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없는 거 아닌가?’
내가 글을 쓰고 싶은 이유는 지금 삶의 어떠한 형태로 고통받고 있는 분에게 조금의 위로와 곧 괜찮아지길 바라는 기도하기 위해 글을 썼다. 절대 혼자가 아니라고 나도 그러한 고통을 받고 살아왔다고, 같이 버티자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점점 내 글에 자신감을 잃어간다. 내가 봐도 글이 별로라는 이유로 잃어간다. 내가 꾸준하게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글이라는 건 쓰면 쓸수록 어렵게 느껴진다. 지금은 기초를 다진다 생각한다. 볼품없는 글이어도 언젠간 내 글의 뼈가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쓴다.
그러다 문득 아파트를 봤다. 건물을 지으려면 기초가 탄탄한 뼈대가 필요하다. 맞다. 내 글도 그런 뼈대가 필요하다. 저 아파트가 하나하나의 가정을 담을 수 있는 그릇처럼 내 글도 누군가의 아픔과 감정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기 위해 난 지금 불안하다. 초조하기도 하며 초라하게 느껴진다. 내가 원하는 내가 되기엔 지금은 조그맣다는 걸 안다. 하지만 “왜 내가 글을 쓰는지”를 잃지 않는다면 언젠가 저 아파트처럼 든든한 존재가 되어 있겠지.
최근에 장기하의 ‘에세이 상관없는 거 아닌가?’를 중고서점에서 구입해 읽었다. 머리말에 장기하 본인은 책을 느리게 읽는다고 한다. 몇 문장을 읽다가 딴생각에 빠지기도 하고 가만히 책을 들여다보지만 내용은 머릿속에 없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싫어한다고 말하기도 뭐한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제는 책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내가 빠르게 읽든 느리게 읽든, 많은 양을 읽든 적은 양을 읽든 상관없는 거 아닌가? 란 생각을 한 뒤로 누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책을 순수하게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노래와 말로 전달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글을 써 조금 더 깊게, 오래 감정을 전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한다. 글을 쓴다고 하니 겁이 난다고 했다. 책을 잘 못 읽는 자신이 남들이 읽는 책을 낸다는 것에. 하지만 글쓰기 역시 ‘상관없는 거 아닌가?’ 란 생각으로 쓰기 시작한다고 한다.
나 또한 책과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학창 시절엔 어쩔 수 없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 했고 아무런 느낌 없이 의무적으로 읽고 쓰는 일에 재미란 존재할 수 없었다. 당연히 선생님이 읽기에 좋은 글을 써야 했고 대충 읽었던 줄거리로 대충 좋은 의미를 부여해 대충 적어 낸 기억이 있다. 방학 때 일기를 적는 숙제가 꽤나 고역이었다. 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낸 내가 뭘 적어야 할지 몰랐다. 늦잠을 자고 할 일 없는 한량처럼 보낸 일을 뭔가 이 시대의 참된 어린이처럼 꾸며내야 했다. 그래서 꾸며내는 건 포기하고 그냥 하루에 기억이 남을 만한 일을 적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내 일기가 틀렸다고 했다. 도대체 일기에 정답이 왜 있는지도 모르겠다. 단지 내가 생각하는 걸 썼는데 틀렸다니. 하지만 어린 나는 뭘 모르고 또 그걸 고쳐서 썼다. 마치 객관식 답을 찍어내듯 선생님이 찍어주신 부분대로 고쳐 적었다. 글이라는 건 나 같은 사람이 쓸 수 없는 영역이었다. 얇은 종이 몇 백 쪽을 엮어 자신만의 이야기를 쓴다는 건 나에게 있어 상상이 되질 않는다. 몇 시간이고 책을 부여잡아도 한 권의 책을 다 읽기에 어려운 이 글쓰기를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다.
그렇게 성인이 된 이후로 책을 다시 사귀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 일방적으로 돌진했다. 뭘 해야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스쿠어 다이빙하듯 자연스레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일과 같이 책에 빠져 헤엄치다 보면 어느 지점에 도달하지 않을까였다. 무엇보다 내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쉽게 욱하고 거친 내 모습들이 별로였다. 그래서 책이 내 못난 성격을 바꿔주리라 믿고 읽었다.
처음엔 그냥 카페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알랭 드 보통의 ‘뉴스의 시대’를 읽었다. 아무래도 뉴스에 대한 회의적인 내용이었지만 읽는 내내 내가 책에 몰입하기보단 아무 동작 없이 눈동자는 글을 읽고 뇌에선 아무 동작하지 않는 내 몸을 의식했다, 그러니 자연스레 책 쪽수는 쌓이지만 내용은 쌓이지 않아 처음부터 다시 읽는 행동을 5번 반복했다. 5번 반복하고 나니 책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다. 아는 내용은 몇 개 있었지만 이미 아는 내용이니까 지루했고, 지루하니까 다시 망상에 빠지기 쉬웠다. 그리곤 그냥 단념했다. 안 읽히는 내용은 버리자고, 이해 못 해도 되니 이 자세로 이 눈동자로 그냥 읽는 훈련을 했다. 운동과 같다. 운동은 몸을 단련하지만 이 미동의 자세는 뇌를 단련한다. 꼼짝없이 카페 구석에 존재하는 조각상 마냥 앉아 책만 본다는 건 꽤나 괴롭다. 당장이라도 유튜브를 틀어 자극적인 영상을 눈에 담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니 나름대로 책에 몰입할 수 있었고 책 읽는 맛이 났다. 생 쌀 한 알을 입에 넣고 곱게 씹어 다지는 과정을 거쳐 쌀에서 포도당으로 바뀌는 일처럼 책을 곱게 씹어 다지는 과정에 따라 작가의 글에서 내 생각으로 옮겨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감정은 꽤나 짜릿하다. 내 삶의 영역이 넓어지고 또 다른 사람의 생각을 가져와 내 생각과 합쳐 다른 결과를 만들고 작가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또 다른 세계에 발을 들인 기분이다.
그래서 이 기분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 처음 부분에도 적었지만 내가 위로받은 이 감정, 새로운 경험을 한 기분을 다른 사람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까짓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단지 내 감정을 꺼내 도화지에 문대듯이 글을 쓰고 있다. 내 감정이 도화지에 닳아 없어지고 도화지엔 무언가 채워질 때까지 쓴다. 내가 글을 언제까지 쓸진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은 글로 먹고 살 정도의 업으로 삼고 싶다. 가끔 혼자 집에서 커피 한 잔에 노트북 하나에 나 하나로 온전히 글만 쓰는 나 자신을 상상한다. 멋지지 않나? 겉 멋만 든 애라고 생각해도 좋다. 사실 그 겉멋이 멋있어 보여서 해 보고 싶다. 물론 철없는 소리겠지만.
‘상관없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