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간만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은 엄마의 생신... 우리 엄마는 나랑 딱 20살 차이가 나는 '언니 같은 엄마'이다. 솔직히 언니 같다기보다는 평생을 나한테 징징거리는 동생 같은 엄마였다. 그런 엄마와 거의 1년 동안 서먹서먹해 될 수 있으면 전화통화를 하지 않고 보내고 있었다.
아마 엄마 생신날이 아니었으면 난 전화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와 아빠는 언제나 늘 부부싸움을 해서 집안이 조용한 나날이 없었고, 그렇게 부부싸움을 하고 나서도 분이 풀리지 않으면 시간에 상관없이 (새벽이 되었던, 늦은 밤이 되었던) 엄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얼마나 억울하게 참고 살았는지, 자신이 너희를 위해서 얼마나 희생을 하였는지, 그 분함 마음을 나에게 풀고 넋두리가 끝나지 않으면 전화를 쉽게 끊지 않으시던 분이었다.
결혼 초기에 이 문제로 오빠와도 참 많이 싸웠었다. 오히려 새댁인 내가 오빠와 싸워 힘들다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위로를 받으면 모를까, 왜 내가 평생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야 하는지 오빠는 이해하지 못했고, 큰딸인 나는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내가 엄마의 마음을 몰라주면 누가 엄마의 마음을 알아주나... 그런데 내 나이도 마흔이 넘어가니 이제는 솔직히 좀 지쳤다. 그리고 더 이상 엄마의 억울한 넋두리를 듣기에는 나도 내 삶이 녹록지 않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관계는 '삼각형'이라고 하는데, (나와 엄마의 문제, 나와 아빠의 문제라면) 내가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이 둘의 관계는 해결할 수 있지만, 엄마와 아빠 사이의 문제는 두 분 사이의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더 이상 어떻게 해 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지금 현재도 두 분은 또 다른 문제로 크게 싸워 감정의 골이 깊은 상황이다. 자식으로서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아빠도 엄마도 본인이 이 문제를 해결하고 관계를 개선하려고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이상, 이 상황은 계속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엄마도 아빠도 서로 원망만 하며, 상대방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며 더 이상은 참고 살 수 없기에 자신들이 하고 싶은데로 살 거라 말하신다.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책은 '기시미 이치로'의 나를 사랑할 용기와 '김수영'의 마음스파라는 책인데, 이 두 권의 책을 읽고 부모에게 받은 상처에 대해서 많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특히 김수영 작가님의 부모도 평생을 싸우시는 분들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싸우시는 줄 알고 김수영 작가님이 열심히 돈을 모아 집도 사드리고 용돈도 드려봤지만 경제적인 문제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싸우는 부모님 이야기를 읽고, 어쩌면 나의 부모도 평생을 싸우는 것이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부모의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시각으로 나의 부모를 바라볼 수 있었다.
또한 기시미 이치로 작가님의 책에서는 사람의 관계를 삼각형으로 설명할 때, 아~ 하는 깨달음이 있었다. 나는 솔직히 내가 중간에서 잘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엄마와 아빠의 문제는 두 분이 해결해야 맞는 것이지 내가 그 사이에 들어갈 여지는 없는 것이다.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이렇게 글까지 쓰고 있는 나는 실은 '담담한'척하려고 노력 중인 것이다. 지금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기에, 두 분이 서로가 서로를 조금은 안타깝고 불쌍하다는 '측은지심'으로 바라보고, 양쪽 다 한 발짝씩 양보하기를 바라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두 분이 이제는 '성숙한' 어른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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