 깨우친 지 이제 대략 17년이 지났어요. 17년 동안 살아오면서 방황하다 이제 내가 태어난 이유를 찾았다고 할 만큼 글을 써보고 싶어요. 제 앞가림에 대해서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런 희망과 꿈 없이 사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꿈을 실현하면서 살려고요. “라고 어느 날 말해야 되겠지만 처음엔 분명 납득하시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자신만의 자식 계획을 안 했을 리 만무하다.
지금도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생각하고 쓰면서 가슴이 뜨겁다. 가슴이 따땃하게 유지하면서 살아가길 내 스스로에게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